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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있으면, 그의 곁에는 항상 보좌관이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 상당 부분에 보좌진의 손길이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슴팍에 배지를 단 의원뿐이다. 그렇다면, 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는 보좌진들의 생활은 어떨까. 밤을 새워 일해 국회의원을 빛나게 하지만, 평생 '4년짜리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보좌진들의 정치 역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편집자말]
스스로를 '생계형 보좌관'이라 칭하는 손낙구 보좌관. 노동계에서 뼈가 굵은 그는 민주노총 대변인을 그만 둔 직후,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수석정무보좌관으로 4년 동안 일했다. 19대 국회에서 최원식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요즘 '노동법원'에 꽂혀 있다.
 스스로를 '생계형 보좌관'이라 칭하는 손낙구 보좌관. 노동계에서 뼈가 굵은 그는 민주노총 대변인을 그만 둔 직후,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수석정무보좌관으로 4년 동안 일했다. 19대 국회에서 최원식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요즘 '노동법원'에 꽂혀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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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야 생계형 보좌관이지. 심상정 의원 보좌관 그만두고 나서 2년 놀았더니 큰일 날 상황에 처한 거야.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손학규 대표 방에서 보좌관을 뽑더라고. 거기서도 내가 보좌관에 지원한 게 부담스러웠는지 다른 쪽으로 좋고 번드르르한 자리, 높은 자리 준다기에 내가 물었지. '거기 월급 줍니까'."

'높은 자리'는 월급 대신 활동비 조로 일정금액을 지급한다는 말에, 손낙구 보좌관(현 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 보좌관)은 "나 보좌관 할랍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생계형 보좌관'이라 칭하는 손 보좌관은, 그의 뜻대로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 의원실 보좌관으로 입성했다. 지난 2011년의 일이다.

'손낙구' 이름 석자에 '보좌관'이 따라 붙기 시작한 건 2004년부터다. 그는 1986년부터 19년 동안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2004년까지 5년 동안 민주노총의 입 역할을 했다. 노동계에 뼈가 굵은 그는 민주노총 대변인을 그만 둔 직후,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수석정무보좌관으로 4년 동안 일했다. 그때 일한 결과물이 <부동산 계급사회>(2008)와 <대한민국 정치 사회지도>(2010)다. 두 책은 한국사회 부동산 문제와 투표행태를 정밀 분석한 명저로 꼽힌다. 부동산 하면 손낙구가 자연스레 떠오르던 때다.

18대 국회에서 손학규 의원의 보좌관이 된 그는 손 의원이 발의한 협동조합법을 만들어냈다. 경제적 약자들이 조합원이 되는 공동출자 기업인 협동조합은 재벌 독점 경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협동조합의 골간을 지탱할 법을 만든 손 보좌관은 "보람있는 일이었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 최원식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요즘 '노동법원'에 꽂혀 있다. 사용주와 노동자는 처음부터 불균등한 위치에서 법적 다툼을 시작하기에 노동법원과 같은 특수법원에서 따로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미 10개의 법안을 만들어놨다.

이처럼 17,18,19대를 거친 그의 정치 이력에는 항상 정책이 남는다.

"정책 중심 의정 활동이 사실 잘 안 된다. 거기에 보좌관이 기여를 많이 해야한다. 정치 발전에 중요한 지점이다. 보좌관들은 정책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의원들은 그런 보좌관을 아껴줬으면 좋겠다."

19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손 보좌관이 다른 보좌관, 의원들을 향해 남긴 당부다.

"경제 부분 너무 몰라" 쪽팔려 공부하다 전문가 된 사연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
▲ 책 겉그림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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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손 보좌관은 심상정 의원 보좌관으로 국회에 첫발을 디뎠다. 부동산 전문가로 불리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것도 심 의원 보좌관이던 시절 다져진 공력 덕분이다.

당시 치솟는 부동산 값이 이슈였다. 이를 견제해야할 민주노동당에서는 매일 새로운 얘깃거리가 나와야만 했다. 모두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 의원 입만 쳐다봤다.

