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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력을 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 행정학과를 졸업했지만, 그 분야로 나가지 않은, 번듯한 직장을 다녔지만 때려치우고 막노동을 한 조경선씨가 좋은 예다. 그는 한때 건축 인테리어로 돈을 벌었지만 그것마저 뒤로한다. 결국 그는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시골에서의 삶을 택했다.

아내와 함께 손으로 개척한 황무지

그가 5년 동안 아내와 함께 피땀흘려 일궈온 칠현산방. 허허벌판 황무지에서 모든 걸 일일이 직접 손으로 이만큼 일궜다.
▲ 칠현산방 그가 5년 동안 아내와 함께 피땀흘려 일궈온 칠현산방. 허허벌판 황무지에서 모든 걸 일일이 직접 손으로 이만큼 일궜다.
ⓒ 조경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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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그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땅을 샀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일일이 흙을 퍼내고 다지고 했다. 텐트를 치고 자면서 작업실 겸 자택을 4개월 걸쳐 지었다. 조경도 설계도 직접 했다.

마당에 있는 바위를 그대로 살리려고 가파른 땅의 흙을 수도 없이 퍼냈다. 수십 번 삽질을 해 마당을 파 연못을 직접 만들었다. 시장에서 산 1000원짜리 묘목을 일일이 심었다. 마당의 잔디도, 마당의 벤치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이곳 황무지를 개척하면서 무엇이든 몸으로 해냈다. 돈을 들여 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흙집 다섯 동을 세울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자택을 포함해 모두 세 동이 지어졌다. 10평도 되지 않은 흙집 사랑방을 지을 때는 1년 이상이 걸렸단다. 여름이 지나봐야 갈라진 곳을 제대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총 5년이 걸려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흙집을 지을 때는 아내와 함께했다. 아내는 낫으로 가지를 쳐내고 남편은 대패질을 했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아내와 함께 지금의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의 공간은 아내와 자신의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칠현산방은 그렇게 탄생했다.

무엇이 그를 고민하고 행동하게 했을까

고뇌와 아픔을 딛고 이제 그는 업그레이드된 세상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경기이남에서 후학들을 모아 서각을 전수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칠현산방이 중심이 될 것이다.
▲ 조경선 각자장 고뇌와 아픔을 딛고 이제 그는 업그레이드된 세상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경기이남에서 후학들을 모아 서각을 전수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칠현산방이 중심이 될 것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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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인테리어를 하면서 돈을 꽤 많이 벌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요. 하지만, 내면의 번뇌는 줄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그 골은 깊어졌고, 급기야 행동하게 됐습니다."

내면의 번뇌. 그건 그의 기질과 현대적 삶과의 어긋남이었다. 말하자면 자본만능주의, 약육강식의 무한경주 등의 메커니즘이 그와 맞지 않았던 게다.

인테리어를 할 때, 그는 늘 작품을 만드는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고객은 하나같이 '빨리 그리고 돈이 되게'를 주문해왔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만드는 것을 상대방은 허락하지 않았다. 오로지 경제적 논리로만 판단했다. 그는 그게 죽기보다 싫었다고 말한다. 먹고 사는 게 다 그렇다며 적당히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게다. 여기에는 그의 타고난 반골 기질이 한몫했다.

이런 그의 고뇌가 선택한 분야는 바로 각자(또는 서각)였다. 이 생각을 행할 장소로 안성이 꼽혔다. 금광호수를 지나 칠현산 자락에 있는 칠현산방은 그의 고뇌가 만든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남들처럼, 아내와 자녀와 함께 귀촌할 용기는 차마 내지 못했습니다. 자녀 교육문제가 제일 크게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저 먼저 여기에 자리 잡았습니다. 몇 년만 지나면 여기서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요."

그는 일종의 '귀촌 선발대'인 셈이다. 그가 먼저 시골로 내려와 터를 닦았다. 아내는 대도시의 본가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기에 그에게는 말하지 못할 아픔도 있었다. 본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법이 아니었던가.

주위의 편견 딛고 다른 세상으로

그는 지금 작업 삼매경. 세상을 향한 고뇌를 칼로 하나하나 새기는 데서 오는 기쁨, 그만의 기쁨은 아무도 모르리라.
▲ 작업삼매경 그는 지금 작업 삼매경. 세상을 향한 고뇌를 칼로 하나하나 새기는 데서 오는 기쁨, 그만의 기쁨은 아무도 모르리라.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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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젊은 사람이 가족 내팽개치고 혼자 귀촌한다" "돈이 많아 돈 지랄 한다" 등의 말들이 돌았단다. 누가 알까,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남의 말은 쉽게 한다. 이런 걸 우리는 편견 또는 선입견이라 한다. 이런 시선이 그를 괴롭혔다. 그럴 때면 그는 말없이 글자를 칼로 새긴다. 세상에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이 있음을 그들도 알 날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의 직업은 각자장이다. 각자장이란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을 뜻한다. 글자나 그림을 새긴 목각판을 각자 또는 서각이라 한다. 요즘말로 쉽게 풀이하자면 서각 작가다.

그는 전통적인 서각을 고집하고 싶다. 하지만,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자신의 삶도 추슬러야 하고, 가족도 책임져야 한다. 전통적인 방식만 고집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서각도 한다. 목공예·현판·다상 그림 등을 서각해서 판매한다. 이걸로 생계도 유지하고, 가장의 역할도 한다. 단지 남들보다 더 풍족하지 않을 뿐이다.

서각을 배우는 이들은 매주 이곳 산방을 찾는다. 앞으로는 경기 이남에서 후학 양성을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란다. 필요하다면 '서각원'을 열어 전수하고자 한다. 그는 이제 그동안의 아픔을 딛고 업그레이드된 세상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그는 늘 고뇌하는 사람이다. 가장과 장인의 경계에서, 사회 적응자와 사회 저항자의 경계에서, 현대적 인간과 전통적 인간의 경계에서, 평범함과 비범함의 경계에서. 하지만, 결국 그를 그답게 만든 건 이런 고뇌였을 게다. 칠현산방에 찾아온 봄이 아름다운 이유다.

현대적 서각 작품이다. 장식도 되고, 돈도 되는 작품이다. 전통방식과 현대방식의 경계에서 고민하다 가장으로서 택한 방식이다. 경계에서 고뇌한 작가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 작품 현대적 서각 작품이다. 장식도 되고, 돈도 되는 작품이다. 전통방식과 현대방식의 경계에서 고민하다 가장으로서 택한 방식이다. 경계에서 고뇌한 작가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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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6일, 금광호수 인근 칠현산방에서 이뤄졌습니다.



태그:#각자장, #서각, #조경선, #칠현산방,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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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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