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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사장이 물러났다. 170일간의 파업과 230명이 넘는 대량 징계는 그가 남긴 상처다. 이제는 그 후가 중요하다. 상처를 씻기 위해, MBC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오마이뉴스>는 MBC 내부 인사와 언론 전문가 릴레이 기고를 통해 그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말]
김재철 MBC 사장이 3월 26일 오전 자신에 대한 해임안이 논의될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 방문진 도착하는 김재철 MBC사장 김재철 MBC 사장이 3월 26일 오전 자신에 대한 해임안이 논의될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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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씨가 드디어 MBC를 떠났다. 지난 한 해 MBC의 온 구성원들이 그토록 나갈 것을 요구했지만 끈질기게 버티던 그였다. 오로지 청와대 한 곳만 바라보며, 청와대 한 곳을 향해 읍소하던 그가 드디어 떠난 것이다. 정권재창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자부하던 그로서는 갑작스런 해임 소식에 만감이 교차했을 법하다. 권불십년이란 말이 실감났을 법하다. MBC 사장 노릇을 3년이나 했지만 1년 남은 임기를 마저 채우겠다고, 그 기간 동안 자신에게 반기를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벼르던 그였다.

사실 그는 이미 많은 보복을 했다. 파업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을 철저히 짓밟았다. 입사한 지 20년 안팎이 된 고참들을 일명 '신천교육대(서울 신천동 MBC아카데미)'로 보내 '브런치' 만드는 교육을 시키고, 신사옥건설국에 기자와 PD들을 내쫓아 작업현장에서 안전모를 쓰게 했다. 또 왕복 4시간 걸리는 용인 드라미아 개발단에 아나운서와 카메라 감독들을 보내 드라마 세트장 관리를 시키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파업 참가자들에게 욕을 보였다.

200여 명 넘는 징계... '해고 불감증' 김재철 사장

그 기간 동안에도 혹여 회사정책을 비판하며 바른 말을 하는 직원이 있다면 "직장질서 문란"이라는 둥, "회사명예 실추"라는 둥 온갖 이유를 달아 이중, 삼중의 징계를 서슴지 않았다. 이 바람에 김재철씨가 MBC 사장으로 있는 동안 징계를 받은 사람은 본사에서만 전체 조합원의 20%, 200여 명에 달할 정도이다. 역대 MBC 내에서 징계를 받은 사람들을 모두 합해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해고와 정직 등 구성원들의 숨통을 끊는 징계가 너무 쉽게 내려졌다. 오죽하면 "해고 불감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을까.

이 바람에 파업 이후에도 현업에 복귀하지 못한 구성원들이 100여 명에 달했다. 여기에 업무에 복귀는 했지만 실제 업무를 맡기지 않아 사실상 유휴인력이 되어버린 구성원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동안 MBC의 입과 얼굴 노릇을 하며 시청자들에게 낯익었던 수많은 아나운서와 기자, PD들이 화면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소위 '시용' 직원들로 채웠다. 김재철씨가 지난 1년 동안 새로 뽑은 경력 직원만 무려 1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기자가 50여 명이다. 실제 저녁 <뉴스데스크> 제작을 위해 현장에서 뛰는 기자는 100여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뉴스데스크>를 채우는 기자들의 절반 정도가 김재철이 뽑은 인력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핵심 부서를 차지하고 기존 인력은 사실상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으니 <뉴스데스크> 제작진이 모두 교체된 것이나 다름없다.

아나운서들은 또 어떠한가. 그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껏 받았던 아나운서들을 더 이상 MBC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가끔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3분 반짜리 <MBC 뉴스>를 읽는 목소리 이외에 그들의 존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다소 어눌한 발음이지만 예리한 시각으로 정곡을 찔러대던 시사PD들은 더 이상 MBC에 존재하지 않는다. MBC에는 이제 "김재철 키즈"들만 남아 있는 것이다.

