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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진료 합니다."

진주의료원 현관문에 붙어 있는 '휴업 안내문'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문구. 폐업을 결정했던 경남도가 발표한 휴업 예고기간(3월 18일부터) 마지막 날인 30일에도 진주의료원에서는 간호사와 직원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정상 진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응급실이며 병실마다 대부분 정상진료를 하고 있지만, 환자가 없는 침대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경남도가 폐업 발표했던 지난 2월 26일에는  환자 203명이 입원해 있었는데, 이날에는 71명의 환자들이 침대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 누워서 끝까지 버틸 겁니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의료원 현관문에 붙어 있는 '정상 진료 합니다'는 대자보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의료원 현관문에 붙어 있는 '정상 진료 합니다'는 대자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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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기로 결정하고 휴업까지 하기로 한 가운데, 휴업 예고 마지막날인 30일 오후 의료원의 한 병실에 환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기로 결정하고 휴업까지 하기로 한 가운데, 휴업 예고 마지막날인 30일 오후 의료원의 한 병실에 환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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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3월 30일까지 퇴원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라'고 했지만, 1/3 가량의 환자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진주의료원이 지금은 시끄러워도 언젠가는 정상 진료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기도 했지만, 이곳이 좋거나 다른 민간병원으로 쉽게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주말을 맞아 많은 가족들이 환자를 찾아왔지만, 환자나 가족이나 모두 불안과 걱정뿐이었다. 폐암 말기인 70대 남성 환자는 "이 병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눈물만 흘리고 있다"며 "경남도청에 싸우러 가고 싶지만 누워서 꼼짝도 할 수 없으니, 눈물만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남편의 손을 잡고 있던 부인은 "공무원들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데, 쉽게 갈 수 없다"며 "경남도에서 의료원을 없앤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 환자는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지난해 12월 진주의료원에 입원했다.

부인은 "다른 병원에는 오래 입원해 있을 수 없다, 근처 대형병원에 갔는데 며칠 입원해 있으니까 퇴원해도 된다고 해서 집에 갔다가 또 아파서 병원에 가기를 몇 차례 했다"며 "진주의료원은 오래 입원할 수 있어 좋고, 병원비도 다른 병원과 비교하면 많이 저렴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은 "여기서 누워서 끝까지 버틸 것"이라며 손에 힘을 주었다.

올해 91세인 한 환자는 "진주에서 80년 넘게 살았고 의료원 역사가 103년이나 되는데,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다"며 "다른 병원에 있다가 여기 왔는데 주변 환경도 쾌적하고 좋다, 계속 여기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옆 침대에 누워있던 80대 환자는 "우리가 경남도청에 찾아갈 수 없으니까 언론이 제발 제대로 보도해서, 우리 소원을 경남지사한테 좀 전달되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했던 경남도가 휴업을 실시한 가운데, 휴업 예고기간 마지막인 30일 오후 의료원 현관에 사용하지 않는 휠체어가 진열되어 있다.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했던 경남도가 휴업을 실시한 가운데, 휴업 예고기간 마지막인 30일 오후 의료원 현관에 사용하지 않는 휠체어가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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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30일 오후 정상 진료하고 있는 응급실에 환자가 없어 텅비어 있었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30일 오후 정상 진료하고 있는 응급실에 환자가 없어 텅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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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가족들은 한결같이 '다른 민간병원에서는 의료원처럼 오래 입원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강숙(57)씨는 민간병원과 진주의료원의 입원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민간병원은 환자가 오래 입원하는 것을 싫어한다.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환자가 새로 오면 각종 검사를 하면서 비용을 받아야 수익이 발생한다. 검사와 수술을 받지 않는 입원 환자들은 밥 먹고 잠자고 하는 비용에다 약품값 정도다. 오래 입원해 있으면 병원들은 돈이 안 된다며 싫어한다. 그런데 의료원은 그런 게 없어서 좋다."

진주의료원에는 10년 넘게 입원해 있었던 환자도 있었다. 그 환자는 더 있고 싶었지만, 이번에 경남도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라고 해서 며칠 전 할 수 없이 민간병원으로 갔다.

또 교통사고에다 '위 절제 시술'까지 받았던 김아무개씨는 2006년부터 입원해 있다가 며칠 전 사천의 한 병원으로 옮겨갔다. 김씨의 보호자들은 "꼭 싸워서 이겨 달라"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에 투쟁기금 50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환자 가족들은 "병원이 정상화 되면 다시 올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경남도 "의사들, 3월 퇴사해도 1개월 치 임금 더 주겠다"

진주의료원은 아직 폐업이 확정된 게 아니다. 경남도가 폐업 결정을 했지만, 경남도의회에서 관련 조례를 통과시켜야 한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을 '도립 의료원'에서 제외하는 관련 조례 개정안을 도의회에 제출해 놨고, 도의회는 이를 오는 4월 18일 처리할 예정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경남도에 두 차례 공문을 보내 '신중하게 하라'고 해 사실상 폐업에 제동을 걸었다. 야당과 노동계·시민사회 진영은 폐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남도는 폐업 강행에 변함이 없다.