경제 부분을 맡았던 그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단어 뜻도 모른 상태에서 잔뜩 기가 죽었"던 그는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부에 자료를 요청했고 정리했고 분석했다. 그렇게 3~4년 동안 매해 80p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그 자료를 모아 책으로 정리한 것이 <부동산 계급사회>다.

'너무 몰라서 쪽팔려 공부했던' 그는 부동산 전문가가 됐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 해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금도 전세는 오른다. 사람들은 집 때문에 운다. 너무 답답해 요새도 외국 사례를 계속 들춰본다. 한국에 그대로 제도를 수입하면 될까 의구심이 든다. 국가가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외국의 좋은 사례들을 한국에 접목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모두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4·1 부동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그 후 2011년, 그가 손 대표 방 보좌관이 된 것은 그야말로 '뉴스거리'였다. 30여 년 동안 노동과 그 주변의 길을 걸었던 그의 이력에 '민주당'이 적히는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한 일로 여겨졌던 터다. 손학규 대표가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군으로 이름 올리던 때라 더욱 그랬다.

변신의 이면에는 대선패배,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가 자리하고 있다.

"대선 끝나고는 완전 반성 모드였다. 민주 정부 10년의 실패만이 아니라 진보도 무식했다는 게 나의 판단이었다. 거기에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도 겹쳤다. 무력증에 시달렸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08년 심상정 의원 배지 떨어진 후 책 쓰는 데만 몰두했다. 책 쓸 때만 의욕이 나더라.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의 시간이 1년 남짓 흘렀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가 택한 것은 공부다. 쉰을 목전에 둔 때였다. 대학 시절 사학과 동기가 교수로 있고, '데모 좀 그만 하라'고 말리던 조교 형이 지도교수였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1년 6개월 동안, 눈 뜨자마자 학교에 가고 밤 10시까지 공부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손 보좌관에게는 '스스로를 살린 기간'이다. 마음의 정리도 마쳤다. "30년 동안 노동계에서 일했으면 됐다"는 마음이었다.

그때, 손학규 대표 의원실에 기획재정위 담당 정책보좌관 공모가 떴다. 이력서를 제출하며, 같이 일하던 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한 켠에 밀어둘 수밖에 없었다. 당장 출근하지 않으면 큰일 날 지경이었다. '가정 건사와 생활, 일자리', 이 세 가지가 그에게는 당면 과제였다.

손 보좌관의 이력서를 받아 본 손 대표 측은 당황했다. 일단 '이 손낙구가 그 손낙구가 맞는지'부터 알아봤다는 후문이다. 진보 쪽 정책통으로, 국회의원보다 더 유명한 보좌관으로 익히 알려져 있던 터다. 그런 그가 민주당 행을 택한 데 대해 물음표부터 찍혔던 것이다.

손 보좌관은 "내가 보좌관 하겠다고 하니 부자연스러웠는지 고민을 하더라, 아마 '만만치 않게 빨간 놈인데 데리고 와서 욕 먹는 거 아닌가' 싶었을 거"라고 전했다. 결국,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손 보좌관은 다시 국회에 입성했다. '손학규 의원 보좌관'으로서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협동조합 기본법 손대던 그 순간 못 잊어"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된 손학규 대표의 슬로건 '저녁 있는 삶'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패러다임 전환이 골자다. 이 역시 손낙구 보좌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정책이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된 손학규 대표의 슬로건 '저녁 있는 삶'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패러다임 전환이 골자다. 이 역시 손낙구 보좌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정책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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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보좌관은 '협동조합 기본법'에 처음 손대기 시작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손학규 대표는 매 주말마다 공부를 했는데, 그날도 사회적 경제 공부를 위해 협동조합 연구소 사람을 불러서 강의를 들었다. 강연을 듣고 있는데 순간, 손 대표랑 나랑 이 자리를 만든 교수 셋이 눈이 딱 마주치더라. '이거 봐라, 해볼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셋 모두를 스친 거다."

