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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본섬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백운봉의 제단 흔적 있는 바위 무더기들. 내려다 보이는 바로 앞 작은 섬이 장보고 유적지로 알려진 장도다.
▲ 백운봉 제단터 완도 본섬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백운봉의 제단 흔적 있는 바위 무더기들. 내려다 보이는 바로 앞 작은 섬이 장보고 유적지로 알려진 장도다.
ⓒ 완도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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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다로 신비 웅혼(雄渾)한 기운 뿜어내는 저 거대한 암괴(巖塊)들, 도대체 정체는 뭘까? 땅끝 부근 남쪽 바다에 놓인 큰 섬 완도(莞島)의 전라남도 완도수목원은 바다와 어우러지는 뛰어난 계곡 풍광의 울창한 난대(暖帶) 수종(樹種) 숲과 산림박물관 아열대온실 청소년수련원 등으로 주목받는 명소, 완도 산지(山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050ha 면적의 큰 규모다. 난대는 열대와 온대 사이의 온난한 지역 또는 지대(地帶)를 말한다.

이 수목원이 최근 들어 '박진감 넘치는'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입을 꽉 다물고 있지만, 박형호 수목원장이 설레는 마음으로 지휘하는 '완도거석(巨石)프로젝트'다. 결과에 따라 수목원(樹木園)이 수석원(樹石園)이 될 수도 있다. 또는 '고인돌공원'이 되든지.

"이곳을 찾아 주시는 분들 대다수가 저 거대한 바위들에 또한 주목합니다. 우리 수목원의 주요 업무와는 별개지만 신비스런 저 암석들에 저희 직원들이 또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게다가 전라남북도 지역은 예로부터 고인돌 등 거석문화가 성했던 곳입니다. 저 바위들이 가진 뜻을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수목원 중앙 임도 곁의 거석
▲ 완도거석프로젝트 수목원 중앙 임도 곁의 거석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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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해남은 고인돌밭이라 불릴 정도이고 강진 또한 고인돌이 많다. 그 위쪽은 워낙 고인돌로 유명한 화순, 더 위는 고창이다. 완도에 고인돌이 어찌 없겠느냐, 대충 이런 얘기다. 박 원장은 2년 전쯤 이곳에 부임하자마자 그 암괴들이 선사(先史) 유적 즉 청동기 고인돌일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화순의 고인돌 관계자들에게 보여 긍정적인 답변도 얻었다.

"오시는 분들마다 고인돌 아니냐 하시는데..."

우리나라에는 선사 거석문화의 분포가 뚜렷하다. 특히 고인돌의 경우, 분포(分布) 양상이나 수량 측면에서 '한국은 고인돌의 나라'라고 불러야할 정도다. 학계 등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돌멘(dolmen)이라는 국제적으로 통용(通用)되는 명칭을 고인돌(goindol)로 바꾸자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탐방객들이 입을 모아 "고인돌 아니냐?" 묻곤 하는 거석 중 하나다.
▲ 완도거석프로젝트 탐방객들이 입을 모아 "고인돌 아니냐?" 묻곤 하는 거석 중 하나다.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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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極東) 중앙아시아 중동(中東) 등 아시아 전 지역의 문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류학자 정수일 교수는 '스톤헨지 같은 열석(列石 알리뉴망 alignements), 선돌(멘히르 menhir)을 포함한 세계 거석문화 유적이 5만5000기 남짓인데 우리 땅의 고인돌이 그 73%인 4만기(북한 지역 1만5000기 포함) 가량'(한겨레 2004년 6월 28일)이라고 설명했다.

'깐수 박사'로 잘 알려진 정 교수는 이어 전남 지역에만 2만여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며,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고인돌 밀집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이 땅과 우리의 선조들이 인류 거석문화의 중추(中樞)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았다는 것이다.

완도군의 문화재관리담당 김광호씨도 "역사나 인문지리적 환경으로 볼 때 완도에 더 많은 선사유적이 있을 개연성(蓋然性)은 있다. 청산도 읍리나 고금도 가교리 등 이웃 섬에도 고인돌이 있다. 다만 해남처럼 패총(貝塚)과 같은 유적 유물이 함께 나오지는 않아 문화적 다양성이 좀 덜하다"고 설명한다.

