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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통일부 장관. 사진은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북정책에 관한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류길재 통일부 장관. 사진은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북정책에 관한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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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연일 도발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3월 27일 통일부와 외교부의 첫 업무보고가 있었다. 업무보고 하루 전에 북한이 '제1호 전투근무태세'를 선포하고, 당일에는 개성공단 통행안전을 위한 군통신을 차단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키워드인 신뢰외교(Trustpolitik)와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이 구체화되어 내외에 첫선을 보였다.

6자회담 참여국의 리더십이 모두 교체된 이후 지금까지 각국은 사실상 대북정책에 대해 새로운 이니셔티브(initiative) 없이 북한의 지난 3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논의에 몰입했을 뿐이었다. 북한이 이에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한반도 상황은 악화의 방향으로만 진행되었고 국면을 타개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북핵 협상을 주도했던 미국이 소득 없는 북한과의 협상에 지치고 자국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북핵문제가 뒷전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가 늘고 있다는 관찰도 있다.

더구나 미국은 과거처럼 대북관계를 어떻게 이끌까 하는 고민보다는 G-2시대의 아시아 정책으로 한반도를 뛰어넘는 큰 그림 속에 한·미관계를 어떻게 공고히 하여 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익을 지킬 것인지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의 한반도 상황 개선을 위한 책임과 역할 비중이 커졌다.

1969년 닉슨 독트린으로 데탕트의 물결이 한반도에 밀려올 때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주변국들이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남북 간 긴장완화를 원하면서 민족내부적 해결 노력이 더욱 중시되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의 역할 비중이 늘어나 한반도 문제가 단순 진영론에서 벗어나 다층적이고 역동적이게 됐다. 이 시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한 것이 자주국방력 강화와 남북대화였다. 북한의 도발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민족 전체의 미래를 위해 북한을 실체로 인정하고 대화라는 새로운 게임을 하자고 선(先)조치한 것이다.

동북아의 역학구도가 변하는 불안정한 시기에 통일부가 대북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국내외에 천명하였다. 이것은 비록 당장 어떤 대북제의나 조치가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물론 주변국에 우리 의도를 분명히 하고 각국의 관련 정책 정립에 우리 입장이 반영되도록 요구하고 선도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북핵을 넘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새로운 판을 짜보자고 일성을 지른 셈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우리 방침 지키는 게 중요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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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정부는 우선 북한의 위협과 공갈에 대해서는 대북억제력에 기반하여 엄정히 대처하여 추가도발 여지를 차단하고,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여 북한을 압박하는 한편, 관련국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핵문제 진전 등 상황타개를 위한 동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전쟁' 협박이 연일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에 맞대응하지 않고 침착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출범 초기 예민한 시기에는 돌출 대응으로 북한에 빌미를 주거나 우리 발목을 스스로 묶지 않도록 절제하는 태도가 특히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개성공단을 확대할 수 있다"는 통일부 장관 발언이 빌미가 되어 남북이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상황을 악화시켜 나갔던 사례가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교체 때마다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부분적으로만 개량되어 연장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정부의 대북정책 일관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예외적인 일탈적 현상이었을 뿐이다.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대한민국 정부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하는 토대 위에서 평화를 확보하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을 일관되게 기조로 삼아왔다. 따라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맸던 일탈현상을 걷어내고 남북관계를 제 궤도에 올려 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일관성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주관부처를 통일부로 한 것도 균형정책에 입각하여 판단한 것이겠지만 이러한 정책 일관성 유지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남북관계의 특수성보다 보편성에 따른 국제공조를 강조하면서 외교부가 대북정책의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했고, 민족내부적 성격은 도외시하였다. 이 때문에 남북교류협력과 안보국방정책의 균형을 잡지 못해 사실상 통일부의 존재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었다. 이 바람에 남북관계와 국가안보 두 측면 모두 역대 최악의 상황이 조성되어 새 정부에 부담을 안겨주었다.

박 대통령은 신뢰구축에 대해서, 남북이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실천 가능한 것부터 이행해야 하며, 상대가 약속을 어겼으니 우리도 마음대로 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이를 어기면 손해라는 인식을 주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북한의 변화를 마냥 기다리거나 변화를 안 한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우리와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만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하였다. 역대 정부 대북정책의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회복했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가 통일준비 차원이라며 업적으로 치켜세우려던 통일기금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역대 정부 판단에 부합하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통일재원이 필요하긴 하지만 여러 가지 판단에서 실질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새 정부 정책이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

평화와 협력의 손을 잡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경남진보연합, 울산진보연대, 부산민중연대는 15일 낮 12시 창원 진해구 소재 진해미군사고문단 정문 앞에서 "군사훈련 중단 촉구 공동집회"를 열었다.
 경남진보연합, 울산진보연대, 부산민중연대는 15일 낮 12시 창원 진해구 소재 진해미군사고문단 정문 앞에서 "군사훈련 중단 촉구 공동집회"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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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기본자세하에 북한의 돌출행동에 일희일비하여 끌려다니지 말아야 하며, 우리 사회의 일부 극단적이고 말초적인 대북강경 여론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침착하게 우리 방침을 유지하면서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남북관계 개선노력을 꾸준히 경주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신뢰는 비록 작은 규모라도 서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며, 관계 부처에 조속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완성해서 국민의 이해와 주변국들의 지지를 구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박 대통령은 북한의 올바른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북한이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변화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공조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하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이제 북한이 대답할 차례다. 남쪽이 내민 손을 잡고 평화와 협력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끝내 이를 뿌리치고 우리 민족을 핵공포 속에 가둘 것인가? 북한이 진정으로 민족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바란다면 신뢰를 위한 대화의 길에 나서야 한다. 우리 민족이 먼저 힘을 합치고 통일미래를 설계해야만 주변국들의 지지와 성원을 견인할 수가 있다. 북한의 선택권이 넓혀져 있는 지금이야말로 명분과 실익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기회다.

북한은 3월 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4월 초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하여 '중대문제'를 논의한다고 예고하였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과 의지를 곡해하지 말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정책에 호응하는 태도를 보여, 5월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상황타개와 국면 전환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태그:#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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