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학교가 중학교인지 슈퍼맨 사관학교인지 순간 헷갈리게 만든 현수막. 학교 건물에 덩그러니 붙어 있으니 헷갈릴 수밖에.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 양성 체육대회를 하는 건가. 하하하하하.
▲ 슈퍼맨 사관학교 이 학교가 중학교인지 슈퍼맨 사관학교인지 순간 헷갈리게 만든 현수막. 학교 건물에 덩그러니 붙어 있으니 헷갈릴 수밖에.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 양성 체육대회를 하는 건가. 하하하하하.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23일 오후로 갈수록 결승전 경기가 눈에 띈다. 줄다리기도 마찬가지다. 줄다리기에 임하는 학생들도 각오가 남다르다. 승부욕을 마구마구 발동시킨다. 앞에는 남학생들이 포진하고, 꽁무니엔 여학생들이 포진해 있다. 앞에 있는 남학생들은 손으로 힘을 쓰고, 뒤에 있는 여학생들은 입으로 힘을 쓴다. 소리로만 보면 여학생들이 훨씬 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립싱크 가수가 더 리얼하게 노래 부르는 것처럼 보이듯.

양쪽에서 교사들도 응원한다. 자신의 반이 이기도록 호루라기로 응원한다. "후루룩 후루룩". 힘이 팽팽하자 교사의 호루라기 소리가 더 커진다. 박자도 빨라진다. 안단테에서 포르테 시모로 넘어간다. 교사의 호루라기 소리가 숨이 넘어갈 듯 절규한다. 교사의 호루라기 소리가 절정에 다다라 숨이 턱턱 막힐 거 같을 때, 승부가 결정난다. 참 다행한 일이다. 하마터면 119를 부를 뻔 했다.  

젖먹던 힘까지 내어보았으나 넘어지기만 했다. 그 힘 돌리도. 질질 끌려가는 남학생. 그래도 좋단다. 승부보다 더 진한 재미가 묻어난다.
▲ 젖먹던 힘 젖먹던 힘까지 내어보았으나 넘어지기만 했다. 그 힘 돌리도. 질질 끌려가는 남학생. 그래도 좋단다. 승부보다 더 진한 재미가 묻어난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반티만 봐도 몇 학년들인지 굳이 덩치와 키를 보지 않아도 한눈에 짐작이 간다. 비룡중학교 체육복을 반티로 한 학생들은 영락없이 신입생들이다. 신입생들이야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치르는 체육대회니 얼떨떨하고 '후덜덜'하다. 하늘같은 선배들과 함께 뛰논다는 자체가 어색하다.

2~3학년들은 아무도 체육복을 입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반티가 난무한다. 꽃무늬 티에 꽃무늬 몸뻬 바지, 교련복 상하의, 슈퍼맨 상하의, 몸뻬 바지에 검정색 상의 등이다. 그러고 보니 몸뻬 바지가 대세다. 다만 색깔과 무늬가 각각 다를 뿐. 체육대회 자체보다 학생들의 패션이 눈에 더 띈다. 날씨가 더운 만큼 학생들의 복장은 피서지 복장이 많다. 시원한 상하의에 밀짚모자와 선글라스까지. 여기가 운동장인지 해변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반티라며 입었다는 교련복. 선글라스에 밀짚모자. 교련복이 한 때 그들의 선배가 군인들처럼 총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뺑이 치던 제복이었다는 걸 그들은 알까. 지가간 시대의 교복쯤로 알고 있겠지. 브이자로 맘껏 뽐내고 있다.
▲ 오빤 교련복 스타일 반티라며 입었다는 교련복. 선글라스에 밀짚모자. 교련복이 한 때 그들의 선배가 군인들처럼 총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뺑이 치던 제복이었다는 걸 그들은 알까. 지가간 시대의 교복쯤로 알고 있겠지. 브이자로 맘껏 뽐내고 있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현수막은 또 어떻고. 반마다 현수막을 제작했다(물론 신입생들은 제외다). 글귀들이 눈에 들어온다. "8반 우리 좀 짱이니까, 3반아 미쳐보자, 누나 왔다 누나 쓸어 버려" 등은 오히려 평범하기까지 했다. "지구를 지키는 슈퍼 6반"은 눈에 띄었다. 그 문구가 학교 건물 교실 창문에 걸려 있다. 그 옆엔 슈퍼맨 특유의 S자 마크 깃발까지. 마치 그 학교가 슈퍼맨 사관학교같이 보인다. 오늘은 슈퍼맨 양성 체육대회인 것처럼.

반 현수막보다 개인 현수막문화가 독특해 보인다. 개인 현수막이랄 것도 없다. 각자가 종이판자에 종이를 덧입혀 글을 새겨 놓은 거다. 미친 미모, 오늘은 잼 바르듯이 발라주마, 내가 바로 대세, 뛰는 놈 위에 웃기는 놈, 내 뒤에 강동원 있다 등등. 가히 그 문구들이 재기발랄하다. 아하, 오늘은 단순히 체육대회가 아니라 그들에겐 PR마당인 듯. 이참에 반도 알리고, 자신도 알리고, 그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알리고.

