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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불끈 주먹 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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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열흘가량이 지났지만, 지금도 출범을 준비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쯤 제대로 출범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상한 형태의 국정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제대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탓이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구호는 허구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대선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많은 공약과 구호들 중에 과연 어떤 것들이 실현 가능한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선거용'인지를 능히 식별할 수 있었다. 또 공약과 구호의 진실성 여부가 절대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 자신을 지지해준 51%의 유권자를 향해 '자랑스러운 국민' '위대한 국민'이라는 수사들을 사용했지만, 그 자랑스럽고 위대한 국민들 속에 어떤 부정적이고 후진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지를, 그런 식의 자랑스러움과 위대함을 거부한 48%의 유권자들은 훤히 알고 있었다.

선거 직후 48%의 국민들이 엄청난 '멘붕(정신 붕괴)' 상태에 빠져들었던 것은 단순한 패배 때문이 아니었다. 박근혜 당선이 상징하는 '과거 지향' 때문이었다. 박근혜의 당선은 박근혜라는 인물의 당선이기에 앞서 과거 권력 또는 과거 지배 이데올로기의 부활이며 승리였다. 그러므로 과거로의 퇴행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박근혜에 걸어본 일말의 희망

박근혜의 당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나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봤다. 박근혜 당선인이 자기인식 능력의 기반 위에서, 자신의 한계와 약점에 대한 성찰과 함께 철학적인 품성을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국민대통합'을 외쳤고 '대탕평'이라는 용어도 구사했다. '국민대통합'이 혹여 박정희식 통치차원의 강압적인 일사불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는 가운데서도 국민대통합을 위한 민주적인 노력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를 희망했다. 그것은 '대탕평'이라는 구호의 실현으로 일정 부분 드러나리라는 생각도 했다. 

자기 인식 능력이 박약해 입만 열면 거짓이 나오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고도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유형은 아니길 바랐다. 자신의 약점이나 한계를 스스로 잘 살핀다면 그것은 곧 혜안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는 총탄에 부모를 잃은 슬픔 외로는 이 세상에 태어나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생활고 한 번 겪어본 적 없고, 남의 밑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다. 남을 모시고 일을 배우면서 성장을 한 사람이 아니라는 평도 있었다. 그는 퍼스트레이디로 출발했고, 대뜸 집권당의 대표로 정계에 입문했으니, 처음부터 입신양명의 토대를 확보한 셈이었다. 자연 독선과 오만의 덫에 걸려들 확률도 클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것을 스스로 헤아리고 경계하는 것은 다시 없는 혜안일 터였다. 처음부터 입신양명의 토대를 확보했다는 것은 혜안의 여지까지 덤으로 확보했다는 얘기도 된다. 스스로 독선과 오만을 경계하고 겸손을 바탕으로 지혜를 발휘한다면 감동적인 성과들이 눈부시게 발양될 수도 있다.

공약과 구호들 덕분에 당선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성찰도 필요하다. 진보 쪽보다 더 전진적인 공약과 구호를 선점할 정도로 이미지 변화도 시도했다. 오히려 진보를 능가하는 모션을 취해도 자신의 지지기반에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말하자면 대통합과 대탕평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저절로 만들어진 셈이다.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혜안을 그에게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헛된 구호가 돼버린 '대통합' '대탕평'

하지만 그는 그런 혜안을 가지지 못했다. 혜안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는 탓이다. 그는 일찍부터 권력의 맛을 체득케 했던 유신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와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라는 소아적인 명제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그에게 철학적인 품성이 자리할 수 있다면, 그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에서 벗어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모습을 구현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오늘의 대통령으로서 과거의 아버지를 잊어야 한다. 그것만이 아버지의 명예를 살리는 길이다. 그가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과거의 수많은 문제들이 다시금 불거지고, 더불어 과거의 퇴행적인 현상들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과거지향적인 모습을 선택하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은 말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미래과학창조부라는 정부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것으로 충족되는 것도 아니다. 우선적으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박정희의 딸이기에 앞서 오늘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자각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담대한 웅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첫 열쇠는 인사다. 기왕에 '대탕평'이라는 말도 입에 담았으니 너른 시야로 인재들을 물색했어야 한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만 인재를 찾으니 시간도 걸리고 인재들이 하나같이 여러 가지 의혹을 사고 있으니 괜스레 국회 청문회 탓이나 하게 되는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 바쁜 직무 가운데서도 틈틈이 책을 읽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가치관을 확장시키고 철학적인 품성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를 극복하고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아버지의 명예에 집착하고, 정치와 통치를 착각하고, 과거의 권위주의와 통치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철학적 품성을 기르고 너른 시야를 가져야 한다

나는 그녀가 51%만의 대통령이 되지 않길 바란다. 김경제 같은 천박한 변절 정치인이 "48%보다 51%를 더 존중해야 한다"는 사려 깊지 못한 말을 한 적도 있지만, 48%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결하는 모습을 지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타협하는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대통령이라는 유리한 입지에서 선도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탓에 국정 공백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그리고 지난 4일 '국민대담화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충고를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솔직히 말해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향후 5년이 두렵다. 공안정국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엄습하고, 내가 불시에 어떤 위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걱정도 든다. 오늘의 공격적인 인사로 말미암아 과거 회귀현상이 걷잡을 수 없는 형태로 진행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절대로 유신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결코 속단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년간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향후 5년이 더욱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의 5년도 금세 지났다. 5년이라는 세월이 긴 것 같지만 잠깐이다. 앞으로의 5년도 덧없기는 마찬가지이니 과거지향적인 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역사 창조라는 명제를 안고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어루만지는 세심함 속에서 대범하게 정치력을 발휘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빈다.


태그:#박근혜, #대통합, #대탕평, #대국민담화문, #국정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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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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