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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구 금곡동에 있는 '사진공간 배다리'(관장 이상봉)에서 4월 3일까지 사진작가 김보섭의 '양키시장' 사진전이 열린다. 지난 23일 오픈식에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조택상 인천시 동구청장, 김민배 인천발전연구소장,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김석배 원로사진가, 평창 다수리에서 사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최광호 사진가 등 수많은 인사들이 자리를 빛냈다. 이후 오픈식 참가자들은 '양키시장'으로 이동, 시장 사람들과 함께 DVD를 관람했다. 이어 지난 24일에는 김보섭 사진가의 작품 활동에 관한 특강이 진행됐다.

   2009
▲ 양키시장 2009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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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어느날 우연히 따듯한 홍차와 마들렌이란 과자를 먹다가 어린시절 콩브레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주신 따듯한 홍차를 마시는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낯선 것이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전에는 한 번도 체험한 적이 없는 온전한 행복감에 젖어, 도대체 이 놀라운 기쁨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 기쁨은 차와 마들렌 과자의 맛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 그러니까 전혀 다른 성질의 어떤 존재였다는 그 느낌이, 세월이 흐른 뒤에 성인이 되어 어느 순간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그렇다.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누구나 잊지 못할 풍경이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툭 튀어 오르는 때가 있다. 사진가 김보섭의 '양키시장'을 따라가다보면 어두컴컴한 적막을 깨듯 비는 내리고 과거의 특별했던 기억 속 어느 지점으로 달려가 잠시 회상에 젖게 한다.

침묵의 말,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다

사진가 김보섭은 해방 후 미군부대가 들어오며 없는 것 없이 팔면서 한때 영화를 누렸다던 양키시장의 모습을 10여 년 전부터 담아왔다. 처음에는 시장 안 어르신들이 사진 찍히기를 거부해 자주 찾아가 친밀감을 쌓은 뒤 겨우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누추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올 때까지 3년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작가는 회상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이방인의 눈빛이나 수선집 아주머니, 소위 말하는 '쩨'를 파는 가겟집 사람들의 미소가 편안하다. 

지금은 국산제품이 좋은 것이 많지만 전쟁 직후 물건이 귀하던 시절에는 모두가 신기하고 탐나는 것들이었으니 이곳을 찾던 사람들의 발길이 잦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을 보면 혀끝에서 달콤하게 씹히던 '미루꾸'(지금의 밀크 캐러멜)나 깡통 속에 들었던 노란 오렌지 주스, 짭조름한 리쯔(Rize) 크래커의 바삭함과 여성용 크림인 '구리무'의 감촉이 느껴진다.  

'환한 어둠이 살고 있는 장소. 양키시장'이라는 이세기 시인의 평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골목 안이 환하고 어둡다. 얼기설기 얽혀 깡통 시장·화장품 시장·군복 시장·쌀가게·반찬가게·어물가게·순댓국 골목으로 영화를 누렸던 곳이 이제는 허름하게 변했다... 부처가 그랬다. 모두 허망하도다... 환한 빛을 기다린다... 양키시장 사람들은 꿈을 꾼다. 이구동성이다. "사람들이 북적대고, 가게마다 불이 켜져 있는 환한 골목을 꿈꿔요." 삶이 곧 어둠이고, 어둠이 곧 삶이다. 침묵의 말들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걸어 나온다.

양키시장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환하게 걸어나오길 기대하며, 사람들이 북적대고 가게마다 불이 켜져있는 환한 골목을 꿈꾼다고 했다. 그의 작품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재봉가위와 초크를 만지는 주인의 손길이 바빠지고, 수선집의 오래된 낡은 재봉틀이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리 장식장 안의 손목시계가 뽀얀 먼지를 털고 세상 밖으로 나와 거리를 활보하며 나이를 세듯 시간을 센다. 시계집 아저씨가 웃는다. 수선집 아주머니가 웃는다.  

시간의 발자국들... 아주머니가 웃는다

 2010
▲ 양키시장 2010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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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 양키시장 2010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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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 2008
▲ 양키시장 지붕 2008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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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
▲ 양키시장 지붕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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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 양키시장 2008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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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 양키시장 2010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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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 양키시장 2004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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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석이모 2010
▲ 양키시장 미석이모 2010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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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석이모와 커피아줌마 2010
▲ 양키시장 미석이모와 커피아줌마 2010
ⓒ 김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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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보섭. 그의 사진사를 보면, 40여 년 전 청년시절에 사진병에서 통신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중고 미놀타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행을 즐겨 다니며 간간히 촬영하다가 한정식 교수·김종태·주명덕 등 사진인들을 만났고 스터디 그룹을 결성했다.