탐방객들이 입을 모아 "고인돌 아니냐?" 묻곤 하는 거석 중 하나다.
▲ 완도거석프로젝트 탐방객들이 입을 모아 "고인돌 아니냐?" 묻곤 하는 거석 중 하나다.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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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측은 그 암괴들에 '암석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탐방객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간벌(間伐)하고 작은 길을 냈다. 부근에 전망대도 세워 암석원과 숲, 보석 같은 섬들 박힌 바다를 함께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했다.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사진 찍기 제일 좋은 명소'라는 평가가 인터넷에서 떠돈다는 얘기를 탐방객들로부터 들었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완도거석프로젝트는 다음의 세 가지 가능성과 관점(觀點)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박 원장 등의 생각처럼 그 암괴들이 고인돌과 같은 선사 거석문화유적일 가능성, 둘째는 고대 청해진의 위대한 장수(將帥)이면서 극동아시아 해양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장보고(張保皐)와의 연관 가능성, 세 번째는 먼 옛날 빙하기에 유빙(遊氷)과 함께 떠돌던 거대한 바위들이 이곳에 기묘한 형상으로 자리 잡은 지형적 특이함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다.

'원시림 속 고인돌' 새 역사 짓자는 염원도

고인돌 아니냐? 그렇다면 이 계곡은 선사시대부터 조상들의 삶의 흔적, 고대 문화가 층층이 쌓인 곳이다. 숲과 나무, 자연을 찾아오는 수많은 탐방객들에게 들려줄 자랑찬 이야기가 생기는 것은 물론 이 지역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다. 그래서 수목원 말고도 이 일대 지역사회도 관심이 많다. 그 관심은 '고인돌이면 좋겠다'는 다소간의 염원(念願)도 담고 있다.

탐방객들이 입을 모아 "고인돌 아니냐?" 묻곤 하는 거석 중 하나다.
▲ 완도거석프로젝트 탐방객들이 입을 모아 "고인돌 아니냐?" 묻곤 하는 거석 중 하나다.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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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 동안 지질학 고고학 역사학 분야의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자문(諮問)을 구해오고 있다. 지난 5월 10일의 자문회의에서도 수목원의 특성화를 위한 다른 여러 방안과 함께 이 암석원의 정체를 규명하고 '합당한 이름'을 붙이는 일에 관해 깊이 있는 논의가 오갔다.

토속신앙의 흔적인듯한 인공의 구멍과 날카로운 물체로 그은 선 등이 많은 바위다.
▲ 완도거석프로젝트 토속신앙의 흔적인듯한 인공의 구멍과 날카로운 물체로 그은 선 등이 많은 바위다.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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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박승필 교수(지질학)와 함께 이 암석원을 살펴오고 있는 지질학자 오종주 박사(고려대 연구교수)는 자문회의에서 "지질학의 입장에서도 매우 특이한 이 바위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암석의 생성연대를 추측할 수 있는, 방사성동위원소시험과 같은, 물성(物性) 파악을 위한 시험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수목원 산림박물관 서인석 학예연구사는 "고인돌임을 방증(傍證)할 수 있는 패총과 같은 유적 유물이 없는 상태여서 암괴의 독특한 모양과 역사와 인문지리지적 환경 요인만으로 그 정체를 유추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물성시험이 지질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고인돌과 같은 선조들이 세운 유산인지 등을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전문가 회동 이후 수목원은 고민에 빠졌다. 이계한(전남대) 정일영(조선대) 황근연(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 오종주 박사 등 참여자들로부터 이거다 아니면 저거다 식(式)의 딱 부러지는 감정(鑑定)을 얻어내지 못한 데다, 진행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안된 물성파악(把握) 시험에는 상당한 부담이 있기 때문에 쉽게 주사위를 던지지 못하는 것이다.

수목원 측은 이 기암괴석의 숲에 암석원이란 이름을 우선 달아주고 탐방로와 전망대를 만들었다.
▲ 완도거석프로젝트 수목원 측은 이 기암괴석의 숲에 암석원이란 이름을 우선 달아주고 탐방로와 전망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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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창 등에서 발견된 채석장(採石場)이나 조개무덤 같은 물증이 없는 점,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암석원이 비교적 높고 험한 지형인 점도 이들이 쉽게 '결심'을 못 하게 하는 요인, 이런 생각이나 관점은 관계자가 아닌 탐방객들도 비슷하다. 모양이 다른 지역의 고인돌과 너무도 흡사하지만, 그 중 몇 개는 크기가 너무 큰 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플랜B, 거석이 품은 장보고의 호연지기 재조명

고인돌 아니면 어쩌지?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장군(청해진 대사)의 통치 터전으로서 이 일대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시각과 완도의 최고봉인 상황봉(644m)의 봉수대(烽燧臺), 백운봉(604m)의 제단(祭壇) 흔적 등을 장보고와 연결해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B플랜이다.

