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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다리가 고정되기 전까지 영도대교는 하루 6번씩 들리는 다리 상판 밑으로 배가 지나갈 수 있는 도개교였다. 사진은 영도대교가 마지막으로 다리를 들어올렸던 1966년 9월의 모습이다.
 1966년 다리가 고정되기 전까지 영도대교는 하루 6번씩 들리는 다리 상판 밑으로 배가 지나갈 수 있는 도개교였다. 사진은 영도대교가 마지막으로 다리를 들어올렸던 1966년 9월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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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전쟁 휴전 무렵인 1953년 발표된 이 노래는 흥남부두 뿐 아니라 1.4후퇴, 부산 국제시장 등 시대의 역사적 공간들이 배경이 됩니다. 그런데 첫 구절은 다들 아는데 이 노래의 마지막 노랫말을 아는 분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노래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는 말로 금순이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고 끝을 맺습니다.

피난민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향수를 달랬고, 부산 영도다리에 가면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이산가족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빼곡했답니다. 끝내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영도다리에서 뛰어 내려 목숨을 던지는 사람이 많았는지 당시 다리에는 '잠깐만'이라는 문구도 적혀있었다고 하네요.

얼마나 영도다리에 맺힌 사람들의 눈물이 많았던지 1965년에는 <눈물의 영도다리>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부산을 대표하는 다리가 광안대교지만 원조 대표 다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다리들림)교로 명성이 자자했던 영도다리였던 셈입니다.

이런 영도다리가 고정교로 바뀐 것은 1966년입니다. 배가 지나갈 시간에 맞춰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식 교량이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이름도 1980년부터는 영도대교로 바뀌었고요.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노후화로 인한 철거 문제가 불거지면서 영도다리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졌습니다.

부산시는 2006년 영도대교를 시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다시 도개식 교량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최대한 기존 자재를 사용하고 버릴 수밖에 없는 것 빼고는 다 모아서 전시관을 만들어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말이면 긴 복원공사를 끝내고 영도다리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불붙은 기념관 입지 논쟁...다리 사이에 둔 자치구의 자존심 싸움

다리가 고정되기 전인 1966년 마지막 다리들림 장면을 보기 위해서도 많은 인파가 영도다리에 모였다.
 다리가 고정되기 전인 1966년 마지막 다리들림 장면을 보기 위해서도 많은 인파가 영도다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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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다리가 올라오는 모습을 전망할 수 있고 관련 자료도 볼 수 있는 전시관의 입지를 어디로 하느냐를 두고 다리를 사이에 둔 중구와 영도구가 자존심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포문을 연 곳은 영도구입니다. 영도구의회는 29일 열린 제 222회 임시회에서 '영도대교 박물관 영도유치 촉구결의안'을 만장 일치로 채택했습니다.

구의회는 영도구가 도개식영도대교기념비, 굳세어라금순아를 부른 현인노래비, 영도다리 축제를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는 점을 들어 영도다리가 "단순한 영도의 상징이 아닌 영도구민의 마음속에 항상 존재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영도구가 이렇게 나오자 다리 건너 중구에서는 발끈합니다. 중구청 관계자는 "영도다리라고 하지만 영도다리의 유래는 중구"라고 응수합니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도 우리 쪽에서 하고 다리 개통도 우리 쪽에서 했는데 왜 기념관이 영도로 가야하냐"고 물어옵니다.

각자 역사성과 명분을 갖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두 지자체가 싸우는 것에는 관광객 유발 효과가 크게 작용합니다. 영도다리가 개통했던 1934년 11월 23일에는 무려 5~6만명의 인파가 다리를 보러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부산 인구가 15만명이었다고 하니깐 3명 중 1명이 보러왔다는 뜻이죠.

이후에도 다리가 번쩍 들려 올라오는 기이한 광경을 보러 전국에서 구름인파가 몰려들었다니 "영도 땅값이 하루에만 3번이 올랐다"는 노인 분들의 이야기가 허투루 만은 들리지 않습니다. 두 자치구들도 이런 옛날의 영광을 이어가보겠다는 심산으로 기념관을 서로 끌어당기려 하는 겁니다.

권혁 영도구의회 부의장은 "많은 관광객들이 도개를 보러 올 것이니 관광객으로 인한 지역상권 부흥이 가능해진다"며 "태종대와 해양박물관을 연계한 코스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경춘 영도구의회 의장도 "중구는 이미 여러 가지 혜택을 보고있는데 영도보다 형편도 좋으면서 기념관까지 가져가려해서야 되겠느냐"며 "영도다리가 중구다리냐"고 볼멘소리를 전했습니다.

반면 중구청 관계자는 "영도에 들어서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는 접근성과 부지확보 문제에 중구가 유리하다는 입장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미 비어있는 국토해양부 땅에 기념관을 만들어 인접한 자갈치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 서있다"고 말했습니다.

난처한 부산시 "자기 주장만 자꾸 하다가는 건립자체 난항 겪을 것"

올해 말 복원 공사를 마친 영도다리가 우리곁으로 돌아온다. 고정이 됐던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도 다시 만날 수 있다
 올해 말 복원 공사를 마친 영도다리가 우리곁으로 돌아온다. 고정이 됐던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도 다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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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자 난처한 곳은 부산시입니다. 당초 부산시는 전시관을 옛 시청 자리에 들어서고 있는 롯데타운의 허가 조건으로 롯데가 짓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롯데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소송이 붙었고 대법원까지 가는 다툼 끝에 부산시가 패소하며서 기념관 건립은 부산시의 몫이 됐습니다.

시는 타당성 조사를 바탕으로 접근성, 사업비 등을 고려해서 전시관 입지와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인데, 두 자치구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막막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재 용역 조사 중에 있고 6월 경 관련 규모나 위치, 전시내용 등을 결정할 계획이지만 세부적인 검토를 하다보면 기간이 연장될 수 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관계자는 "자치구의 감정 대립으로 가서는 곤란하다"며 "각 구청에서 이해를 하고 어느 정도 양보가 필요하지 않겠나"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만 자꾸하다가는 건립 자체가 난항을 겪게 될 것"이란 걱정도 덧붙였습니다.

역사적 기념관을 서로의 지역으로 가져가고픈 마음이야 누구든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80년 가량 두 지역을 연결해 준 길이 214m 다리가 두 지역을 갈등으로 끊어놓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태그:#영도다리, #영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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