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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경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라고 합니다)은  약 보름의 기간에 걸쳐 회원들로부터 북의 어린이들에 대한 식량지원금으로 합계 총 1810만원을  모금하였습니다. 이 돈으로 밀가루를 구입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를 통하여 북에 보내기로 하였는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이 돈을 포함한 2억원 상당의 밀가루 180톤을 조선그리스도련맹에 전달하기로 하고, 당시 민변의 사무차장이던 저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창휘 간사가 방북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이른바 왕재산 간첩단 사건의 변론을 맞고 있다는 이유로 통일부가 방북을 불허하여 저는 결국 개성을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간첩 사건의 변론을 맡고 있다고 하여 방북을 불허하는 것은 대단히 부당해 보였습니다. 하여 저는 민변과 상의하여 이 방북불허조치가 부당하다는 취지로 국가가 제게 2000만 100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였다가(서울중앙지방법원 2012가단7241 사건), 1심에서 패소판결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는 항소하였다가 대선결과 등을 감안하여 올 초 그 항소를 취하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4월 30일) 법원으로부터 서류를 하나 송달받았는데, 대한민국으로부터 위 패소한 1심사건(항소심은 항소를 취하하여 소송비용 상환대상이 아닙니다)의 소송비용을 물어내라는 신청이 있으니, 이 신청에 대한 의견을 밝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소송에서 패소하는 경우 소송비용을 물어내라는 소송비용확정절차가 법에 보장되어 있고, 많이들 하는 것이어서 그런가 하고 신청인, 즉 국가가 물어내라고 요구하는 소송비용의 내역과 금액을 보았습니다. 순간 뒤집어지는줄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대한민국은 위 패소한 1심사건의 변호사보수로 착수금 770만원, 성공보수금 770만원 합계 1540만원의 지급을 약정했다면서 그 1540만원을 제게 물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뒤집어질 정도로 깜짝 놀란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1540만원의 산출 근거문제였습니다. 변호사보수란 정해진 금액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소송비용으로 변호사보수, 즉 수임료를 얼마나 산입할 것인지는 문제입니다. 가령, 똑같은 사건이라도 변호사마다 수임료로 받는 돈은 다 제각각인지라 패소하는 사람이 자신이 패소시 물어내야 할 소송비용이 얼마인지가 예측이 안되는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을 만들어 소송의 소가, 즉 '소송에서 주장하는 이익을 금전으로 표시한 값'에 따라 소송비용에 산입되는 변호사보수의 액수를 정해두었습니다. 위 사건의 경우 소가가 2000만 100원이었는데, 이 규칙에 따르면 소송비용에 산입되는 변호사보수는 150만 6원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기화로 하여 제게 소송비용의 상환을 신청하면서 상환할 소송비용에 산입되는 변호사보수로 1540만원을 적어넣은 것입니다. 저에 대한 소송비용상환신청은 변호사가 신청서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돈을 국가가 변호사에게 지급하였는지는 차치하고 국가가 버젓이 이러한 금액을 적어 신청하면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을 모르는 일반인들의 경우 그런가 보다 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무려 1390만원이나 많은 돈을 상환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것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가 이런 비윤리적인 행위를 해도 되는 것인지 놀랍고 황당하였습니다.

둘째는 국가가 변호사에게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는 착수금 770만원, 성공보수금 770만원 합계 1540만원의 규모입니다. 대개 변호사들이 수임료를 산정하는 기준은 소송의 난이도와 함께 소가를 주요하게 고려합니다. 그런데 수임료라는 것이 받는 쪽만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고, 주는 쪽도 수긍할 수 있는 금액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소송의 난이도라는 것은 받는 변호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주는 의뢰인 입장에서는 덜 중요한 기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의뢰인들은 그 소송에서 결국 자신이 받는 금전적 이익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이지, 그 소송이 얼마나 어려운 법적 쟁점을 가지고 있는지는 부차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수임료의 산정은 소가, 즉 '소송에서 주장하는 이익을 금전으로 표시한 값'에 따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대개의 변호사들은 소가가 낮은 금액(얼마의 금액이 낮은 것이냐는 정해진바 없습니다만, 대개 5000만원 정도를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은 잘 수임하려 들지 않고, 수임한다고 하여도 소가가 낮은 금액은 수임료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소가가 불과 2000만원이라면 원고는 그 소송에서 전부 승소한다고 해도 얻는 금전적 이익이 2000만원이고, 이 돈도 피고가 재산이 없는 경우 등에는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터에 당장 현금이 나가는 수임료로 많은 금액을 지출하기는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소송을 당하는 피고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명이 길었습니다만, 요컨대, 제가 대한민국이 변호사에게 약정했다는 착수금 770만원, 성공보수금 770만원 합계 1540만원을 보고 놀란 이유는 불과 2000만 100원의 소가를 가진 소송에서 변호사비로 1540만원을 지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1심에서 국가가 선임한 변호사는 정부법무공단이었습니다. 대개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낮은 금액의 착수금(제 주변 변호사를 보면 220만원의 착수금을 받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사건을 수행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에 비추어서도 1540만원은 이례적인데, 선임변호사가 대형로펌도 아닌 정부법무공단임에도 1540만원의 수임료를 약정했다니 더욱 놀라웠습니다.

요즘 변호사업계가 대단히 어렵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소가 1억원짜리 사건도 착수금 550만원(50만원은 부가가치세입니다. 따라서 실제 수임료는 500만원입니다)을 받기가 어려운 것은 변호사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소가 2000만 100원의 사건의 착수금으로 770만원, 성공보수금 770만원 합계 1540만원을 약정하다니, 이 정도면 가히 변호사업계를 구원하실 황금의 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내용의 약정이 진실로 존재한 것일까요? 만일 그런거라면 저는 국가의 이러한 약정이 불황에 빠져 허우덕거리는 변호사업계에 대한 창조경제의 구체적 발현이 아닌가 헤아려 볼 따름입니다.

의견서를 써서 특히 1540만원의 산정의 문제점을 적어 제출하기는 하였습니다만, 입맛이 매우 씁쓸합니다. 국가가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지켜야 할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 것인데, 이건 아무래도 그 기준에서 많이 일탈한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개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법률사무소 창신 변호사이며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입니다.



태그:#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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