폐업·휴업 발표를 했던 경남도는 의사 11명에 대해 '계약해지 통보'를 했고, 제약회사에 약품 공급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경남도는 지난 26일 의사들한테 보낸 '계약해지 관련 임금정산 문의에 따른 회신문'을 통해 "휴업 시에는 봉직하고 있는 진료과장 역할이 없어짐에 따라 부득이 하게 계약 해지일은 4월 21일"이라고 밝혔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휴업 예고기간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한 병실 앞의 모습이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에 대해 '보호자없는병원사업'을 벌여 간병인비를 일부 지원해 왔는데, 폐업 결정 이후 진주의료원에 대한 '보호자없는병원사업 철회를 결정했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휴업 예고기간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한 병실 앞의 모습이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에 대해 '보호자없는병원사업'을 벌여 간병인비를 일부 지원해 왔는데, 폐업 결정 이후 진주의료원에 대한 '보호자없는병원사업 철회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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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최근 의약품 공급업체 측은 의약품 공급 중지 통보를 했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최근 의약품 공급업체 측은 의약품 공급 중지 통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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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경남도는 "휴업 예고 기간 중 계약해지일 전 자진 퇴사시 임금 정산은, 계약해지일 이전 3월 중 퇴사하더라도 미지급된 임금과 4월분 급여(1개월)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리 환자에 대해서는 퇴원 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조치해 주기 바란다"는 조건을 달았다.

진주의료원에는 의약품 공급이 중지됐다. 의료원에 약품을 공급해 오던 ㈜케이비팜(Kb pharm)은 지난 25일 진주의료원에 공문을 보내 "폐업 절차에 따른 수금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므로 부득이 의약품 공급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30일 현재까지 의사 11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4월 첫째 주에 두세 명이 퇴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로 진주의료원에는 공중보건의 5명이 일하고 있다. 의약품 공급 중지 통보가 있었지만, 그동안 비축해 놓은 의약품이 있어 환자 진료에는 당분간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 '거짓 홍보'에 혈세 쓰다니..."

진주의료원 안팎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의료원 앞 도로 주변에는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폐업 철회' 등을 요구하며 내건 펼침막이 수십 개가 걸려 있으며, 의료원 건물 외벽에는 홍준표 경남지사를 비난하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울산경남본부 진주의료원지부는 의료원 현관에 농성장을 설치했고, 투쟁본부 사무실도 꾸렸다. 박석용 지부장은 "의사들에 대한 계약해지와 의약품 공급 중단 조치는 비의료적·비인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박 지부장은 "얼마 전 경남도가 휴업 발표를 하면서 마지막 환자까지 책임을 진다고 했는데, 의사를 내보내고 약품 공급을 끊는 게 책임을 지는 것이냐, 어불성설이다"라며 "경남도가 의약품 공급 회사에 전화를 걸어 (공급을) 중단케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울산경남본부 진주지부장(가운데)이 30일 오후 진주의료원 현관 농성장에서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울산경남본부 진주지부장(가운데)이 30일 오후 진주의료원 현관 농성장에서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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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공무원들은 환자들을 퇴원시키기 위해 아는 사람들을 동원하기도 하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며 "경남도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지금까지 해온 주장은 거의 대부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경남도는 적자를 이유로 의료원을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니 여론이 불리하니까 얼마 전에는 신문에 광고를 냈다"며 "그 광고비는 공짜로 낸 게 아니고 세금이 들어간 것 아니냐, 그것도 '거짓 홍보'를 하는 데 도민 혈세를 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홍준표 지사는 진주의료원을 두고 '강성노조 해방구'라고 표현했다. 박 지부장은 "'해방구'라는 단어조차 몰랐는데 이번에 알았다, 그런 위험천만한 단어를 쓰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노조는 '토요 무급 근무' 등에도 합의를 해줬다, 지부장이 사인까지 했고... 임금체불도 심했는데, 어떻게 강성노조란 말이냐"고 따졌다.

또 그는 "홍준표 지사는 진주에 '제2경남도청사'를 짓겠다고 공약했는데, 그 위치는 진주혁신도시 자리였다"며 "그런데 일부에서 진주의료원을 없애고 거기에 제2청사를 지어야 한다고 한다,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주의료원 환자와 가족들은 지난 2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을 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 27일 의료원에 가서 현장 조사를 벌였고, 위원회에서 심의를 해서 결과를 낼 예정"이라며 "4월 첫째 주에 결정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진주의료원 사태에 관심이 높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지방의료원에 국고가 지원되기에 폐업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은 애매한 입장이다. 이창희 진주시장과 김재경(진주을)·박대출(진주갑) 국회의원은 진주의료원 폐업 여부에 애매한 입장을 보이거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진주의료원에서는 단식농성과 집회 등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안외택 본부장을 비롯한 조합원 8명은 이날까지 4일째 경남도청 정문 옆 천막에서 단식농성하고 있다. 또 경남도의회 민주개혁연대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천막을 설치하고 철야농성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4월 13일 창원 만남의광장에서 '진주의료원 지키기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18일 경남도의회 앞에서 '영호남 노동자대회'를 연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가 폐업 결정한 진주의료원인데, 건물 외벽과 도로변에 홍준표 경남지사를 규탄하거나 폐업 철회를 요구하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경남도가 폐업 결정한 진주의료원인데, 건물 외벽과 도로변에 홍준표 경남지사를 규탄하거나 폐업 철회를 요구하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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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진주의료원, #경상남도, #보건의료노조, #홍준표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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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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