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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법률가인 내가 법률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그래, 일부러 하지 않았다. 법률가 티 내지 않으려고 글 어디에도 법률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오늘부터 몇 회는 법률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로마문명이야기를 하면서 법률을 뺄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는 세계사에 두 개의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하나는 물질문명과 관련된 것인데, 그것은 바로 건축이다. 아직도 지중해 곳곳에 로마의 건축 유적이 남아 있고, 여기에서 비롯된 건축술은 오늘날까지도 서양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비단 서양의 건축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동양,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건축물에도 로마건축의 흔적은 지울 수가 없다(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이야기 할 생각이다).

로마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법률이다. 이 유산은 그리스의 철학과 함께 정신문명과 관련된 것인데, 건축에 비해 더 본질적이고, 더 광범위하다. 로마제국은 당시로서는 세계 그 자체였다. 그 세계를 다스린 로마법은 비단 그 시대와 그 영역에서만의 법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서구사회 전체의 법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법체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말로 로마법을 표현한다. "로마는 두 번 세계를 지배했다. 한 번은 로마제국으로, 또 한 번은 법으로."(참고로 독일의 저명한 법학자 예링은 하나를 더 추가하여 로마는 (기독교) 교회로 세계를 통일했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로마는 세 번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그러니 로마문명이야기를 하면서 로마법이야기를 뺄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법률가, 그들은 왜 특별한가

전관예우의 실태, 수 많은 공직자들이 전관예우를 받고 부를 얻었고, 뒤이어 다시 관직으로 복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관예우의 실태, 수 많은 공직자들이 전관예우를 받고 부를 얻었고, 뒤이어 다시 관직으로 복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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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나는 우리나라 법률가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특권의식이 우리 사회의 연대감을 깨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라고 진단한다.

얼마 전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이지만 어느 장관 후보자가 검찰 고위직에 있다가 대형로펌에 들어가 한 달에 1억 원씩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큰돈을 벌다가 다시 장관 후보자로 당당하게 나선 것이다. 임명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것을 수락하는 사람의 의식세계도 내겐 연구대상이다. 돈과 권력 두 개를 동시에 갖고자 하는 인간욕망, 그 결정체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길 가는 사람,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법률사무소에서 월급을 1억 원 받는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내 자신이 상당기간 변호사를 해 본 사람으로 말하건대 일반적인 변호사 생활에서 월급 1억 원은 상상하기 힘든 액수다. 법조계에 아직도 온존하는 전관예우라는 문화가 없다면 불가능한 돈이다.

사실 전관예우의 병폐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이 문제를 고쳐보고자 온갖 제도적 대응장치를 만들어 왔지만 여전히 그 문화는 진화를 거듭할 뿐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지난 20년간 세계 여러 나라의 법률가를 만나 이런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도대체 이런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꺼낼 때마다 그들은 한국의 법률가들에 대하여 너무나 신기해했다. 마치 별 나라에서 온 별스런 족속을 보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내가 괜한 말을 해서 우리나라 이미지만 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전관예우는 바깥에 나가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 나라 전체가 개망신 당하기 때문이다.

전관예우의 문제는 법조계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의 의식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전관예우 문제가 불거지고 그런 예우를 받은 사람들이 다시 관가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것에 대해 여론은 심히 비판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동경하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런 동경은 내 자식이 그런 경로를 따라 인생을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욕망으로 나타난다. 이는 사교육으로, 입시경쟁으로, 또는 일류병으로 나타나 대한민국 사회를 도저히 재생 불가능한 사회로 만들어간다.

여하튼 이런 사회적 병리 현상에 법률가들이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도대체 법률가들은 왜 이렇게 욕심이 많고 뻔뻔하고 특권의식이 강할까. 나는 그 원인으로 두 개를 들고 싶다. 하나는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전 세계의 모든 법률가에게서 발견되는 보편적 권위주의요,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특이한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 특권의식이다. 로마법은 그 의식 중 첫 번째와 관련이 있다.

영원히 지배하기 위한 방법, 그것은 법이야!

기원 후 2세기 초의 로마제국, 이것이 바로 팍스 로마나의 지경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지중해 연안 국가 전체가 로마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 후 2세기 초의 로마제국, 이것이 바로 팍스 로마나의 지경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지중해 연안 국가 전체가 로마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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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에 로마법이 발전한 이유는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로마는 알다시피 세계 역사에서 가장 긴 사회체제였다. 기원전 753년 시작하여, 처음은 왕정으로, 그 다음은 공화정으로, 그리고 제정으로 정치체제를 바꿔가며 영토를 확장했다. 이 중에서 로마가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시기가 바로 로마제국 시절인데 이 제국은 기원 전후부터 기원후 5세기 말까지 거의 5백 년을 간다. 그런데 이것은 소위 서로마제국에 관한 이야기고, 동로마제국을 포함하면, 로마제국은 그 뒤에도 또 다시 천 년을 세계사에 이름을 남겼다.