'재벌 독점 경제가 아닌 다른 경제 영역으로서 협동조합(경제적 약자들이 조합원이 되는 공동출자 기업)을 키워 볼 수 있겠다'는 운명적 교감은 즉각 실행으로 이어졌다. 손 보좌관은 3달 동안 협동조합 추진 단체, 학계 전문가들과 매주 회의를 하며 법안을 만들어 냈다. 야당 대표의 권력이 합쳐져 협동조합법은 당론으로 추진됐고,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을 통해, 산업·금융·소비 부문으로 제한됐던 협동조합 설립분야가 금융·보험업 외의 모든 업종으로 확대됐다. 또 5명만 모이면 신고만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보람있는 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협동조합법을 만든 일이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된 손 대표의 슬로건 '저녁 있는 삶' 역시 사회 경제 대안으로 내놓은 정책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패러다임 전환이 골자다. 이 역시 손 보좌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정책이다.

그는 손 대표와 함께 한 의정활동에 대해 "(손학규 대표가) 야당 대표고 유력 대선 경선 주자다 보니 정책을 다루면 목소리에 실리는 힘이 달라진다, 영향도 크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컸다"며 "새로운 경험이었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경제에서 법으로, '생활 밀착형 정치' 강조

19대 국회에서는 손 보좌관이 다루는 영역이 달라졌다. 그동안 경제 분야에서 활동한 의원 보좌관을 맡아온 그가 이번에는 법제사법위원인 최원식 의원의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 의원은 대선 경선 당시 손 대표의 비서실장이기도 했다. 법의 영역에서도 그의 역할은 계속됐다. 이번에 꽂힌 건 '노동법원'이다.

"노동 관련 사건은 힘 센 자본가와 힘 없는 노동 자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출발이 이미 불균등한 특수성이 있다. 기존 법과 성격이 다르니 이를 담당하는 법을 특수 법원으로 따로 만들어야 한다."

변호사 출신인 최 의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노동법원' 만들기 움직임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간 노동법원이 있는 독일·프랑스·영국의 법률 체계를 다 살펴봤고 노동법원에 뜻을 함께 사람들을 불러 간담회도 진행했다. 법제실과 함께 직접 법안도 만들었다. 3개월여의 노력 끝에 노동법원 설치를 위한 법안 10개가 탄생됐다. 아직은 발의 전이다. 이제 관련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원의 정치력이 남았다.

10여 년 간 의원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그에게 국회의원은 "일은 뼈 빠지게 하면서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욕 많이 먹는 직업"이다. 밤낮 없이 일함에도 욕을 먹는 건 "생활 정치의 정답을 그 어떤 정치인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 보좌관은 인터뷰 내내 '생활 밀착형 정치'를 강조했다. 누가 더 치열하게 고민해서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나아지게 할 진짜 대책을 내놓느냐를 두고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력을 갖춘 사람이 진짜 진보"라는 것이 손 보좌관의 철학이다.

의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다.

"상임위 들어가 보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더라. 관점은 다르지만 정확히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전반적으로 해당 상임위 문제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 기관장 앉혀 놓고 질의하는데 내 얼굴이 화끈 거릴 때가 많다. 야당이라면 다른 관점에서 대책을 내놓고 상대로부터 일리 있다 평가를 들어야지 '모르고 하는 얘기'라는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나. 진짜 많이 반성해야 한다."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 비판에 집중하는 풍토 역시 바뀌어야 한다. 그는 "일상의 정치 활동에서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데 선거 때가 된다고 그게 만들어 지겠냐"고 꼬집었다. 지난 총·대선에서도 야권은 안심하고 정권을 맡길만한 존재는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함께 일하는 최 의원을 향해서도 "너무 술을 많이 먹고 일 욕심이 많아 이것 저것 많이도 맡아 온다"며 "우리 의원에 대해 뭐라고 할 것도 정말 많다"고 칼을 빼 들었다. 그러나 그 칼은 양날의 검이었다. '일을 많이 맡아 오는 건' 공부를 많이 하고 성실한 습성 때문이라는 게다. 결국은 칭찬 모드다.

