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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사장이 물러났다. 170일간의 파업과 230명이 넘는 대량 징계는 그가 남긴 상처다. 이제는 그 후가 중요하다. 상처를 씻기 위해, MBC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오마이뉴스>는 MBC 내부 인사와 언론 전문가 릴레이 기고를 통해 그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말]
김재철 MBC사장이 26일 오전 자신에 대한 해임안이 논의될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 방문진 도착하는 김재철 MBC사장 김재철 MBC사장이 26일 오전 자신에 대한 해임안이 논의될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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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김재철 전사장은 누가 뭐래도 타고난 뉴스메이커인 모양이다. 방송문화진흥회(아래 방문진)에 의해 해임된 이후에도 새로운 뉴스거리를 던져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른바 '먹튀' 논쟁이다.

해임의결이 단순히 최대주주인 방문진 내부의 의사결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직서 제출로 해임 주총을 개최할 법률적 이익이 해소되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의 귀책사유로 해임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의 사직서 제출은 미비한 규정의 허점을 이용한 '먹튀'행위에 불과하다는 상식적인 주장도 할 수 있다. 대표이사직의 사임과 주주총회에서의 이사직 해임은 별개라는 또다른 측면에서의 법률적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공무원의 경우 징계면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의 사표제출 및 수리행위는 법에 의해 금해지고 있다. 징계절차의 진행에 따라 비위행위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MBC사장의 공적 지위가 일반직 공무원에 비하여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방문진의 해임의결 후 이른바 '시용기자'의 정규직 전환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김사장의 결재행위를 그대로 방치해둔다거나 사직서를 제출하자 최소한의 고민도 없이 3억여 원에 달하는 퇴직금을 곧바로 지급해 버리는 경영진의 행위는 MBC에 드리워진 김재철 사장의 그늘이자 공영방송 MBC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결국은 그러한 안하무인적 행위가 자기 발등을 찍긴 했으나, 김재철 사장은 재임 3년여의 기간 동안 MBC를 거쳐 간 많은 선임 사장들이 보여주지 못했고, 개인 기업의 소유주도 감히 따라하기 힘든 절대권력을 행사해 왔다. 어떠한 이견의 존재 조차도 용납지 않는 절대권력은 김사장 해임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MBC 부장이 제안하는 아이템, 위로부터의 압력"

언젠가 MBC의 한 보직간부로부터 "MBC에서는 부장이 제안하는 아이템은 위로부터의 압력이고, 비정규직 작가의 제안은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진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들은 일이 있다. 일견 부정적인 평가로 보일 수 있으나 이 푸념이야 말로 이전 MBC의 건강성과 경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

보직간부들은 항상 자신의 제안이 후배들에게 자칫 압력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경계의 마음을 갖고 있고, 일선 기자, PD, 작가들은 꺼리낌없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열린 분위기, 이러한 구성원들의 인식이 MBC의 공영성을 그리고 경쟁력을 강화해온 중요한 요인이었다.

한때는 회사의 문화로 자리잡아 경영진 일부가 바뀐다 하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줄 알았던 이러한 MBC의 경쟁력은 김재철 사장 재임 3년간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우리 사회에 세시봉 열풍을 불러왔던 '놀러와' 프로그램이 시청율 저조를 이유로 갑자기 막을 내렸다.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드라마가 출연자들은 물론 제작 일선의 의견은 무시된 채 조기 종영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보도나 교양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4대강 사업' 관련 아이템은 정부의 시책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대상에서 제외됐다. '쌍용자동차' 관련 아이템은 노동조합의 일방적 입장을 홍보할 우려가 있다며 방송불가 결정이 내려졌다.