로마제국만 보면 로마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였다. 지중해 연안 전체를 지배하는 대제국이었다. 만일 지금 이 시대에 그런 제국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광대한 영토를 한 나라로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2천 년 전에 그 영토를 수백 년 간 통치를 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그것은 힘과 법이라는 두 개의 무기를 적절히 활용한 결과였다. 로마는 우선 힘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힘에 의한 영토확장은 기원후 2세기 초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트라야누스는 로마의 힘의 결정체인 로마군단을 적절히 활용하여 그 지경을 지중해 전역으로 넓히고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로마제국은 엄청난 영토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를 갖고 살아가는 뒤죽박죽의 사회였다. 그 다양성이란 지금의 미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회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계속 힘을 사용하는 것은 과다한 에너지가 사용되는 것이라 제아무리 로마라 한들 오래갈 수 없었을 것이다. 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제국을 다스릴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법이다. 로마제국을 만든 것은 로마의 장군과 병사들이었으나 그것을 유지하여 수백 년을 가게 한 것은 법률가의 몫이었다. 법에 의한 통치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시켜 로마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쿠데타군을 이끌고 시청 앞에 도착한 박정희 소장과 일행들. 박정희 왼쪽은 박종규, 오른쪽은 차지철.
▲ 5.16군사쿠데타 주역들 쿠데타군을 이끌고 시청 앞에 도착한 박정희 소장과 일행들. 박정희 왼쪽은 박종규, 오른쪽은 차지철.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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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역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역사는 법률가가 바꾸지 못한다. 그것은 물리적 힘을 갖춘 이들의 몫이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성계는 무인이었고, 무력 집단이 그를 따랐다. 그래서 그는 역성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이 개국한 이후 5백 년을 유지시킨 것은 그 체제의 소프트 파워인 규범을 만들어 통치를 가능케 한 정도전과 같은 사대부의 몫이었다.

박정희도 마찬가지다. 5·16쿠데타는 그를 따르는 군인들의 총부리에서 시작되었지만, 통치기간 18년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법률가들을 수족 같이 활용했기 때문이다. 소위 육법당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들과 고시출신 법률가들이 5·16 군사쿠데타 이후 한국 사회를 주도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20세기 이후 미국은 새로운 로마제국이었다

한 사회가 작으면 법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 효용성이 적다. 법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회를 다스릴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종교 규범과 사회규범이 분리되지 않으므로 종교는 법의 역할도 한다. 종교 지도자는 자연스럽게 법률가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커지고, 그 구성원과 종교가 다양하다면, 무엇으로 그 사회를 결속시키고 유지시킬 수 있을까. 방법이 없다. 보편적인 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그것을 일률적으로 적용시키는 수밖에 없다. 중국의 전국시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할 때 사용된 한비자나 상앙, 이사의 법가사상도 같은 것이다. 다만, 동양의 법가는 한 때의 통치수단이었을 뿐 로마와 같이 보편적 법 체제에 이르지 못했다. 15세기 이후 서양이 동양을 추월하고 우위를 유지한 매우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보편적 법체제인 로마법과 관련이 있다.

피에트로 우베르티, <세 명의 법률가>. 법률가들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과거 서양의 법률가들은 옷이나 가발을 통해 매서운 권위를 만들었다.
 피에트로 우베르티, <세 명의 법률가>. 법률가들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과거 서양의 법률가들은 옷이나 가발을 통해 매서운 권위를 만들었다.
ⓒ 베니스 두칼레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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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마는 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상황에 있었고, 그런 연유로 법률가는 사회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법률가는 로마시대 이후 서양사회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전문가가 되었다. 법률가들의 드높은 권위의식은 이런 바탕에서 싹튼 것이다.

하지만 서양사에서 중세라는 시대는 법률가의 역할을 후퇴시켰다. 로마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물론 동쪽의 동로마 제국은 여전히 지속되지만 그것도 이슬람 세력의 출현으로 점점 축소되어 13세기 이후에는 지금의 이스탄불 지역 정도로 세력은 약화된다. 로마제국의 영화는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서구 사회 전체는 점처럼 분할되고 움직임이 없는 사회로 전환된다. 이런 사회에서 법률의 역할은 크지 않다. 종교가 모든 것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법률가의 역할 또한 약화되긴 마찬가지다.

전성기의 대영제국, 지도상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전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으니 영국은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영국은 이 광대한 식민지에 영국식 법제를 이식하였다.
 전성기의 대영제국, 지도상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전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으니 영국은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영국은 이 광대한 식민지에 영국식 법제를 이식하였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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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중세의 잠에서 깬 서구사회는 르네상스를 거쳐 본격적으로 대항해 시대에 들어가면서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나타났다. 영토는 마치 로마제국의 그것처럼 커져만 갔다. 대항해 시대의 주인공인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종국적인 승리자인 영국이 그랬다. 이들은 새로운 로마였다. 지경을 넓혀 가면서 법률을 만들고, 적용시킴으로써 로마법이 확장되어간 그 역사를 재현했다. 이런 과정에서 법률가의 역할은 높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권위도 높아졌다.

법률의 중요성은 유럽인들이 만든 오늘 날 미국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다. 200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서 세계사의 주역으로 나타난 미국이 그 사회를 운영해 가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법률이라는 수단 외에는 사실상 없었다.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사회를 끌고 가는 것은 로마제국의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법률의 역할과 법률가의 권위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이후 미국은 새로운 로마제국이었다.


태그:#세계문명기행, #로마법, #로마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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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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