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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국은 아직 겨울, 그래도 청춘은 봄이어라!"

기억나니. 네가 빠져들었던 드라마 <경성스캔들> 얘기야. 아직 바람이 차지만 수줍게 고개 내민 개나리 꽃망울, 무심한 내 맘마저 하늘 한번 보게 하는 햇살은 봄을 실감케 하네.

아까는 약속 때문에 커피숍에 갔어.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커피잔 만지며 멍하니 검은 국물(?)을 바라보는데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노래가 나오더라.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그래 봄이구나. 이제 서울에도 벚꽃이 만개하겠지.

벚꽃 엔딩. 문득 그런 생각 들더라. 다가올 4월, 거리를 수놓은 벚꽃도 계절의 순리 따라 눈처럼 흩날리고 사라지겠지. 그리고 새로운 여름 찾아오겠지. 그게 자연의 이치겠지. 그런데 말야. 올해 벚꽃 엔딩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지 못하고 인간의 탐욕으로 강제엔딩 되지 않을까. 전쟁으로 인한 '강제엔딩'. 순간 두렵더라.

난 요즘 뉴스 보기 무서워. 연일 쏟아지는 전쟁 보도들, 흥분된 아나운서, 오늘은 북한이 무슨 말, 남쪽 국방장관은 또 무슨 말, 미국은 스텔스기 띄우고, 휙휙 지나가는 탱크 영상, 호전적 인터뷰. 사실 방송이 더 무섭더라. 진짜 위기라면, 정말 전쟁이라면. 그걸 막기 위한 말들이 터져 나와야 정상 아닌가. 이런 내가 이상해질 정도의 적개심, 증오감 부추기는 선정적 편집들. 전쟁을 바라는 것인지, 전쟁은 안 난다고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인지.

"전쟁 불감증에 빠진 국민들", 이런 말도 하더라. 난 그렇지 않아. 불안해. 무서워. 아무리 위기가 익숙하다 해도 지금은 달라. 미국 핵잠수함, B-52, 스텔스기가 와서 폭탄 투하 연습을 하고, 군 통신선도 끊기고. 이건 정상이 아냐.

평화는 '삶의 권리'... 왜 아무도 전쟁을 막으려 하지 않나

그래서 어떡할까. 위기니까 출근하지 말까? 한번 나면 핵전쟁인데 라면이라도 사다 놓을까? 서른두 살의 하루살이 백수 인생, 오늘 막을 학자금 대출 이자 넣기도 벅찬데 뭘 사놔. 전쟁 불감증이 아냐. 할 수 있는 게 없어. 어떻게든, 그냥 이대로, 오늘도 어제처럼, 넘어갔으면 좋겠어. 누가 막아줬음 좋겠어. 그냥 이렇게 하루를 사는 거야.

요즘 이런 생각 들어. "믿을 사람 없다". 방송에서 조장하는 것처럼 북한을 증오할 생각도, 가오리 닮은 미국 핵 폭격기 보면서 '와~ 짱인데' 하고 동경할 생각도 없어. 그냥 '왜 아무도 이걸 막으려 안 하지?' 하는 생각뿐이야. 대한민국은 호구인가? 다 죽는데 누가 이기는 게 중요한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북한과 미국의 핵싸움에 국민이 다 죽게 생겼는데 정치인들은 뭐하지?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섹스, 부패 스캔들에 뵈는 게 없나?

존 레논이 생각나더라. <이매진(Imagine)>. "상상하라". 평화에 대한 염원, 우리가 하는 거다. 결국 너와 나 같은 사람이 작은 목소리라도 모으는 게 답이란 생각 들더라. 평화 말하는 이슬람, 사랑 펼치라는 기독교, 자비 베풀자는 불교, 너그러움 강조하는 유교. 전쟁 막고, 평화 지키자는 한자리에 같은 얼굴로 만나야 할 때이지 않을까 싶어.

전쟁 나면 '녹색'도 사라져. 인권은 지옥 나락 끝. 물가 안정, 경제 성장은커녕 밥 빌어먹기도 힘든 상황이 될 테고. 법은 사라지고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누구를 좋아하는지는 밤톨만큼도 안 중요한 세상이 돼. 평화가 곧 인권이자 녹색이요, 경제이자 정치사상의 자유인 이유야. 아니 뭣보다 중요한 '살고자 하는 권리'이지.

다음 주면 4월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겠지. 촛불도 좋고, 미사도 좋고, 법회도 좋아. 흩날리는 벚꽃 길에서 꽃 한 송이 들고 만나고 싶다. 존 레논이 <이매진> 부르며 평화를 노래했다면 난 <벚꽃 엔딩> 부르며 너와 만나고 싶다. 우리들의 벚꽃 엔딩은 순리에 맡겨달라고. 이 봄을 지켜달라고. 총칼 따위 내려놓으라고. 그리고 널 만나서 이렇게 얘기할 거야.

"전쟁위기 조국은 아직 겨울, 그래도 청춘은 봄이어라! 우리의 꽃은 너희의 총보다 강하다."


태그:#벚꽃 엔딩, #버스커 버스커, #전쟁, #평화,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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