신라 때 완도에 설치됐던 특수한 기구 청해진(828~851년). 그 내역으로 볼 때 섬 한쪽 꼬막만한 섬 장도에 설치된 본영(本營)에서만 장보고와 그의 사람들이 활동했을 리가 없다. 봉수대나 제단과 이들의 연관성을 톺아내고, 그 바로 아래 거대한 암괴들과의 연결고리를 마련하여 탐방객들과 수련원을 찾을 청소년들에게 역사의 기개(氣槪)를 심어주자는 것이다.

C플랜은 지질학적 특수성을 밝혀 지구의 역사와 지형적인 웅자(雄姿)를 과시하는 공원으로, 즉 '돌 공원' 같은 전문적 주제를 포괄(包括)하는 장소로 개발한다는 생각이다. 그 암괴들이 고인돌이든 아니든, 장보고 장군의 긴 칼이 스친 뒷마당이었건 아니건, 그 크기와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는 여러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가 C플랜의 배경이다.

그 돌과 관련한 정령(精靈)신앙 등 남해안, 그 중에서도 도서(島嶼)지역의 민속 이야기도 방치하기 아까운 지역문화의 콘텐츠일 터다. 그 바위들에는 시대를 단정하기 어려운 무속(巫俗)의 흔적도 여럿이라고 완도수목원 숲해설사 강장만씨는 귀띔한다, 민속의 보고(寶庫)라고. 세월 가면 그냥 허공으로 스러져 갈 우리 뼈 속의 본디 아닌가. 

하루 이틀 사이에 얻을 수 있는 결론이 아니다. 또 물성시험에는 얼추 1천만 원의 적지 않은 비용 부담과 시험을 위해 원래의 암괴에서 작지 않은 돌 조각들을 떼어내야 하는 난관(難關)도 있다. 가로 세로 높이 각 10cm 크기의 돌조각을 10~15개 확보해야 한다. 돌을 깨서 표본을 만든다는 것이다. 분분(紛紛)할 의논의 향방은 어떻게 결실을 맺을까.

플랜C, 암괴의 지질학적 분석 또는 섬 민속 조명의 계기    

박 원장은 '의욕이 앞서 귀중한 유산을 부분적으로나마 파손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도 걱정 중의 하나'라며 고민의 한 끄트머리를 비쳤다. 추가적인 진행을 위해 더 많은 자문을 얻겠다는 입장이다. 국토의 귀퉁이에 자리 잡은 점 때문에 겪어온 여러 서운함 따위까지 이런 의욕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심산(心算), 입 다물어도 다 보인다.

도립(道立)시설인 이 수목원은 휴양시설과 수련시설 등 시민의 '힐링'과 체험을 위한 상당한 규모의 증설(增設)이 예정돼 있다. 이의 증설에는 환경영향평가와도 같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해당 지역 자연유산과 문화재의 존재에 관한 검사가 선행될 터다. 이를 위한 문화재 지표조사는 이 '프로젝트'를 끌고 미는 동력(動力)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박형호 완도수목원장과 그의 동료들의 염원인 '완도거석프로젝트'는 어떤 결실을 맺을까?
▲ "고인돌 같지 않습니까?" 박형호 완도수목원장과 그의 동료들의 염원인 '완도거석프로젝트'는 어떤 결실을 맺을까?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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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완도거석프로젝트도 이 수목원 증설과 함께 화려한 옷을 입고 합당한 제목을 얻게 될 터다. 전라남도 당국도 비상한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는 서남해안 개발의 중요한 포인트다.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이 프로젝트는 오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40여 기의 그 거대한 바위들, 과연 장보고 장군 칼 스친 고인돌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의 자연(www.citinature.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완도수목원, #고인돌공원, #장보고 장군, #땅끝마을, #완도청소년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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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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