인천의 고려 정미소·선경 창고·삼익 아파트·미군부대 등을 찍었는데 어느 여름 날 오후, 오래된 창고였던 고려 정미소의 벽돌담에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창고 지붕의 그림자가 계속 변하는 것을 보고 갖고 있던 필름 세 통을 다 찍고도 아쉬움이 남아 택시를 타고 성신 카메라점에 가서 필름 두 통을 더 구입해와서 마저 찍을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촬영하다 창고 지붕에서 떨어져 한 달간 입원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무선 인터넷이 안 되던 시절, 강원도 구절리에 갔다가 밤 열차를 타고 오던 중 무심코 자다 깨어보니 열차 안에 사람들이 다 자고 있었다. 두 손을 꼭 잡고 잠이 든 연인들, 손자를 껴안고 주무시는 할머니의 모습 등을 보면서 신분이나 빈부의 격차도 없고, 꾸밈없는 인간의 순수함이 느껴져서 무언가에 끌리듯 셔터를 눌러댄 적도 있단다.

결혼 후 인천에서 임대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긴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지라 청관·하인천·수도국산 등 인천의 구석구석을 찍었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던 시절이라 한동안 사람없는 빈 공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후 중국 동네를 지나다 중국 여성의 부탁으로 그의 모친 사진을 찍어줬는데 그녀를 중국에 가서 다시 만나게 돼 반가웠다.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내고 입장해 화교 1세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청관 사진을 시작하게 됐다.

1955년 개인전 차이나 타운의 청관을 시작으로 한의사 강영재·바다사진관·수복호 사람들·시간의 흔적·다복집 그리고 이번 양키시장까지 인천의 사람과 모습을 담아왔다. 한 가지 주제와 장소를 정해 1년여 또는 그 이상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요즘도 양키시장을 계속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픈식
▲ 양키시장 오픈식
ⓒ 김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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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제는 삶이다. 밤에는 낮에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중앙시장이나 양키시장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육십평생 살아온 삶처럼 같이 늙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촬영했던 '청관'이나 '양키시장'외 인천의 여러 모습들을 애정을 갖고 지켜보면서 앞으로도 계속 렌즈에 담을 예정이다."

이렇게 말하는 김보섭 사진가는 지금도 카메라와 함께 여행 중이다.

사진가 김보섭은 누구?
김보섭 (金甫燮)
1955 인천 출생 / 1974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 1982 성균관대학교 졸업 / 1983 동아미술제 사진부문 대상 / 현재 <굿모닝인천> 사진작가

개인전 : 1995 인천 차이나타운 (淸館), 동아갤러리 (인천), 삼성포토갤러리 (서울) / 2000 한의사 강영재, 신세계갤러리 (인천), SK갤러리 (서울) / 2006 바다 사진관, 신세계갤러리 (인천), 인사아트센터 (서울) / 2006 김보섭의 화교 이야기, 인천시립 박물관 기획전 / 2009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사진이야기" 예술인과의 만남 초대전, 해반갤러리 / 2010 시간의 흔적, 종합문화예술회관 (인천), 토포하우스 (서울)  / 2012 다복집, 인천 신포동 다복집 현장에서

출판 : 1995 인천 차이나타운(淸館) / 2000 한의사 강영재 / 2006 바다 사진관 / 2008 수복호 사람들 / 2010 시간의 흔적 

종합전 : 1996 '이세상 아이들', 삼성포토갤러리 / 1996 '96 우리 사진, 오늘의 정신', 인데코화랑 / 1997 "짠물전", 인천 동아갤러리 / 1998 "짠물전", 인천 신세계갤러리 / 2001 '사진과 인물', 인천,광주 신세계갤러리 / 2004 인천현대미술 초대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 2007 청소년과 함께하는 인천 역사-문화 탐방전, 인천 신세계갤러리 / 2008 사람과 사람, 한중문화회관 /2008 사람과 사람, 신포동 다복집 / 2009 여성 비엔날레, 인천아트플랫폼 / 2009 개관기획전 "다시개항" 인천아트플랫폼 / 2010 "나의 살던 동네", 부평아트센타 개막전 / 2010 "인터뷰", 인천아트플랫폼  / 2011 "생활의 발견" 인천미술은행 기획전시,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 / 2012 "얼굴" 부평아트센타 / 2012 "인천 평화미술프로젝트" 인천아트플랫폼 / 2012 "인천을 보다" 부평아트센타 / 2012 "근원 展" 고은사진미술관



태그:#양키시장, #김보섭,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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