이어서 사제지간 달리기 시간이다. 발을 서로 묶은 채로 학생과 교사가 2인 1조가 되어 달린다. 경기 시작 전, 서로 발을 맞추느라 요란하다. 발보다 입이 더 바쁘다. "선생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뭐 이 녀석이 노인 취급을 하네. 호호호"

사진으로 봐선 저 학생들이 바닷가에서 바다를  지켜보는 건지 운동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밀짚모자의 선그라스 소년은 바캉스 소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 바캉스 소년 사진으로 봐선 저 학생들이 바닷가에서 바다를 지켜보는 건지 운동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밀짚모자의 선그라스 소년은 바캉스 소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가만히 보니 사제지간은 모두 이성지간이다. 20m만 떨어져서 보면 사제지간이라기보다 연인지간으로 보인다. 실제로 처녀교사와 남학생, 총각교사와 여학생 등은 이상기류까지 보인다. 분위기가 좋다. 감수성이 예민한 한 남학생은 엄마뻘 교사와 같이 있어도 시종일관 어색하다. 엄마뻘 교사는 숫제 그 남학생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남학생은 땀만 줄줄 흐른다.

승부욕이 강한 남교사는 아예 여학생을 들고 뛴다. 여학생이 공중부양해서 날아가는 듯 보인다. 놀라운 이동속도는 마치 '메가 패스 광속랜'을 보는 듯하다. 운동장에선 그 놀라운 속도에 "우와"가 만발한다. 힘이 부친 남교사가 그 여학생을 땅에 놓자 순간 스텝이 엉킨다. 넘어진다. 순간 운동장엔 웃음 폭탄이 터진다.

메인 마이크가 말한다. "응원해주세요. 이 게임이 중요합니다. 한 달 급식 순서가 걸려 있습니다"라고 이 경기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경기가 끝나자 숨도 돌릴 겨를 없이 "1학년, 3학년, 2학년 순으로 급식순서가 결정되었습니다"라고 마이크가 웽웽 거린다. 진 것도 억울한데, 진 팀에겐 매몰차게 들린다. 6월 한 달 동안 2학년이 맨 뒤에 줄을 서서 급식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불운이 한 순간에 결정된 게다.

자기를 미친미모라고 소개 하는 여학생.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과연 미친미모의 여학생은 예뻐고 발랄했다.
▲ 미친미모 자기를 미친미모라고 소개 하는 여학생.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과연 미친미모의 여학생은 예뻐고 발랄했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이어달리기 순서다. 평범한 달리기는 저리 가라. 미션 수행 달리기다. 출발할 때 코끼리 코를 잡고 제자리에서 10바퀴를 돈다. 어지러움을 뒤로 한 채 50m 전방에서 만나는 재기차기 코너. 다섯 개를 차야 통과다. 이어지는 미션은 매트에서 구르기. 마지막으로 풍선 터뜨리기다.

달리기를 잘한다고 장땡은 아니다. 미션수행을 잘해야 한다. 이건 이론이고 실제는 달랐다. 달리기 잘하는 친구가 미션도 잘해낸다. 운동신경이 어디로 가겠는가. 1등으로 달리는 학생은 제기도 잘 차고, 구르기도 잘하고, 풍선도 웬만해선 단번에 터뜨린다. 혹 단번이 아니라도 다시 터뜨릴 여유가 있다. 웬만해선 한 번 1등은 영원한 1등이 된다. 제기랄! 사회의 불공평이 미션달리기에도 적용되다니.

구르기를 하는 여아들도 체면은 잊었다. 평소 새침공주였다가도 미션을 수행할 땐, 모두 구르는 곰이 된다. 승부 앞에선 사회적 지위(?)도 체면(?)도 추풍낙엽이 되곤 한다. 남아들은 승부보다 더 신경 쓰는 게 있다. 바로 구르기 자세다. 마치 유도 국가대표가 낙법을 하듯 멋있게 한다. 1년에 한 번 보여주는 남자의 매력 쇼를 놓칠 수가 없다는 각오다. 

"2학년 축구하지 마세요. 좋은 말로 할 때, 축구하지 마세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질서를 지도해주세요. 3학년이 너무 무질서 합니다."
"자리 이탈하는 학생이 있어요. 저기 저 1학년. 2학년은 너무 자유분방한 거 같습니다."
"철조망에 매달린 친구도 있어요. 맘에 안 들게 하면 저지할 수밖에 없어요."

사제지간 달리기 연습이 한창이다. 잠자리 잠옷을 입은 그들은 마냥 즐겁다. 저게 반티란다.
▲ 사제지간 사제지간 달리기 연습이 한창이다. 잠자리 잠옷을 입은 그들은 마냥 즐겁다. 저게 반티란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이런 말들이 메인 마이크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조회대에서 시어머니처럼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중3 여학생의 입으로부터 말이다. 아마도 학생회 간부급 되는 여학생인 듯 했다. 방송 반에서 틀어준 싸이의 노래 "젠틀맨과 강남스타일"은 학생들을 점점 '싸이'로 만들어가고 있다.


태그:#체육대회, #중학교체육대회, #비룡중학교, #안성, #중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