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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포함한 동양은 서양세계와는 사뭇 다른 환경 속에 살아 왔고, 법률가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달랐다. 서구와 같은 전문가로서의 법률가는 동양 사회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동양 사회도 법률이 있고, 시대가 가면 갈수록 적지 않은 수의 법률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전문적 식견을 가진 법률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오로지 법률에서만 전문성을 인정받는 사람은 하급 관리이거나 신분적으로는 중인계급에 불과했다. 결코 지배계층이 되고자 했던 이들의 '선망의 직업'은 아니었다.

이런 동양에 서양의 법사상과 법 제도가 19세기 이후 물밀듯이 들어온다. 그 과정에서 서양식 법률가 제도가 도입되었다. 로마시대로부터 그 진가를 발휘한 법률가가 드디어 조선 땅에 나타난 것이다. 당연히 서구사회에서 누리는 보편적 권위의 옷을 입고 말이다.

한국 법률가의 특권의식, 로마법으로도 설명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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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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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권위는 로마법 이래 법률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법률가들에게는 세계의 법률가 일반에게서 볼 수 없는 보편적 권위 이상의 독특한 특권의식이 존재한다. 이것은 로마법으로도, 서구의 어떤 법률가 제도로도,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한 마디로 신기한 문화현상이다.

문명이야기를 하면서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주요한 원인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오랜 기간 지속된 관존민비의 유산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시민사회의 힘과 관의 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권력은 여전히 비대하고 무서운 존재다. 그러다 보니 권력은 사람들에게 두렵지만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법률가는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특권의식을 갖게 된다.

둘째는 일제 식민통치와 해방 이후 지속된 기나긴 독재의 유산이다. 일제는 한반도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고등 협력자로 법률가를 키웠다. 당시 일본의 고등문관시험(그 중에서도 사법과) 합격자들은 조선인 중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 보다는 못하지만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은 나름 엘리트로서 엄혹한 시대에서도 상대적인 자유와 부를 누렸다. 이들이 모두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사법의 중추인 판검사, 변호사가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법률가들은 독재자의 폭정을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면서 권력과 부를 누렸다. 여기에서 법률가들의 특권의식은 독버섯처럼 자랐고, 그것의 폐단을 아직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 법률 전문가를 만들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로마법을 알아보자. 우선 로마시대에도 오늘 날과 같은 법률가, 예컨대 변호사 제도가 있었을까. 현대의 법률가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법률가가 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통상 다년간의 법학교육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만 법률가(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법률가 단체에 소속되어 그 단체의 감독을 받는다.

이런 법률가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놀랍게도 이러한 제도는 이미 로마에서 2천 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니 오늘날 법률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로마인의 후예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니다.

원래 서양 법률가의 시초는 그리스나 로마 모두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말을 대신 해주는 변사(orators)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로마는 그리스의 변사 수준을 넘어 이들을 전문적으로 교육시켜 법률가(lawyer)라는 특별한 전문가 집단을 만들었고 그것을 성직자, 의사와 함께 3대 프로페셔널의 하나로 만들었다.

로마에서는 일찍이 법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여 재판 등에 도움을 주는 법률 주석가(juris consulti)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단순히 말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법률교육을 받은 자들이었다. 기원 후 1세 초반 당시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공식적으로 법률가 집단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보수 금지를 풀어 버리는 조치를 취한다.

오현제 시대를 지나면서 법률가 집단은 보다 견고한 단체로 성장하였고, 로마가 동서 로마로 분열된 4세기 이후 동로마에서는 이미 변호사회라고 불릴 수 있는 법률가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변호사들은 이 단체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했다. 현대의 변호사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키케로 어떻게 부자 변호사가 되었을까

이쯤에서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보자. 돈 문제다. 변호사는 로마시대에도 돈을 잘 벌었을까? 결론적으로 돈 잘 버는 변호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과는 사정이 상당히 다르다. 로마법은 원래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보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질 않았다. 의뢰인이 변호사의 노고에 대해 고마운 마음에 주는 사례금은 가능했지만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수임료를 청구할 수 없었다. 아니 수임료는 금지되었다.

