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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이 되었을 때 큰애가 22살이었는데, 벌써 32살이 되었네요. 군청 노조사무실로 출근하는 내게 신규직원들이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수시로 각 부서를 방문하곤 합니다."

지난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강원지역본부 화천군지부' 사무국장인 김영관(57세)씨를 만났다. 그는 1979년 기능직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엔 '할 일 없으면 공무원이나 하지'라는 풍조가 만연했을 정도로 공무원은 기피직종 중 하나였다. 이유는 적은 보수와 중앙을 축으로 한 수직적인 일방적 명령계통 체제에 적응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는 공직생활 25년 만인 2004년에 파면됐다. 당시 정부에서 공무원노조법을 특별법 형식으로 제정하기로 한 데 맞서, 화천군지부 초대 지부장으로 선출된 그가 노동3권 보장을 위한 총파업을 주도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총파업에는 전국 공무원노조 77개 지부 4만5000명이 동참을 했는데, 정부는 전국적으로 455명을 파면하고, 2622명을 징계하면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정부안을 통과시켰어요. 지금까지 복직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137명에 이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당시 해직된 공직자들의 복직을 요구했다. 그런데 어언 10년 가까이 되면서, 이미 정년을 넘긴 사람들을 볼 때 씁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퇴직금의 전부가 1억4000만 원 정도는 되었을 건데, 받은 금액은 7000만 원. 이 돈으로 대출금 상환하니까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어요. '공직생활 25년의 결과가 이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참 서글퍼집니다."

받은 퇴직금은 총액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정년이나 명예퇴직이 아닌 파면이 퇴직사유이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후배 공직자들을 위해서라도 공무원노조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와 인터뷰를 했다.

해직 공무원인 김영관씨를 통해 공무원노조의 전반적인 내용을 들었다.
 해직 공무원인 김영관씨를 통해 공무원노조의 전반적인 내용을 들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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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 노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까지 왔는지 나도 그렇지만 많은 국민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1998년 OECD 가입을 하면서 그 요건 부합을 위해 공무원들의 직장협의회(이하 직협) 가입 지침을 각 자치단체로 내려 보냈다. 따라서 지자체 담당부서에서는 직원들의 동참을 지시하고, 나를 직협 회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에서 직협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명시된 단결체가 아니라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상의 협의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즉 국가 공무원법 제66조의 단서 규정에 의하여 설립된 공무원 노동조합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정부는 OECD 가입을 위해 형식적으로 노조를 인정하는 형태만 취한 것이다."

- 그래서 어떻게 활동을 전개했는지 소개해 달라.
"그렇게 1999년 직장협의회법이 시행되면서 2000년 시군구를 중심으로 직협 설립이 이어졌고 일·숙직비 현실화, 신문 강제구독 폐지 등 부당한 사례들이 개선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 정부에서는 개별 직협의 전국적인 결속을 반대했다.

그러나 지자체별로 정부에 부당한 사례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2001년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을 결성했다. 또 직협으로는 공직사회에 뿌리내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에 요구한 것이 '노동조합'이었다. 이에 2002년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율 81%, 찬성율 89%라는 압도적 지지로 연가 투쟁을 전개했으나 정부의 탄압으로 출혈 또한 매우 컸다."

- 그러면 해직된 사유가 연가투쟁 때문이었나?
"아니다. 2004년 당시 정부는 '공무원노조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내용은 노동3권은 고사하고 단결권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마치 한국의 공무원의 기본권이 선진국 수준임을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전국 77개 지부 4만5000명이 현장 파업에 동참하자, 정부는 110명을 체포하고 455명을 파면, 2622명을 징계하면서 결국 정부안은 관철시켰다. 이 과정에서 해직된 거다."

-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결국 2006년 1월, 특별법이 발효되면서 정부는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를 강요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자 정부는 담화문을 발표에 이어 직무명령 이행 지침을 시달하면서 노조사무실 폐쇄조치와 노조활동 행위 엄정대처 지침 시달로 본격적인 탄압에 나섰다. 여기에 맞서 행정자치부(지금의 안전행정부)의 노조탈퇴교육 저지투쟁, 국토종단 대행진투쟁, 서울역을 비롯한 강남 총궐기 투쟁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251개 지부 중 120개 지부와 2개 본부가 강제 폐쇄되었고 133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 공무원노조 특별법을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공무원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내용이다. 단결권을 볼 것 같으면 가입자격을 6급 이하로 제한하면서 반쪽짜리 노조결성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단체교섭권 또한 법령, 조례, 인사, 예산 등을 비교섭 대상으로 정해 핵심에 대해서는 교섭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한 것이었다. 단체행동권은 처음부터 금지하는 것으로 못 박았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특별법시행령을 제정해 공무원노조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더 어이없는 것은 시행령을 법령보다 더 강화했다는 거다. 일례로 6급 공무원 노동자 중에서도 지휘·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자의 가입을 제한함으로, 대부분의 6급 공무원들의 노조가입이 금지됐다. 당시엔 정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압력 때문에 마지못해 생색을 냈다는 여론이 무성했다."

공무원 노동조합 실체를 어느 해직 공무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공무원 노동조합 실체를 어느 해직 공무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 공무원노동조합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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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다. 해직되고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파면되었을 때, 참 막막했다. 특히 죄도 짓지 않았는데 정부에서 마치 해직자들을 죄인 취급할 때는 울분을 억눌러야했다.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떳떳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데, 공직사회의 부패를 막겠다는 사람을 파면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 아닌가!

특히 같은 시기에 해직된 동료 공무원이 스트레스 등으로 사망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슬픔도 컸지만, 지난해 12월 19일 치러진 삼척시의원 보궐선거에서 이광우 동지가 당선되었을 때는 내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노조활동의 방향에 대해 설명해달라.
"현재 직면한 새 정부에 요구하는 과제는 ▲ 설립신고 쟁취 ▲ 해직자 원직복직 ▲ 임금인상 쟁취 ▲ 대학생자녀 학자금 쟁취 ▲ 5·6급 근속 승진제 전면 쟁취 ▲ 정치·표현의 자유 쟁취 등 6개 과제이다."


태그:#전국공무원노동조합, #김영관, #화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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