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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집집이 묵은 때를 벗기고 새 봄을 맞이할 때다.

지난 2월 초부터 약 1개월 가량, 나도 지난 겨우내 궁리만 하던 대규모 집단장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 기사를 통해 다른 분들도 참고하면 좋을 만한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TV 대신 PC를
▲ TV 없는 거실 TV 대신 PC를
ⓒ 최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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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레이아웃 변경을 위한 스케치
▲ 아파트 평면 스케치 가구 레이아웃 변경을 위한 스케치
ⓒ 최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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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듯 보이지만 위 사진은 평범하지 않다. 다른 집 거실과는 달리 집안을 호령하고 있던 거대한 42인치 LCD TV를 치워버렸다. 대신 그 자리를 가족들 사진으로 채우고, 방에만 갇혀있던 전자피아노·컴퓨터 등을 가족들과 공유하기 위해 꺼내놨다. 나름 발상의 전환이었던 이 사건은 우리 가정의 생활 방식에 가장 큰 변화를 줬다. 하지만, 사실 처음에는 단순히 TV를 없애기 위해 일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48평 아파트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세 자녀까지 요즘 보기 힘든 대가족을 이루고 살고있다. 원래는 28평 전세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으나 부모님의 양해를 받아 방이 여유가 있던 본가에 들어와서 살고 있다. 나는 외형상 효자처럼 보일지 모르나 흔히들 말하는 '하우스 푸어'다.

당시 부모님은 방 두 개를 침실과 옷방으로 쓰고 계셨고, 동생과 내가 출가 하면서 현관 쪽 방 두 개는 특별한 용도 없이 비우게 됐다. 그러나 이 집을 분양받아 이사 온 뒤 약 15년 동안을 가구 배치 한 번 바꾸지 않고 공간이 생기는 곳마다 뭔가를 계속 더 쌓아둬 집이 전혀 넓게 느껴지진 않았다.

부모님 집으로 살림을 합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결단을 내린 사람은 아무래도 아내였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부모님은 며느리에게 마음 편히 쓰라고 화장실이 딸린 큰 방을 내주셨다.

이게 약 4년 전 일이다. 당시 두 집 살림을 합치기 위해 기존 옷방의 낡은 옷들과 잡다한 물품, 불필요한 가구들을 모두 재활용수거로 내놓든가 버렸다. 양이 어마어마했다. 거짓말 안 하고 28평형 아파트에서 이사올 때 짐을 싣고 온 트럭이 다 찰 만큼이었다. 필요 없는 것들이 집안 곳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시 버린 물건 때문에 곤란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쓸모없는 물건이 차지하던 공간... 손해 보고 살았다니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면서 사용도가 없지만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쌓이기 시작하고 반면에 유용한 공간들은 점점 없어진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비록 당연하고 쉬운 진리였지만 말이다. 불필요한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새로 들여온 신혼 살림 면적과 견줄 만큼이었다.

이는 그만큼의 집 평수에 대한 손해를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 동네 28평 아파트가 3억 원 가까이했으니 적어도 1억 원은 손해보며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만일 별 쓰임새도 없는 짐이나 가구가 한쪽에서 한 평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면 아파트 평당 가격 1000만 원 이상을 빼앗기며 살고 있는 셈이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것이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3대가 같이 살아보니 역시나 장단점은 있었다.

장점 : 아무래도 제일 좋았던 점은 손주와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시너지 효과. 우리 큰 아이가 한글과 숫자를 깨우치는 데는 할머니의 역할이 컸다.

단점 : 역시 생활방식 차이에서 오는 고부간의 갈등이었다. 그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서로의 독립되기 힘든 생활의 간섭문제, 특히 TV 소음이 그중 하나였다.

이제 아이가 둘이나 더 늘어 아이들 방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한 시점에서 이번 봄단장 때는 4년 전 깨달았던 진리를 발휘했다. 또 잔뜩 비워낸 것이다. 덕분에 창고나 다름없던 옷방을 활용해 우리 부부의 침실로 아담하게 꾸미고 부모님이 쓰시던 방에 2층 침대를 놓아 아이방으로 내줬다. 그리고 우리 부부, 아이들이 뒤죽박죽 섞여 지내던 큰 방은 부모님께 속 시원하게 반납했다.

TV를 없애버렸습니다...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옷방을 없애고 새로 생긴 아이들 방
▲ 아이들 방 옷방을 없애고 새로 생긴 아이들 방
ⓒ 최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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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감히 TV를 거실에서 없앴다. 그동안 거실은 낮에는 아이들이 EBS가 점령하고 밤에는 할아버지의 바둑 채널이 점령하던 곳이었다. 마치 낮과 밤의 주인이 바뀌는 '백마고지' 같은 분쟁지역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의 TV를 없애니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이 결단을 내리고 나서 그 감동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남겼다.

"이번 집정리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은 (가족들의) 반대에도 과감히 TV를 거실에서 없앤 것이 아닌가 싶다. 거대 LCD TV가 그동안 얼마나 지배력이 컸었는지 없애보면 알 수 있다. TV 대신 PC를 놓으니 음악도 편하게 들을 수 있고 모니터의 스크린세이버 기능으로 그동안 찍기만 하고 잘 보지 않던 디카 사진들을 마치 디지털 액자처럼 볼 수 있어 좋다. 없애지 않고도 그럴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차 한 잔만 들고 나오면 아늑한 카페처럼 독서도 가능하다."

또한 거실이 조용한 매개공간이 돼 세대 간 간섭이 상당히 완충될 수 있다는 것 역시 느꼈다. 점점 예민해지던 아내가 누구보다 좋아했다. 처음에는 조용한 거실이 낯설어 불편해 하시던 아버지도 거실로 나오셔서 PC로 바둑도 두시고 신문도 보신다. 비록 일종의 TV 금단현상을 보이며 거실에 오래 못 머무시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짐을 모두 정리한뒤 아담한 침실로 바뀐 옷방.
▲ 부부침실 불필요한 짐을 모두 정리한뒤 아담한 침실로 바뀐 옷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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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 단장을 진행하면서 삶의 방식과 가족 간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팁'을 얻었다.

① 거실의 TV를 없애보자 :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는 아무도 TV를 보지 않는다. 거실을 커다란 서재 혹은 카페 공간처럼 만들어 보자.

② 쓰임새가 적은 물품은 과감히 버리고 공간을 만들자 : 어딘가 쌓아놓고 있다 보면 먼훗날 쓰일지도 모를 물건들, 과연 그때까지 가지고 있는 게 현명한 것일까. 잘 판단해보자. 요즘 세상에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 가장 고가의 자산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수직 공간을 잘 활용해 한쪽 벽면 바닥에서 천정까지 정연하게 잘 정리하면 시각적으로도 나쁘지 않고 수납 공간도 많이 늘어난다.

나는 건축 설계를 평생 직업으로 해왔다. 하지만 파티션의 변경 없이도 전혀 다른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 삶의 방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한 TV라는 가구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동안 3대가 48평 한 집에 같이 산다는 게 너무 힘든 일로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다. 진작에 좋은 환경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태그:#아파트, #집정리, #공간활용, #대가족, #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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