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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 서대문구 금화동에서 맞이한 도심의 일출
▲ 일출 서울 서대문구 금화동에서 맞이한 도심의 일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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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으되 잊혀졌던 구절을 다시 읽으며 이전보다 더 깊게 마음에 새긴다. 맑고 향기로운 법정 스님의 글이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곳이 어디이겠는가?
물론 산에는 꽃이 피고 물이 흐른다.
그러나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곳이 굳이 산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서울 도심의 일출
▲ 일출 서울 도심의 일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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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종일 그 말이 마음에 가득하였다. 도심에서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면서 '별 볼일 없는 도심'의 삭막한 풍경에 절망하며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는 내게 이 말은 둔해진 뇌리를 깨우쳐 주었다.

설사 도시의 시멘트 상자 속 같은 아파트일지라도 살 줄 아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삶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그 둘레에는 늘 살아 있는 맑은 물이 흐를 것이다.

서울 도심의 일출
▲ 일출 서울 도심의 일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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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까? 그럴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문제일 때보다 내가 문제일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사람은 겸허해진다.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에 종사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살건 간에 자기 삶 속에 꽃을 피우고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 사는 일이 무료하고 지겹고 시들해지고만다.

서울 도심의 일출
▲ 일출 서울 도심의 일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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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꽃을 피우지 못함으로 무료하고 지겹고 시들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나는 내가 도심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서울 도심의 일출
▲ 일출 서울 도심의 일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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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섰다. 두물머리로 향하려다 너무도 인위적인 조경공사에 화들짝 놀라 옛 정취를 잃어버린 두물머리를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그냥, 사무실에 나가 책이라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요량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아침의 햇살을 받고 있는 남산타워
▲ 남산 아침의 햇살을 받고 있는 남산타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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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사무실까지는 대략 30km 정도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자가용으로는 1시간 조금 더 걸리기도 하고, 덜 걸리기도 한다.

새벽이라 그런지 30분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금화아파트로 향했다. 제법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도심의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올랐다. 기대대로 서울 도심에도 붉은 해가 떠오른다.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에 아침햇살이 깃들었다.
▲ 금화아파트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에 아침햇살이 깃들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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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텅 빈 아파트에 아침 햇살이 들어와 쉬고 있다. 저 빛에 깨어나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새들이 떠난 숲이 황량한 것처럼, 사람이 떠난 집도 황량하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이렇게 떠난 뒤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피어나는 초록 생명
▲ 생명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피어나는 초록 생명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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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시멘트 바닥에 초록생명이 피어났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 맞다.

설사 도시의 시멘트 상자 속 같은 아파트일지라도 살 줄 아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삶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그 둘레에는 늘 살아 있는 맑은 물이 흐를 것이다.

꽃들은 그렇게 피어났건만, 꽃보다 아름답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했다.

시멘트 옹벽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도심의 씀바귀
▲ 씀바귀 시멘트 옹벽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도심의 씀바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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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씀바귀, 옹벽에 자리잡고 피어난 씀바귀임에도 무성하게 피어났다. 아침 햇살이 그들의 몸을 녹이면 그들은 피어날 것이다. 다른 것 없이, 아침 햇살 하나만으로 그들은 아침을 맞을 모든 준비를 다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아침은 저기 산이나 바다나 강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서울 하늘에도 늘 있어왔지만, 내 삶을 꽃피우지 못하니 이 모든 것들이 시들시들 무료해 보였던 것이다.

서울 도심의 일출, 그것 역시도 볼 만하다. 아침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연에서 만나는 이슬처럼이나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5월 21일 아침에 담은 사진입니다.



태그:#일출,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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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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