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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임목씨는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서 광고업으로 현수막이나 안내판 등을 제작하는 평범한 자영업자다. 20여 년 전 삼척시내에서 근덕면으로 이사를 와 부인과 함께 이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일 없이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대한민국의 보통 시민으로 살아온 셈이다.

그런 그가 요즘 팔자에도 없는 '시위'를 하느라 고생이다. 오전 9시부터 낮 1시까지, 하루 낮 시간의 절반 가량을 면사무소 앞에 서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원도의 면 단위 지역에서 1인 시위는 '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그가 생업을 뒤로 한 채, 면사무소 앞에서 나 홀로 시위를 벌이게 된 배경은 무얼까?

삼척시 근덕면사무소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박임목씨.
 삼척시 근덕면사무소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박임목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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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면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게 된 이유

1인 시위는 지난 8일에 시작됐다. 박씨는 그날,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걱정인 부인을 설득하고 나서, 광고용 물품을 만드는 작업장에서 시위용 피켓을 만들었다.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피켓 2개를 만들었다. 그 피켓 중 하나에는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근덕면민 외면하는 공무원은 근덕을 떠나라'고 적었다.

그리고 또 다른 피켓에는 '핵발전소 반대하면 근덕면민 아닙니까? 핵발전소 반대하면 근덕에서 살지 말아야 합니까?'라고 적었다. 그러니까 박씨가 지금 지역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피켓에 적혀 있다. 시위는 더 큰 분란을 초래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박씨는 현재 자신이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면사무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핵발전소 유치 반대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면사무소가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씨가 불이익을 받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3년 전인 2010년부터다.

이 시기는 삼척시에서 핵발전소 반대 운동이 본격화되던 때와 맞물려 있다. 2010년 초 김대수 삼척시장이 핵발전소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그 후로 삼척시는 핵발전소를 유치하는 데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대립하며 심각한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박씨는 반대편에 섰다. 그렇다고 박씨가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것은 아니다. 박씨는 지역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다 아는 처지에, 게다가 일부분 관공서를 상대로 한 영업을 하면서, 시가 추진하는 정책에 의견을 달리하는 문제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았다. 현수막도 찬성과 반대 현수막을 모두 제작했다. 그런데도 반대 현수막을 제작한 사실이 문제가 됐다. 그 후로 그는 불이익을 피해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박씨 말에 따르면, 핵발전소 반대 운동이 본격화된 후로 면사무소로부터 들어오던 주문량이 줄어들었다. 박씨는 그동안 면사무소의 주문을 받아 다양한 광고물을 제작해 왔다. 현수막을 비롯해서 간판, 안내판 등 여러 광고물을 제작해 납품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매년 박씨가 면사무소 주문을 받아 제작한 광고물은 현수막 몇 건이 전부다.

그러던 중 최근에는 그 현수막마저 다른 제작업체에 넘어갔다. 면사무소는 16일 열리는 '효잔치(경로잔치)'와 관련해 현수막 3개를 제작했다. 그런데 그 현수막은 이미 박씨 자신이 제작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면사무소 담당 계장으로부터 제작 의뢰를 받았고, 또 하루는 그 계장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현수막을 달 날자까지 정하는 등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그 일은 지금까지 박씨가 해오던 면사무소 일 중 하나였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이었다. 이제 물건을 만들어 납품만 하면 끝나는데, 그 물건이 자신도 모르는 새 다른 업체에서 제작해 거리에 내걸린 걸 보게 된 것이다. 박씨는 그때 너무 화가 났다. 참기 힘든 울분을 느꼈다.

"핵발전소 반대 하면 알게 모르게 불이익 받아"

박임목씨.
 박임목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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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핵발전소가 문제가 된 이후로 면사무소로부터 들어오던 주문 물량이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그동안 "불평불만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지역에서 그런 불이익을 당하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만 있는 것도 아니고, 좁은 지역 안에서 앞으로 또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는데 대놓고 항의를 하거나 반감을 표시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주문을 받은 현수막이 아무 말도 없이 다른 제작자 손에 맡겨진 걸 본 그때는 "이걸 계속 참아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씨는 그때 "핵발전소에 반대하면서도 불이익이 두려워 말을 못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길로 면사무소를 찾아가 담당 계장에게 항의했다. 담당 계장은 "면장한테 얘기하라"고 말했고, 박씨는 다시 면장을 만나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 물었다.

그 자리에서 박씨는 면장 입에서 "내가 (담당 계장에게) 주문을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박씨는 면장한테서 "누구한테 일을 줘라 마라"라고 하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동안 핵발전소 문제로 계속 불이익을 받아 왔지만, 그는 "이번 면장처럼 직접적으로 대놓고 그런 말을 하는 면장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자신이 참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박씨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면사무소를 나왔다. 면장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담당 계장에게 갑자기 거래 업체를 바꾸라고 지시를 한 것은 자신이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한다는 이유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시위를 준비했다. 물론, 모든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를 하고 나서다. 1인 시위는 그렇게 시작됐다.

