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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아이들> 책표지
 <어둠의 아이들> 책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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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재일교포 작가 양석일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의 책 <어둠의 아이들>이 '19세 미만 구독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19세 미만 구독불가' 판정을 받은 책은 '외설'이 대부분으로 일반 서점에서는 진열대에 놓을 수 없다. 계산대에서 신분증으로 구입자의 나이를 확인한 후 계산을 끝내기 전에는 책을 받아볼 수도 없다. 공공도서관의 경우에도 일반 서고에 진열하지 않고 따로 보관한다.

양석일은 재일문단계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더 나아가 일본 문단에서도 인정받는 작가다. 와세다대학 교수이자 평론가인 다카하시 도시오가 그의 작품에 대해 평한 내용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차별과 분단과 분쟁을 현대세계의 '보편성'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주체의 발견이야말로, 현대사상에도 주목할 만한 것이며 또한 세계문학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시아> 2007년 가을호, 다카하시 도시오 '세계문학'으로서의 아시아문학')

일본국영방송인 <NHK>에서도 그의 특집을 방영할 정도로 일본에서 그의 위상은 높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설'과 같이 취급된다. 양석일의 소설은 과연 '외설'일까? 생각해 보니 그의 책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영화라면 봤다.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피와 뼈>가 양석일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어둠의 아이들> 역시 사회파 감독인 사카모토 준지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관광 도시 이면에 도사린 어둠의 세계

<어둠의 아이들>의 배경은 태국. 아시아에서 관광국가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국적인 풍경과 먹거리 그리고 값싼 물가. 아름다운 관광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이 첫 장부터 생생하게 그려진다.

길거리엔 구걸과 몸을 팔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스트리트 칠드런이 가득하고 도시빈민가와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난 곳에서는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단돈 36만 원에 팔려간다. 여덟 살 센라 역시 언니 야이룬의 뒤를 이어 만 이천 바트(한화 36만 원)에 아동성매매업소에 팔려간다. 그의 부모는 야이룬을 판 돈으로 냉장고와 텔레비전 그리고 오토바이를 샀다.

방콕 시내의 팟퐁가에 있는 프티가토(불어로 '작은 과자'라는 뜻이다) 호텔은 이 거리에서도 유명한 아동성매매업소다. 이곳의 보스 솜캣 밑에서 일하는 충 역시 열살 때 마을에 닥친 기아로 인해 엄마한테 버려지고 결국 스트리트 칠드런이 되어 몸을 팔아 살아 남았던 과거를 가진 인물이다.

충은 산악지역의 마을을 돌며 아이를 사오고 사 온 아이들을 성노예로 훈련시키는 역할을 한다. 야이룬과 센라 역시 그에게 팔려 프티가토 호텔로 오게 된다. 성노예로 팔려간 아이들은 폭력은 물론이고, 에이즈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결국 혹사당하다 죽거나 에이즈에 걸린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장기매매의 제물이 되는지 자세하게 그려진다.

센라의 언니인 야이룬은 2년 동안 혹사당하다 에이즈에 걸려 시골 마을의 노동자를 상대하는 업소에 팔려간 후, 얼마 안 가 에이즈 걸린 것이 밝혀져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쓰레기장에 버려진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도착한 고향마을에서는 야이룬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알고 우리에 가둔다. 결국, 죽음 문턱에 간 그녀의 몸에 개미떼가 달려들자 야이룬의 아버지는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다.

센라 역시 언니 야이룬이 거친 단계를 그대로 밟게 된다. 어른들로부터 성노예로 훈련되고 학대당하다 종국에는 장기매매의 제물로 팔려가게 된다. 여기에 아동학대와 인신매매를 저지하려는 사회복지센터의 나파폰 소장과 일본에서 파견된 NGO활동가 오토와 게이코, 특파원 난부 히로유키가 부패한 태국 정부와 폭력조직, 아동성매매업소와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이야기가 더불어 전개된다.

'외설'이 아닌 '진실의 시각'으로 읽어야 하는 소설

첫 장부터 충격적인 아동 학대 장면과 소아성애자들과의 성관계 묘사 등이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하지만 무언가 커다란 힘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게 된다. '커다란 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 작품을 번역한 김응교 평론가의 말을 빌려 본다면 그것은 어둠에 직면하는 '진실의 시각'이다.

"양석일의 소설은 일본문학이 강요하고 있는 뻔한 틀을 벗어나 있다. 전통적인 사소설을 통해, '일본적인 전기'로 서양인의 동양적 취미를 끌어내려 했던 시도들은 양석일의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다."

"양석일은 인간 가치의 문제를 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철저한 사실주의적 기법을 사용하는 솔제니친 같은 리얼리즘의 계보를 잇는 작가다. 그래서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데 급급해하지 않는다. 되려 그의 문장은 거칠다는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따라서 우리는 문체보다는 그 구조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어둠의 아이들> p409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장기 이식 비용으로 4천만 엔을 지급하고서라도 심장병을 앓는 아들을 살리려는 미네코. 미네코의 아들을 위해 산 채로 장기이식 수술대로 오르는 센라. 그리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센라를 바라만 볼 뿐 구해낼 수 없었던 난부 기자. 이 모든 것은 가난한 태국인과 부자 일본인 사이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돈'이라는 괴물이 지배하는 구조의 문제이며 '폭력'이 낳은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세상의 역사는 바른 방향으로 흐르는가?

노랫가사처럼 '역사는 흐른다' 그런데 그 역사의 강물은 바다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가?  

지난 15일 김준기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 풀버전이 김 감독의 블로그를 통해 무료 공개됐다. 2011년에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은 고 정서운 할머니의 육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열 다섯 꽃다운 나이에 옥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고자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은 정서운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주둔 중인 일본군 부대의 위안소.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마을 이장의 말은 거짓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사람들 대부분이 군수공장과 같은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는 말에 속았다. 12세 때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의 증언도 있다.

<어둠의 아이들>의 시대적 배경을 100년 전 한국으로 바꿔보자. 단돈 36만 원에 팔린 야이룬과 센라는 고 정서운 할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위안부 소녀들이고, 아동매매업자인 솜캣은 일본의 제국주의이며, 그의 심복 충은 식민제국에 충성한 조선인과 다를 바 없다. 비약이긴 하나 태국의 어린아이들을 성노리개로 삼는 미국인, 프랑스인 그리고 일본인 등은 당시 한반도를 집어삼키려 했던 그들 나라의 모습이다. 

며칠 후면 삼일절이다. 해방 이후 우리는 몇 번의 삼일절을 맞이했나. 그동안 일본은 역사 앞에 어떤 반성의 자세를 보여줬는가. 치욕스러운 역사를 온몸으로 버텨냈던 이 땅 위에서 '외설' 작가로 취급받는 양석일은 묻는다. 어둠의 세계와 직면할 수 있는 진실의 눈을 가진 용자가 있느냐고.

덧붙이는 글 | 어둠의 아이들 | 양석일 (지은이), 김응교 (옮긴이) | 문학동네 | 2010년 4월

<어둠의 아이들>을 비롯한 양석일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 김응교 선생님에 따르면 최근 양석일 작가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 한다. 안타까운 소식이다. 또한 조만간 그의 작품이 출간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 작품이 '양석일 소설'의 근간이 된 <아시아적 신체>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이 더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길.



어둠의 아이들

베른드 지겔코브.볼프강 뷔셔 지음, 이혜경 옮김, 나녹(2012)


태그:#양석일, #김응교, #정서운, #소녀이야기, #어둠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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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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