"상임위 활동 할 때도 판결문을 꼼꼼히 보고 발언한다. 판결문 구하느라 우리는 일이 엄청 많지만, 의원의 발언에는 무게가 실리지. 정곡을 찌르거든. 또 뭐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자료 모아달라고 하니 내가 선행 학습을 해야 해. 연말에 경제와 복지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책 다 찾아보고 책에 안 담긴 학술논문·외국사례·언론 기사 다 모아서 양면 출력해서 제본 떠 줬잖아. 책 4권에 제본한 거 7권을 건네줬지. 그랬더니 한 달 내내 읽고는 '다음에는 복지부분 자료 모아주세요'라더라. 또 복지 선행 학습을 시작했어."

함께 한 의원 칭찬에 입에 침이 마른다. 나이가 비슷해 서로 존칭을 쓴다는 의원과 보좌관이다. 최원식 의원과 손낙구 보좌관은 상하관계가 아닌 동반자로 보였다.

"우리방은 거의 독서실 수준"
최원식 의원이 말하는 손낙구 보좌관

민주통합당 최원식 의원.
 민주통합당 최원식 의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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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낙구 보좌관과 처음 인연이 된 건 손학규 대표 때문이었던 걸로 안다.
"손 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갔을 때 손 보좌관이 모든 정책을 총괄했다. 정책통이었다. 당시 손 대표가 손낙구 보좌관을 내 보좌관으로 추천했는데, 손 보좌관이 내게 재신임을 묻더라. '손 대표 추천 때문이면 굳이 채용 안 해도 된다'고. 그 때 내가 말했다. '손학규는 경선에서 졌지만 나는 손낙구를 얻은 거'라고."

- 함께 일해보니 손낙구 보좌관은 어떻던가.
"경제, 복지, 정치 개혁 등등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달라고 하면 논문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준다. 책도 추천해 주고. 졸지에 내가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도 법안 발의 하려고 하니 책 두 권을 자료로 만들어 주더라. 내가 정책 쓰나미에 시달리고 있다. 정말 유능하다. 이런 인재가 그동안 부각되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다.

물론 진보당에서는 이름을 떨쳤지만 민주당에서는 또 다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균형감이 있다. 정치력, 전략도 있다. 법안 하나 통과시키려고 하면 전략이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법도 굉장히 어렵게 통과됐는데, 권력관계나 의원 간 친소 관계를 잘 활용해서 전략을 짜더라. 협동조합법은 우리나라 경제사의  한 국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될 것이다. 손학규와 손낙구가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물 아닌가 싶다."

- 인간 손낙구는 어떤가.
"말이 없다. 진짜 할 말만 한다. 옆에 있으면 무뚝뚝하지만 친근한 느낌도 들고 듬직하다. 리더십도 있다. 손 보좌관이 법사위가 처음인데도 팀들을 관리해서 역할분담을 따박따박해주고 쟁점도 던진다. 회의도 직접 주재한다. 우리 방 와보면 알겠지만 거의 독서실 수준이다. 그 분위기를 만든 대표적인 사람이 손낙구다. 계속 자료 옆에 쌓아놓고 글쓰고 분석하고 정리하니, 다른 보좌관, 비서관에게도 영향을 미칠밖에."

- 의원과 보좌관의 관계, 어떻게 이뤄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손 보좌관 정도는 거의 동업 관계다. 우리 방은 법률적인 부분은 내가 좀 알아도 다른 부분은 내가 좀 미흡하다. 그런 점을 손 보좌관이 채워준다. 손 보좌관은 민중 속에서 사는 삶을 실천하면서 뿌리 깊은 철학을 체화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가볍지 않다. 믿음이 간다. 나는 큰 가닥만 잡을 뿐 대부분의 일을 맡기는 편이다. 정치를 함께 하는 동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능력 있고 뛰어난 보좌관들이 여의도 정치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런 부분이 앞으로도 잘 부각됐으면 한다."



태그:#보좌관, #손낙구, #손학규, #최원식,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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