한편 박씨가 면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근덕면사무소 김진진 면장은 박씨와는 다른 주장을 했다. 김 면장은 "박씨가 원전(핵발전소)에 반대한다고 일을 안 주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박씨의 자격지심"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것과 현수막 제작을 주문하지 않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통상 박씨에게 해오던 효잔치 현수막 제작 주문을 이번에 갑자기 다른 업체로 바꾼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유를 내놓지 못했다. 그는 담당 계장에게 "디자인 잘 해서 보기 좋게 걸어라"라는 말과 함께, "삼척 시내에 있는 (디자인 잘 하는) 업체를 자신이 지정해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체 선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박씨에게 주문을 했다는 것은 담당 계장이 구두로 가격을 알아본 것에 불과했지, 구체적으로 제작을 의뢰한 것이 아니었다"며 업체를 바꾼 것 역시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박씨는 그런 김 면장의 주장에 "지금까지 면사무소 주문은 구두로 이뤄졌고, 담당자와 납품 날짜까지 정하는 등 그건 곧 주문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며 "면사무소와는 늘 그렇게 일해 왔다"고 반박했다.

박씨는 1인 시위를 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핵발전소 반대 의견을 맘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사는 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자신처럼 불이익을 당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 사람들 대부분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직접 행동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발전소에 반대해도 그런 생각을 박씨처럼 드러내놓고 행동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핵발전소를 반대하게 되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는 어떤 식으로든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며 "아무리 핵발전소를 반대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면사무소가 근덕면민으로서 설움은 받지 않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가 1인 시위를 하게 된 데는 "이제는 누구라도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삼척 핵발전소 반대 운동은 민주주의 재건 운동"

박임목씨.
 박임목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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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회에서는 관공서에서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하는 데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그 정책이 지자체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정책일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삼척시에서 핵발전소 유치 활동이 벌어지던 초기에는 그 활동에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시민들 중에는 일부 "핵발전소와 관련해 속을 터놓고 얘기하기가 힘들다. 이웃들끼리도 눈치를 봐야 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 삼척시에서는 핵발전소 유치하는 과정에서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당시 삼척시는 공무원은 물론이고, 통리반장들까지 동원해 '원전 유치 동의 서명서'를 받으러 다녔다.

그 결과 핵발전소를 유치하자는 데에 "시민 96.7%가 찬성했다"는 놀라운 성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는 "삼척시가 공무원 등을 동원해 시민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척시는 그 서명서를 한수원과 지경부 등에 제출하고, 지역민 대다수가 핵발전소 유치에 동의했다며 핵발전소 유치를 신청했다. 그 무렵 핵발전소 유치에 찬성하는 측은 반대 측을 '종북주의자'라거나 '암적 존재'라는 말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공무원들과 그의 가족들이 핵발전소를 유치하면서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예는 또 있다. 지난해 9월 삼척시에서는 핵발전소 유치에 적극적인 김대수 삼척시장을 소환하자는 운동이 일었다. 그리고 10월 31일 삼척시 전역에서 김대수 삼척시장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됐다. 하지만 주민소환에 실패했다.

투표일 3일 전, 지역의 한 신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삼척시 내 유권자 중 60% 이상이 투표에 참여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투표일을 맞아 투표장에 나타난 시민은 25.9%였다. 투표율이 1/3인 33.33%만 넘었어도 주민소환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투표율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날 투표장 근처에는 삼척시청 간부 공무원의 부인 등이 투표소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서 있는 광경이 목격됐다. 투표를 하러 가는 행위가 '핵발전소에 반대한다'는 걸 의미하는 상황에서 투표가 쉽지 않았다. 당시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는 "공무원 가족과 통장 등이 투표소 근처에 나와 서 있는 등, 관이 투표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러니 삼척시에서는 시민들이 핵발전소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두고,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는 그동안 "김대수 삼척시장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그리고 "핵발전소 반대 운동은 삼척시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운동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삼척 핵발전소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김대수 삼척시장을 정점으로 한 권력 기관의 반민주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이광우 의원(삼척시 시의원,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기획실장)은 "핵발전소 반대 시민들이 권력 기관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는 사례는 많다"면서, "그 기관들이 시민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일을 매개체로 해서 압력을 넣고 하니까, 드러내 놓고 불만을 표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임목씨처럼 권력 기관에 납품을 하는 관계를 맺다 보면, 그 권력 기관이 하는 일에 불만이 있어도 앞으로 더 큰 불이익이 올까봐 드러내 놓고 말하기 힘든 면이 있다"며 "그것이 삼척 핵발전소와 같은 국책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민주성과 폭력성"이라고 비판했다.


태그:#삼척 원전, #삼척 핵발전소, #박임목, #근덕면,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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