이것은 로마가 제정으로 들어가기 200년 전에 만들어진 법에 의해 확립된 원칙이었다. 왜 그랬을까. 절박한 처지에 있는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변호를 하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 반한다고 생각해서일까.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보면 변호사가 돈을 매개로 일하게 되면 정의가 왜곡된다는 관념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러니 변호사의 업무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변호사를 샀다'는 표현을 곧잘 하는데, 이런 말은 로마법의 전통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로마의 변호사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카이사르의 정적 중의 하나였던 키케로(기원전 106~43)에 대한 이야기다. 키케로가 누구인가. 그는 최고의 수사가이자, 최고의 문장가로 일찌감치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돈도 잘 벌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당시는 법률로 변호사의 보수가 금지되어 있었던 시절인데 키케로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키케로.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
 키케로.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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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키케로가 번 돈은 사건 수임의 대가로 받은 수임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의뢰인으로부터 사건 수임료를 받아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 중 돈 많은 이들이 죽으면서 남기고 간 상속(유증)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 키케로의 변호를 받아 돈을 번 이들이 죽어가면서 유언을 남긴 것이다. 키케로에게 큰돈을 남기는 유언 말이다.

또 하나는, 법은 변호사의 보수를 금지함에도 변호사들이 암암리에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예나지금이나 돈에 관한 한 법률가들도 탈법을 많이 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런 이유로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관행화된 법률가 보수의 현실을 받아들여 보수금지 법률을 폐지한다. 그렇다고 무제한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아니다. 보수상한을 정해 그 범위 내에서만 받도록 한 것이다.

한국 변호사 보수, 원래 당연한 게 아니었네

로마법의 변호사 수임료 제도를 연구하다 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법 제도에서 매우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계약은 법률적으로 위임계약에 의해 규율된다. 그런데 우리 민법 제686조는 수임인의 보수청구권을 규정하면서 이런 규정을 두고 있다.

"수임인은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위임인에 대하여 보수를 청구할 수 없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이 말은 수임인, 그러니까,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법률사무를 수임할 때 약정서 등으로 사전에 특별히 보수액을 정해 놓지 않으면 보수를 청구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이것은 변호사에게는 매우 불리한 규정이다. 내 변호사 시절을 생각해 보아도 당사자로부터 사건을 수임할 때 돈 이야기를 명확하게 해 놓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 사건에서 이겨 당사자에게 엄청난 이익이 생겼음에도 변호사에게 보수(변호사들은 일반적으로 사건이 성공하면 상당한 정도의 성공보수를 받는다)를 청구할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변호사가 돈을 번다는 말인가? 하지만 우리 법은 그렇게 되어 있다.

법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그 연원을 찾고 찾으면 로마법까지 올라간다. 로마법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가 당사자에 대하여 보수를 청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했고, 후에 이를 합법화했지만 그것마저도 상당한 정도의 제한을 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보면 변호사 보수가 원칙이 아니라 예외라는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 법원이 위와 같은 민법상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판례를 통해 비록 변호사들이 보수에 대해 특별한 약정을 하지 않았다 해도 "묵시적 약정이 있었다"는 이상한 논리(변호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논리!)를 만들어 내어 당사자에 대하여 보수청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민법상의 보수청구권 규정은 이제는 그저 역사적 유물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변호사의 보수청구권은 특별한 약속을 하지 않아도 원칙적으로 인정되는 권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변호사는 당사자 기타 관계인의 위임 또는 공무소의 위촉 등에 의하여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사무를 행함을 그 직무로 하고 사회통념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한 보수를 받을 수 없을 뿐이므로, 변호사에게 계쟁사건의 처리를 위임함에 있어서 그 보수지급 및 수액에 관하여 명시적인 약정을 아니하였다 하여도, 무보수로 한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응분의 보수를 지급할 묵시의 약정이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대법원 1993.11.12. 선고 93다36882 판결)


태그:#로마, #법률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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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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