"김재철의 피아 구분에 MBC는 폐허"

MBC노조 이창순 보도부위원장, 김인한 기술부위원장, 김민식 편재부위원장, 정세영 영상미술부위원장이 2012년 10월 29일 오전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김재철 사장 해임'을 촉구하며 삭발단식농성에 돌입했다.
 MBC노조 이창순 보도부위원장, 김인한 기술부위원장, 김민식 편재부위원장, 정세영 영상미술부위원장이 2012년 10월 29일 오전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김재철 사장 해임'을 촉구하며 삭발단식농성에 돌입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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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오로지 "김재철 편이냐 아니냐"라는 단 하나의 '개인적 판단'에 따른 인사 정책으로 인해 MBC가 폐허가 되어버린 것이다. 방송의 경쟁력은 콘텐츠이다. 그리고 그 콘텐츠의 핵심은 고급인력이다. 그런데 김재철씨는 MBC가 수 십 년 동안 길러온 고급인력들을 자신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한 순간에 헌신짝 취급하듯 내다버렸다. 동네 구멍가게 사장님조차도 종업원들에게 하지 않을 일을 너무 쉽게 했다.

그 결과는 시청자들의 신뢰 상실이다. MBC에 대해 "케이블TV를 보는 것 같다", "요즘 잘 안 본다"는 말이 이제 보통이 되었다. 공영성이나 공정성을 잃은 것은 차치하고, 지상파 방송으로서 기본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바람에 MBC의 경쟁력은 꼴찌이다. 종편에도 밀릴 것이란 말이 나온 지도 한참 되었다. 온 국민의 재산인 MBC를 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하게 취급한 결과인 것이다. MBC가 김재철씨 개인 회사였다면 이 정도까지는 못했을 것이란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제 김재철씨가 떠났다. 그렇다면 MBC는 정상화될 것인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김재철 씨가 지난 3년 동안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는 것만 해도 간단하지 않다. 우선 엉망이 되어버린 조직을 추슬러야 한다. 세트장 관리를 하거나 브런치를 만들고 있는 기자들에게 "공정한 마이크"를 돌려주어야 하고, 시사PD들에게 그들의 프로그램을 되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드라마와 예능 PD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의욕을 느낄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추겨야 한다. 아나운서들에게 다시 시청자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김재철 키즈'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존 인력들과 새로 들어온 '김재철 키즈들' 간의 갈등과 불화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인사조차 건네지 않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다.

김재철씨가 파업에 참여했던 기존 인력들을 포용하지 못하자, 무모하게도 구성원들을 힘으로 다스리겠다며 일부러 적대적 인력들을 자꾸 늘려 뽑은 결과이다. 구성원들 간의 화합이 없이 콘텐츠를 생명으로 하는 회사가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재철씨가 뿌려놓고 떠난 재앙이다. 그의 처절한 사후 복수인 것이다.

정치적 사욕 벗고 자율성 회복, 후임 사장의 급선무

지난 16년 동안 필자가 지켜본 MBC는 구성원들의 자율성이 가장 보장되는 회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MBC의 경쟁력은 바로 이 자율성에서 나왔다고 감히 자부한다. 후배가 선배에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고, 선배가 후배의 의견을 들어 반영할 줄 아는 조직. 간부라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조직. 그 MBC가 지금 사라져버렸다. 이제 김재철씨가 떠난 MBC의 최대 과제는 바로 이 자율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게 바로 후임 경영진이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또 하나는 공영방송답게 MBC에 '정치적인 사욕'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후임 경영진 인사에 정부 여당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사장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물러난 뒤에 칭찬은 몰라도 김재철씨만큼 비난을 받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단언컨대 김재철씨가 본인 스스로도 실패하고 조직도 망가뜨렸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의지의 과도한 개입이었다.

김재철씨는 MBC 사장으로 재직하던 기간 내내 역대 어느 사장도 누리지 못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구성원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여론의 귀추에도 관심이 없었다. 오죽하면 '제왕적 사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런 말이 나온 배경에는 물론 청와대가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재철씨의 끈끈한 인연.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도 김재철씨의 모친상을 직접 찾아 위로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의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관계를 지배해버린 것이다. 본사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방문진까지도, 청와대라는 권력을 배경으로 갖고 있던 그에게는 장기판의 '졸'(卒)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오만함으로 인해 그는 조직을 망가뜨리고 영원히 잊히지 않을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입니다. MBC 기자였던 그는 2012년 3월,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습니다.



태그:#김재철 사장,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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