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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엔 아직 시린 겨울의 빛깔이 파르라니 남아있다.
 섬진강엔 아직 시린 겨울의 빛깔이 파르라니 남아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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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아직 파르르한 색깔을 하고 있다. 강변엔 매화며 개나리, 생강나무꽃 지천으로 봄인데 섬진강은 아직, 겨울. 하지만 바람 끝은 맵지 않아서 홑겹 점퍼가 누추하지 않다. 어느 누구는 제철을 맞아 흥이 나겠지만 어느 누군가는 이른 철 맞이에 여간 당혹스럽겠다. 제철에 맞게 사는 게 쉽지 않다. 저마다 생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흔히 쓰는 '철없다'느니 '철모르는 이' 하는 말엔 악심이 없다. 저마다 다른 시간의 개념으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시간 개념을 약간은 장난스럽게 응대하는 여유가 봄꽃처럼 화사하다.

섬진강 따라 매화가 한창이다. 아무리 '매화도 한철, 국화도 한철'이라지만 겨울 끝자락에 옹근 봄의 전령은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문인화(文人畵)에 매화가 으뜸 화제(畵題)로 쓰이는 까닭 역시 이 때문이 아닐까.

섬진강 따라 매화가 지천인데 한 녀석이 고개 돌린 채 피어 있다.
 섬진강 따라 매화가 지천인데 한 녀석이 고개 돌린 채 피어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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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화, 홍매화 다정한 강변에 소소하게 바람이 불고... 간혹 성질 급한 꽃잎 몇 장이 섬진강으로 잠수하는 그 사이에도 새로 꽃망울은 움트는 것이 영락없는 봄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고 져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살이가 꽃잎 한 장과 다를 바 없다.

매화 향기에 취해 걷다 묘한 기운에 퍼뜩 눈을 돌렸다. 주변 거의 모든 매화가 한 방향으로 꽃을 피웠는데 유독 녀석만 고개 돌리고 앉은 채 만개했다. '당돌해서 더욱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워서 당돌함도 용서되는 것인가' 혼자 생각으로 말장난 치다가 '그래도 봄은 온다'고 서둘러 끝을 맺었다. 녀석은 녀석대로 꽃을 피웠을 뿐이니까.      

봄꽃 타령을 하면 빠지지 않는 꽃이 바로 개불알풀꽃이다. 언 땅 풀리면 가장 낮게 피는 보랏빛 작은 꽃. 한자로는 '지금(地錦)'이라 쓰는데 말 그대로 '땅 비단'이다. 땅에 깔린 비단처럼 낮고 고운 꽃이 바로 개불알풀꽃이다.

언 땅 풀리자 가장 먼저 작은 꽃대를 밀어올려 봄을 알리는 개불알풀꽃. 한자말로는 '지금(땅 비단)'이라 한다.
 언 땅 풀리자 가장 먼저 작은 꽃대를 밀어올려 봄을 알리는 개불알풀꽃. 한자말로는 '지금(땅 비단)'이라 한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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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이 꽃대 들고 교만 떠는 여느 꽃과 달리 개불알풀꽃은 낮게 엎드려야 눈 맞춤할 수 있다. 하도 낮게 피어서 '하심(下心)'이 없으면 짓밟기 쉽고, 친근한 동무애가 없으면 나란히 대화할 수 없다.

동무들 역시 하나같이 낮고 자잘한 것들이어서 잔디며 참쑥 등이 그와 어깨동무를 강바람을 쐬고 있다. 어쩌면 잔디는 제뿌리에 깃든 단물을 동무들에게 생명수로 내주고 있을 테고, 참쑥은 제살로 찧어낸 향으로 동무들을 치유하고 있을 것이고, 개불알풀꽃은 궁극의 끝까지 밀어올린 제 작은 몸뚱아리를 동무들의 밥으로 내주고 있을 것이다.

봄은 그렇게 낮고, 자잘한 것들이 강고하게 어깨동무하고 밀고 들어오는 무엇이다. 바람에 일렁일 비단 치마 한 단 없는 가난한 우리가 이렇게 가슴 쿵쾅거리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봄을 밀고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내 봄, 봄이다.

개불알풀꽃의 동무들은 잔디, 참쑥 등 키낮고 자잘한 것들이다.
 개불알풀꽃의 동무들은 잔디, 참쑥 등 키낮고 자잘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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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섬진강, #봄꽃, #매화, #개불알풀꽃,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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