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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과 취업난, 더는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13일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9.1%입니다. 이는 전체실업률 4.0%에 비하면 두 배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실제 청년실업률은 정부 통계발표보다 훨씬 높다는 게 일반적 견해입니다. 청년실업은 개인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실업 탈출’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를 몇 차례 연재합니다. 고민과 고통을 나누면서 실업 문제 해결에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서른 줄에 들어선 백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수분투기를 써야 하는데 대학을 마친 뒤 바로 어느 단체에서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는 '반-백수'라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된다고 말했다(2013년 2월, 현재 난 대학교를 수료한 (학위논문, 학사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상태) '반-백수'다). 우리는 편한 사이였지만 주제 자체가 민감했다. 기사를 쓴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그는 말을 아꼈다.

그래도 이왕 말을 꺼낸 김에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그는 "친구들 만날 때"라고 했다. 더 말 하지 않아도 다 알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반-백수'라고 잘 나가는 친구들 볼 때의 자격지심이 반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더 나쁜 쪽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아예 불편한 만남을 피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주변에는 주로 백수, 반-백수 혹은 당장 취업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은 20대 초중반 밖에 남아있지 않게 됐다. 상대의 자격지심 때문에, 그리고 내 자격지심 때문에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어이없이 소중한 친구를 잃다

평일에는 퇴근 후 까페에서 공부 한다. 주말엔 '시민기자'로 뛴다!
▲ 퇴근 후 언론사 취업공부 평일에는 퇴근 후 까페에서 공부 한다. 주말엔 '시민기자'로 뛴다!
ⓒ 양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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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특히 내 마음 속에 응어리처럼 남아있는  한 사람이 있다. 고교 동창 J다. 그와 나는 2005년 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우리 부모님이 꽃다발을 들고 학교에 오셨고 고등학생 둘은 그 꽃다발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우리는 풋풋하고 어떤 기대감에 달뜬 모습이다.

우리는 고등학생 때 꽤 친했다. 집은 5분 거리였고, 학교, 학원에서는 같은 반이었다. 하루 종일 붙어있을 때가 많았다. 대학은 달랐지만 J는 내게 항상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 6년 뒤인 2011년, J의 대학 졸업식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J는 자기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J와의 대화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는 졸업 따위는 시시껄렁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가서 뭐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J의 말에 공감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졸업을 2년 앞둔 상태였다.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건축으로 뭘 할지, 잘 할 수 있을지, 전혀 자신이 없었다. 건축보다 이런저런 책 읽고 뉴스 보는 게 즐거웠다. 학교에 겨우 얼굴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졸업해도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 것 같았다. 막연히 내 길을 찾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J는 자신의 학벌에 큰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J가 졸업한 대학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옮긴 학교였다. 그가 하고 싶다던 PD는 그의 말을 빌리면, "이 학벌로는 죽어도 못하는" 직업이었다. 나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싶어 더 따지려 들지 않았다.

J가 동의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는 졸업 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우리는 사소한 일로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남자 둘이서 작은 말실수로 몇 시간을 말다툼하기도 했다. 누구 잘못이라기보다 불안감에 마음이 잔뜩 쪼그라든 탓인 것 같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어 지금은 아예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J가 자격지심을 느낀 대상은 나였을까. 나는 아직도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취업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직감할 뿐이다. 서로 위로하고 힘이 되어 줘도 모자를 판에 우리는 어이없게 서로를 잃었다.

'잘 나가는 친구들'이 불편하다

그런데 J가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반-백수인 나 역시 어마어마한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다. 28세의 취업준비생, 고백컨대 지금도 남의 취업소식에 시원하게 박수 쳐주지 못한다. 누군가의 취업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뿐만 아니라 '잘 나가는' 친구도 잘 만나지 못한다.

내가 대학 영자신문사 편집장일 때 수습기자였던 후배들은 버젓이 대기업에 입사한 지 오래다. 그 때문에 내 자격지심은 더 심해졌다. 매년 2, 3차례 동문회가 열리지만 나는 2010년 이후 동문회에 일절 나가지 않고 있다.

J와 멀어진 게 슬픈 것처럼 동문회 선후배와 멀어진 것도 마음이 아픈 일이다. 나는 왜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을 불편해할까?

어쩌면 내가 이미 사람을 '직장'이나 '지위'로 판단하고 있다는 반증인지 모른다. 간단히 말해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한 탓이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꿈을 좇기보다 주변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좌절해왔던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내 꿈이 뭔지 세심하게 살펴봤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허투루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백수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선, 이 자격지심에서 탈출해야 한다. 나는 이제 그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이제부터 진짜 백수 분투기

5개 주요 조간을 배치하는 일로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 민언련 인턴의 아침 5개 주요 조간을 배치하는 일로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 이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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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28세, 언론사 취업 준비생이다. 졸업을 1년 앞둔 지난해 초겨울 나는 처음으로 '직업기자'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해 봄부터 본격적으로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 활동도 하고 있다. 4·11 총선, 19대 대선 취재도 하고, 영화리뷰도 썼다. 생생한 현장이 즐거웠다. 그렇게 '직업기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점차 자격지심도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완전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 봄햇살이 만연한 요즘, 오랜 친구인 J와 화해해야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내 못난 자격지심 때문에 시기했던 영자신문사 선후배들도 편하게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 기사를 쓰기 전 전화를 걸었던 백수형, 그리고 J와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백수가 되자마자 편하고 소중했던 사람들과 멀어졌다. 돈도 없고 앞도 잘 보이지 않아 우리 백수들은 움츠러든다. 하지만 어느 것도 '사람'을 잃는 것만큼 큰 손실은 아니다. 나는 J와 영자신문사 선후배들과 멀어진 뒤에야 이를 알게 됐다.

'취업'은 내 자격지심을 풀어줄 '만병통치약'일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어쩌면 취업과 동시에 이런 자격지심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꼬인 인간관계의 매듭도 하나씩 풀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대학합격'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믿는 고3의 착각과 비슷한 것 같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고등학생 때 상상 못한 고민이 생겼듯 '취업 이후'에는 학생이나 백수 때보다 더 큰 '고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태도'가 중요할 것 같다. 그래서 내 백수분투기의 목표는 '자격지심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취업 이후'에도 유효한 '스펙'이 되지 않을까?


태그:#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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