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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너는 첫판부터 장난질이냐?"
"아야. 슬슬 오함마 준비해야 쓰겄다."

2009년 개봉해 누적관객수 684만 명을 기록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에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도박사 '아귀'가 등장한다. 아귀는 화투판에서 속임수를 쓰는 도박사들을 잡아 '손모가지'를 자르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인물이다. 일본말로 '큰 망치'를 뜻하는 '오함마'는 아귀가 속임수를 응징할 때 쓰는 도구다.

'장난질'이라는 단어의 강렬함 때문일까. 28일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2013 경제정책방향'은 유난히 <타짜>의 아귀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2.3%. 지난해 9월 전망이던 4%에서 6개월 만에 무려 1.7%가 빠졌다. 올해 법인세와 소득세의 근거가 되는 2012년 성장률도 당초 3.3%에서 1.3% 낮아진 2%에 그쳤다.

법인세와 부가세, 소득세 등이 전체 세수의 75%를 넘는 현행 국세 구조상 경제 성장률은 국가의 세금 수입과 직결된다. 정부는 이날 자료를 통해 성장률 저하로 내국세 부문에서만 6조 원 정도가 부족하며 4월 안에 추경 계획을 내놓겠다고 알렸다. 추경액으로 많게는 15조 원까지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뻥튀기' 된 2013 세수..."'균형재정' 맞추려고" 

올해 세금 수입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해 9월 MB정부가 2013년 예산안을 발표할 때부터 줄기차게 제기됐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총수입을 373.1조 원, 총 지출을 342.5조 원으로 편성한 예산안을 내놨다. 좋지 않은 경기 여건 속에서도 국세는 2012년 대비 6.4% 증가한 216조 4000억 원이 걷힐 것으로 추산했다.

기재부는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며 근거로 '4% 내외'의 경제성장률을 들었다. 2013년 경제성장률이 이같이 나오면 충분히 가능한 숫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경제연구기관의 추정과는 차이가 컸다. LG 경제연구원은 발표 하루 전인 9월 23일 2013년 경제성장률을 3.3%로,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그에 앞서 3.4%라는 전망치를 내놓은 터였다.

지난해 9월 2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재부 브리핑이 끝나자 기자들의 질문은 이 부분에 집중됐다. 가능한 세금 수입에 비해 예상치를 높게 잡은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굳이 경제부 기자들이 아니더라도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경기 부진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기재부 관료들은 누구도 이 질문에 수긍하지 않았다.

현 국무총리실장인 김동연 당시 기재부 2차관은 '내년 세수 전망이 좋지 않은데 덜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책 목표와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면서 '딴소리'를 내놨다.

현 기재부 2차관인 이석준 당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기자들이 재차 묻자 "세입 수입 달성을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할 예정"이라면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여러 가지 방법과 예산을 통해서 해결 하겠다"고 답했다.

이색적인 경제성장률 전망을 통해 MB정부가 얻어낸 것은 임기 마지막해의 '균형재정' 간판이었다. 총수입과 총지출이 같은 상태인 균형재정 달성은 MB정부 후기 주요 국정 목표 중 하나였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8·15 경축사에서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 하겠다"고 시기를 못 박아 당시 여야 의원들로부터 "현실성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2013년 성장률 전망 '2.3%'...정말?

박근혜 정부는 28일 급격히 쪼그라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내놓으며 MB정부가 친 '숫자 장난'을 인정했다. 기본적으로 세입예산이 '뻥튀기' 됐다는 것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올해 성장률이 3%가 됐더라도 6조 원 정도는 과다 계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다계상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균형재정을 맞추려고 성장률 하락과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분을 감안하지 않았던 탓"이라고 답했다. MB정부에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산안을 짜면서 숫자를 계산하지 않고 '그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성장률 역시 다소 의심스러워 보인다. 우선 숫자 자체가 다른 경제연구 기관들이 내놓은 것과 차이가 크다. 한국은행과 KDI는 각각 올해 경제성장률을 2.8%와 3%로 전망했다. 유엔 아태경제사회위원회는 3.5%라는 예상치를 내놓기도 했다. 정부에서 이번에는 경제성장률을 실제보다 높여 잡은 게 아니라 낮춰 잡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속셈으로 추가경정 예산 확보를 꼽는다. 이미 MB정부에서 세수 계산을 과다하게 잡아놓았으니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강조하면 추경 규모를 늘리는 데 필요한 당위성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상황적 계산에서다. 5년간 135조 원이 들어가야 하는 '박근혜표' 복지예산을 첫해부터 충당할 만한 확실한 세수 수단이 없다는 것도 '심증' 중 하나다.

추경의 방법은 두 가지다. 증세를 하거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증세를 하게 되면 당장 현재 국민의 세 부담이 늘어나고 국채를 발행하게 되면 미래 세대가 갚아나가야 한다. 어느 방법을 쓰든 결국 정부가 정상적인 살림 구조조정으로 해결했어야 했을 과제가 정부의 '숫자 장난' 때문에 국민에게 떠넘겨지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국민에게 사과를 건네거나 책임을 지는 정부 관계자는 없다. 6개월 사이를 두고 '롤러코스터식' 경제성장률을 내놓았던 관료들은 오히려 나란히 승진했다. 새 정부 첫 경제정책 계획을 보면서 영화 속 악인인 '아귀'를 그려보는 이유다.


태그:#2013예산, #경제정책방향, #이명박근혜, #박근혜, #균형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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