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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짝>은 평생을 함께할 '짝'을 찾기 위해 나온 남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일주일간 합숙을 하며 자신의 남자(여자)를 찾아간다. 그들의 만남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사건도 재미있지만,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장면은 바로 '가족과의 통화' 시간이다.

출연자들에게는 가족들과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대부분은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의 반응이 재미있다. "얼굴보다는 성격이다"라는 간단한 충고로 시작해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라며 자식의 선택을 믿는 엄마부터 "얼굴은? 성격은?" 하나하나 일일이 캐묻고 자식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마냥 취급하는 엄마도 있다. 심지어 서른이 넘은 아들에게 양치 꼭 하라는 지나친 당부의 말을 하는 엄마도 있었다.

엄마의 지나친 관심에 대한 자식들의 반응도 재미있는데, 엄마의 과도한 사랑에 짜증으로 대답하는 아들부터 "네, 네, 사랑해요" 하며 고분고분히 말 잘 듣는 착한 딸도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한 여성은 "나는 내가 사랑해도 엄마가 싫다면 결혼 안 할거다"라는 말로 '마마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자식들을 홀로 키워온 엄마의 충직한 딸로 살아온 그녀는 "예쁠 때 시집가야 한다"는 엄마의 뜻에 따라 줄곧 선을 봐왔다고 했다. 그녀가 평생을 함께 할 짝을 찾는 일에도 주도권은 엄마에게 가있었다. 여기서 나는 엄마-딸(혹은 엄마-아들)의 비밀스런 관계를 목격한다.

"사람들은 왜 자식을 낳을까? 이유는 하나, 자식을 통해 새 삶을 살기를 원하는 거야."
- 영화<스토커>

스스로 독립할 기회를 주지 않는 부모들

독립을 원하는 딸들이 꼭 읽어야 할 심리 치유 에세이
▲ 착한 딸 콤플렉스 독립을 원하는 딸들이 꼭 읽어야 할 심리 치유 에세이
ⓒ 김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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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부모님의 잔소리는 언제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 부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것이 바로 자식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지나칠 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독이 되기도 한다.

<착한 딸 콤플렉스> 저자 '하인즈 피터 로어'는 지나친 부모의 사랑이 낳는 문제를 그림 형제의 동화 <거위 치는 소녀>를 통해 풀어낸다. 그는 딸을 위한다는 엄마의 사랑이 사실은 숨겨진 자신의 욕망의 표출이며,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딸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딸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엄마를 목격한다. 그들은 딸의 모든 행동에 잔소리를 일삼고, 모든 것을 대신 해주려고 하며 도무지 아이가 '스스로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이에게 독립의 기회를 주지 않는 완벽한 엄마는 아이의 작은 일탈도, 실수도 용납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보호'가 자식을 위한 길이 아니라 부모의 이기적 목적이 깔려 있는 행동임을 지적한다.

엄마는 다만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헌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게 될까 봐, 힘을 잃을까 봐 하는 두려움의 결과로 딸에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딸을 악용하며, 딸의 인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설계한다. 엄마는 딸의 인생을 '함께 살고' 싶어한다. 이러한 엄마의 욕망 속에서 딸의 진짜 욕망은 무시되며, 심지어 딸은 무엇이 진짜 자신의 욕망인지조차 모르는 비극이 발생한다.

딸의 행복과 욕망 충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수록, 딸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할수록 어쩔 수 없이 본질적인 문제가 남는다. 바로 감정의 악용이다. 딸은 파트너의 대체물이다. 이런 역할의 의미를 흔히 과소평가하기 쉽지만 바로 여기에 의존이라는 큰 고통의 뿌리가 있다. 사랑은 자유의 자식이다. 사랑이 의존으로 변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욕망 때문에 딸이 악용되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어머니는 딸의 진짜 욕망을 무시하는 것이다. - Page 30

잘못된 욕망이 낳은 의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

최근 성인이 된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헬리콥터 부모'와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 자녀'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의대를 중심으로 각 대학교에 학부모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30대 직장인 아들의 사표를 아버지가 대신 내주는 일을 비롯해 환갑이 넘은 자녀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부모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할 때를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 이후의 삶은 전적으로 자녀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부모의 지나친 간섭은 자녀를 부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한다. 그리고 그 의존의 뿌리는 자식이 내가 원하는 대로 커줬으면 하는 잘못된 부모의 욕망이다.

안정된 직장과 성공이라는 부모님의 욕망에 의해 지금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쉴 새 없이 학원을 오가고 있다. 그들에게 '나의 욕망과 선택'이란 없다. '부모님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며 '부모님의 선택'이 곧 '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님의 욕망조차 그들의 진짜 욕망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들이 자식에게 강요하는 욕망은 결국 돈과 명예를 최고로 치는 사회의 욕망의 투영이다.

부모들은 사회가 바라는 올바르고 성공적인 청년상을 욕망하고 자신의 아이가 이를 실현해주기를 바란다. 부모는 아이의 인생을 대신 설계하고, 정해진 길을 강요한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을 스스로 내면화하게 되고 부모의 뜻대로 살아간다. 이렇게 부모님의 완벽한 통제 아래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에 허덕인다.

혼자서는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킬 수 없으며,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와 책임이 두렵다. 결국 이런 무능력한 자녀를 둔(만든) 부모는 성인이 된 자녀에 대한 간섭을 끊을 수 없고, 자식은 부모에게 더욱 더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부모의 잘못된 욕망이 낳은 의존은 이 시대의 수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단어이자 그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욕망-의존의 뫼비우스에서 벗어나기

모든 인간은 공주요 왕자다. 자신이 거위 치는 소녀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열등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것이 모든 변화의 기초이다. 믿음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가장 큰 힘이다. - Page 79

감정적으로 악용 당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조종당했기 때문에 늘 의존적이고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런 그들에게 잘못된 욕망과 의존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피하여 자기 자신의 욕구대로 살아가는 길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은 있다. 바로 '자신을 믿는 것'이다. 저자는 의존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변화의 시작이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한다. 진부하고,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쯤에서 영화 스토커의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새장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네가 무엇이 되든 두려워 마라, 그것이 너의 본 모습이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떤가? 부모라는 이름의 새장에 갇혀있지는 않나? 만약 부모가 만들어 놓은 새장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아도 좌절하지 말자. 새장을 경험한 이에게 자유는 더욱 값진 것이니까.


착한 딸 콤플렉스 - 착해서 고달픈 딸들을 위한 위로의 심리학

하인즈 피터 로어 지음, 장혜경 옮김, 레드박스(2009)


태그:#심리학,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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