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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증언이 될 기록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기고 있는 지율스님
 시대의 증언이 될 기록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기고 있는 지율스님
ⓒ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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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월, 4대강 개발 착공 뉴스를 보고 산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걸으며 무너져가는 강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아온 지율스님. 낙동강과 내성천 지킴이를 자처한 지율스님은 생명, 자연,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사진전을 몇 년 전부터 이어왔다.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경제 발전 등 정부의 화려한 홍보 구호와는 정반대로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무너지고 파괴되는 국토의 섬뜩한 모습이었다.

한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등 떠밀리듯 떠나야 하는 수몰지역 주민들에게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들었고, 아름답게 빛나던 고운 모래사장이 검은 자갈밭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기록하고 담아왔다.

4대강 사업의 불합리함과 이를 넘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연과 화해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지율스님의 내성천 사진 전시회 '내성천 왕버들 군락과 조각 사진전'이 오는 3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내 나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지율스님은 몇 년 전부터 내성천가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4대강 유지용수 공급을 위해 건설되는 영주댐으로 사라지는 내성천을 보호하기 위해 아예 강가에 둥지를 튼 것이다.

영주댐과 함께 사라질 내성천

조계사내 나무 갤러리에서 지율 스님의 내성천 사진 전시회가 3월 31까지 열리고 있다.
 조계사내 나무 갤러리에서 지율 스님의 내성천 사진 전시회가 3월 31까지 열리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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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지역 주민들의 운명처럼 뿌리째 뽑혀 나가야 하는 강변의 왕버드나무 사진들.
 수몰지역 주민들의 운명처럼 뿌리째 뽑혀 나가야 하는 강변의 왕버드나무 사진들.
ⓒ 지율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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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은 4대강 사업으로 망가져 가고 있는 낙동강의 제 1지류다. 조선시대 적 이름 사천 (모래 사沙. 내川)의 이름대로 모래가 풍성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하천. 최근 생겨난 영주댐 환경 평가서에 의하면 내성천 유역에 쌓이는 모래의 양은 가까운 충주댐의 배가 넘는다. 이렇게 내성천은 모래가 많은, 정확히 말하면 모래톱이 넓게 펼쳐진 강이다.

모래톱은 바다로 치면 갯벌과 흡사하며 수심이 얕고 유속도 느리다. 내성천 상류에서부터 시작되는 모래톱은 지하 10~20m까지 쌓여있다. 이 모래는 지하 6m까지 수분을 함유해 건기에는 수분 손실을 막고 우기에는 유량을 자동 조절해 주는 자연 조절 장치역할을 한다.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짓기 시작한 영주댐은 이런 내성천의 모래 줄기 위에 세워지고 있으며 올해 완공을 앞두고 있다. 댐이 완공되면 내성천 중상류는 수몰돼 사라진다. 하류는 다른 댐이 들어선 하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이 유량이 줄어들어 결국 육지화 된다.

4대강에 거대한 '보'들을 건설해서 녹조로 강을 뒤덮더니, 그것으로 모자라 영양댐, 영주댐, 지리산댐 같은 대규모 댐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어지는 사업을 위한 사업들. 땅도 강도 파헤쳐 지고, 뭉개지고, 자연은 인간의 삶에서 유리된다. 이익을 보는 것은 건설업체들과 토건사업을 벌여야만 자기 조직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건설관료들과 수자원공사뿐이다.

'4년'이라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우리는 강의 원형을 잃었고, 강으로 항한 실핏줄 같은 지천들은 준설공사로 깊어진 본류의 강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 시름을 알 리 없다는 듯, 강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모래강 내성천은 가뿐 숨결로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인가?

당신과 나, 뭇 생명을 위하여 우리가 강이 되자

몇 년 전부터 내성천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지율 스님의 생생한 사진들.
 몇 년 전부터 내성천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지율 스님의 생생한 사진들.
ⓒ 지율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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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인 스님도 찾아와 내성천 사진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한 외국인 스님도 찾아와 내성천 사진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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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을 거니는 스님의 맨발 아래에서, 은은하게 흐르던 은빛 모래들은 돌멩이로, 또 자갈밭으로 변했다. 굴착기가 강바닥을 파내는가 하면 강변을 지키던 나무들이 수백 그루씩 스러졌다. 영주댐 건설로 물길이 막히고 모래가 유입되지 않는 내성천은 강바닥이 파이면서 수면이 낮아졌고 급기야 주민들이 사용할 식수와 용수마저 말라버렸다.

영주댐 건설 이후 내성천에 닥친 냉혹한 현실이었다. 졸지에 수몰지역이 돼버려 쫓기듯 대대로 살던 고향을 떠나야 하는 600여 세대 마을 주민들의 깊은 한숨에서 스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함께 묻어났다.

지율스님은 "영주댐 공사는 그동안 강에 무관심했던 우리 탓이라며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만 번 맞는 말씀이다. 산천 파괴의 역사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우리의 산천은 늘 개발이라는 탐욕 앞에 노출되어 있었다. 건설과 증산, 개발과 성장 가치는 사람살이의 토대를 무너뜨리면서도 한 치의 의심 없이 강화되고 부추겨져야 하는 유일한 시대 가치였다.

그것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독재 정권이나 그 후 간신히 고개를 쳐들었던 이른바 민주화 정권 시절이나 진배 없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들에서 그들은 두 얼굴의 한 뿌리 형제들이었다. 그 끔찍한 형제 결속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동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그들더러 개발과 성장의 선봉이 되어달라고 열렬한 얼굴들로 의탁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시대의 증언자가 된 지율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성공도 실패도 없습니다. 영주댐이 완공 된다고 해서 '내성천 살리기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10년이고 20년이고 내성천의 황폐해지고 사라져가는 자연 생태계를 다 기록해 증거로 남길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할 그날을 기다립니다. 또 그날이 오면 제가 기록했던 증거들이 복구의 기준이 되어 내성천이 지금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남아 복구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내성천 환경단체 누리집 ; www.naeseong.org



태그:#내성천, #지율스님, #4대강 개발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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