방송심의규정 제7조가 '방송의 공적 책임'이라는 제목하에 제8항에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규정의 의미는 그리고 그에 따른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는 전혀 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백보 양보하여 위 사안들은 정치적 논란의 여지가 있어 그랬다 치더라도 일부 보직간부들의 경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템의 경우 '뉴스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한 시청율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떤가. '시청율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의 제작·방송을 원천봉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비상식적 인사정횡, 참담한 현실로 나타나다

MBC 최일구 앵커와 김수진 기자가 해직기자의 복직을 외치며 2012년 6월 4일 1인 시위를 벌였다.
 MBC 최일구 앵커와 김수진 기자가 해직기자의 복직을 외치며 2012년 6월 4일 1인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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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들에 대한 인사전횡의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70일 파업을 이끌었던 노조 집행부의 경우는 별론으로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박성호, 박성재 두 전·현직 기자회장 그리고 PD수첩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승호 PD, X-파일 보도로 MBC의 성가를 높였던 이상호 기자의 해고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적합한 해고 사유를 찾을 수가 없다.

또한 700명을 넘는 파업 참가자들 중 일부를 특별한 이유없이 제작과 무관한 부서에 배치하고 그중 일부는 이른바 '신천교육대'에 보내 방송과 무관한 교육을 받게 하고 있는 점, 또한 일반인의 상식으로 판단하더라도 납득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비상식적 인사전횡의 결과는 차차 현실의 참담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말 뉴스의 인기앵커였던 최일구 기자 등이 모멸감과 자괴감에 사표를 던졌다. 20~30년의 세월 MBC의 구성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고참 사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버린지 오래고, 그저 시간이 가서 정년퇴직하기만을 기다린다"며 자조섞인 발언을 서슴지 않기에 이르렀다.

방송은 사람이 만든다. 그러기에 좋은 프로그램의 제작은 제작 일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 노력에 의해 가능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MBC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다.

고위층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 아이템 선정에 제약을 받게 되고, 시청율이라는 일률적 잣대에 의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가 판단되어지는 한, 그리고 과거 MBC의 영광을 기억하는 선배 사원들은 의욕을 잃고 MBC를 떠날 궁리만 하고, 젊은 기자와 PD들은 회사내 권력자들의 눈치만 살피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MBC에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2009년 8기 이사회 구성부터 예견되거나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이사회는 방문진의 권한을 넘어 과거에 방송된 개별 프로그램의 내용까지 문제삼기 일쑤였다. 그러한 프로그램을 방치한(?) 경영진의 무능을 무차별 비난했으며, 방송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외압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들은 경영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으로 치부되었다.

그 결과 당시 경영진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이후 김사장 취임 후 3년, 2009년 당시 방문진 이사회에서의 주장은 김사장 해임 후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MBC의 절대권력을 만들어 냈다. 김사장의 퇴진이 MBC 문제의 해결일 수는 없다. 그러기에 얼떨결에 닥친 현재의 상황이 즐겁지만은 않다. 짙게 드리워진 MBC의 절대권력 김재철의 그늘이 상황을 더욱 그렇게 만든다.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해고자들은 원직에 복직되어야 하고, 제작 일선에서 쫓겨난 유능한 인력들은 현업에 복귀해야 한다. 그리고 MBC 경쟁력의 강력한 토대가 되었던 제작 자율성 보장의 제도적 틀이 복구되면 된다. 그러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MBC의 부활이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MBC에 드리워진 김재철의 그늘이 여전히 짙고, 그늘은 경험한 자들은 빛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1988년에 출범한 방문진 체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에 유효한 제도로 인식됐다. 방문진은 MBC의 경영진을 임명하는 역할에 그친다. 방문진이 임명한 경영진은 일정 인사권과 경영권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되 제도로 보장된 제작 및 편성자율권의 틀을 유지시켜 준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공영방송 MBC의 경쟁력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선순환 구조는 깨진 지 오래다.

선순환 구조의 부활은 출발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방문진으로 상징되는 공영방송 MBC에 대한 거버넌스 구조는 대폭 개편되어야 한다.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관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현재의 구조는 이미 그 유효성을 상실하였다. 어느 정치세력도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공영방송의 운명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이것이 지난 3년여에 걸친 '김재철 파동'이 던져준 교훈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한상혁 변호사는 2009~2012년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활동했습니다.



태그:#김재철, #방문진, #제작자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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