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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성과급 평정에서 최하위 B등급(S-A-B 순. 원래 A-B-C순이던 것이 지난 2011년부터 바뀌었다)을 받았다. 작년에 이어 연속 이태째다. 성과 등급은 200~300여만 원의 돈을 좌우한다. 그래서 해마다 2, 3월이 되면 많은 학교가 성과급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교사들 간에는 은연 중에 등급 품평회가 벌어지기도 한다. "갑 교사가 최고 S등급인데, 그가 한 일이 뭐가 있냐", "을 교사는 A등급이지만 실제로는 S등급이다" 운운의 말들이 교무실 한켠을 어지럽힌다. 교사를 등급화하여 서로를 이간질하는 이 가공할 성과급 제도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나는 이번 주 월요일(25일) 오후와 화요일(26일) 아침 등 두 번에 걸쳐 성과급에 관한 의견을 격렬하게 토해냈다. 월요일은 우리 학교 모든 선생님이 모인 주간전체회의 자리에서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성과급심의위원회에서 나왔던 심의위원들의 건의 사항이 교장 선생님에게 제대로 전달됐는가의 문제, 성과 등급 평정 및 확인 절차의 문제 등을 제기했다.

화요일 아침에는 학교 관리자인 교장, 교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절차의 문제를 제기한 내게 그들은 절차는 시행 계획대로 진행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제와 그 전의 성과급심의위원회에서 내가 말한 취지를 이분들은 정녕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설마 그들은 내 말을 '열폭'('열등감 폭발'의 줄인 인터넷 용어)으로 받아들인 건 아닐까.

성과급 제도를 '강탈 시스템'에 빗대는 이유

사진은 차등 성과급제 반대 집회 모습.
 사진은 차등 성과급제 반대 집회 모습.
ⓒ 전교조 경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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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에 신경쓰지 않고 교육활동에 온전하게 매진하면 자연스럽게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만 제대로 하는 교사치고 성과급 평정에서 우수(?) 등급을 받는 경우를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 관리자들에게 성과급 제도는 최고의 '꽃놀이패'다.

성과급 제도가 도입된 지 10여 년이 다 됐지만, 나는 아직도 이 제도의 취지와 의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수업 몇 시간을 더하고, 연수 시간을 얼마나 했는지 등이 과연 교육적 성과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성과급 예산이 어떻게 짜이는지 그 속내를 살펴보면 더욱 참담하다. 성과급에 쓰이는 예산은,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 공무원 각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봉급의 일부에서 뗀 돈으로 만들어진다. 성과급 제도를 '강탈 시스템'에 빗대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많은 교사들이 연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원격 연수'의 강좌 버튼을 클릭한다. 교사들이 클릭을 하고 내용을 보면서 제대로 공부하는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시간을 채우고 이수한 뒤 학점이나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다. 이런 연수를 몇 시간을 하고 학점을 얼마나 땄느냐가 성과 등급 평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는 이 성과급 제도라는 야만적인 '선착순 놀이'가 학교들 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개별 교사들 차원의 경쟁을 학교 간 경쟁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때 위에서 말한 연수 실적의 총계가 학교별 평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각 학교의 자퇴생 비율도 학교 평가 항목으로 잡혀 있다. 특색 있는 교육 활동 같은 것도 포함되는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 '특색'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흠결 많은 제도, 폐해만 불러올 뿐이다

나는 내년에 몇 등급을 받을까. 어제 야감(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자, 아내는 자존감이 훼손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왜 이태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았느냐며 은근히 힐난한다. 진짜 힐난하려는 의도야 없었겠지만, 나는 무슨 대꾸를 하기가 겸연쩍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참담한 밤이었다.

학교의 전체 상조회 자리에서 학교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존경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한 내가 왜 최하위 등급을 받아야 했을까. 형식적인 연수나마 열심히 들어야 했던 걸까. 이런저런 외부 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상이라도 타와야 했나. 혹은 부장 보직을 적극적으로 신청해 업무 점수를 따놔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런 일들이 어떤 교육적 '성과'와 관련되는지 나로선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 일들을 하고 싶다고 구조적으로 모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등급을 염두에 두고 교육활동을 해오지 않았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내 마음이 참 쓸쓸해지는 까닭이다.

성과급 등급을 받고 육질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고깃덩어리 같은 느낌을 갖는 이가 대한민국에 어디 나뿐일까. 성과급 제도가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교사들의 호봉에 따라 지급되거나 수당제로 바뀌는 것도 한 방법이다. 흠결이 많은 제도는 두고두고 사람들을 괴롭히며 폐해만 불러올 뿐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성과급, #강탈 시스템, #선착순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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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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