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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먹자골목'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관들이 화재가 발생한 식당에 물을 뿌리고 있다.
▲ 인사동 먹자골목 화재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먹자골목'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관들이 화재가 발생한 식당에 물을 뿌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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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안전이 대한민국의 안전입니다."

구급대원으로 소방관복을 입은 지 5년, 박헌영(31) 소방관은 25일 대통령에 취임하는 박근혜 당선인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마디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 22일, 박 당선인 취임식장에 쌓인 눈을 쓸고 의자를 닦는 일에 소방관 100여 명이 동원된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박 소방관도 분개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트위터(@Kor_Firefigh***)로 "소방관을 그저 쌓인 눈이나 치우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거냐"며 '현직 소방관'으로서의 목소리를 알렸고,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물론, "소방 임무 중 재해재난 구조도 있으니 제설작업에 동원되는 건 당연하다"는 등의 반대 의견도 있었다. 트위터 상에서 오후 내내 이어진 공방을 마치며, 박 소방관은 다음과 같이 맺음말을 남겼다.

"아직도 소방관을 의자 닦기에 동원한 게 뭐가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분들은 소방기본법 제1조 1항을 큰소리로 또박또박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다음 생에는 소방관으로 만납시다."

소방기본법 제1조는 '이 법은 화재를 예방·경계하거나 진압하고 화재, 재난·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에서의 구조·구급 활동 등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공공의 안녕 및 질서 유지와 복리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혀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3일, 박 소방관과 서면인터뷰를 통해 '의자 닦기' 동원 사건에 대한 현직 소방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소방관 의자 닦기 동원사건'..."아니 왜?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22일, 박근혜 당선인 취임식 준비중인 국회에서 소방관이 의자의 물기를 닦고 있다.
▲ 대통령 취임식장 의자닦기에 소방관들 동원 22일, 박근혜 당선인 취임식 준비중인 국회에서 소방관이 의자의 물기를 닦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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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소방관은 "소방관 본연의 업무가 아닌 의자에 쌓인 눈을 치운다는 것, 그리고 공문까지 보내 도로 청소 요청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게 당황했다"며 "아니 왜?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취임식 등의 행사에 소방력을 근접 배치하는 경우는 있지만 의자 닦기 처럼 전혀 관련 없는 일에 동원된 것은 처음 들어본 일"이라는 것이다.

전날 야근 근무를 선 비번자 70여 명이 의자 닦기에 동원된 것 역시 문제다. 박 소방관은 "야간 근무 중에는 출동 대기를 하며 긴장감을 배로 느낀다, 그런 상태로 근무를 장시간 한 후 퇴근을 하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피로가 몰려온다"며 "그런데 다시 다른 일로 동원된다면, 다음 근무 진입까지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피로가 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건을 두고 박 소방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소방관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드러났다"며 "그래서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처우 문제가) 달라질 건 없었던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린 바 있다.

실제,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한 해 평균 6명 이상의 소방관이 순직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을 입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위험수당으로 5만 원이 지급될 뿐이다. 이마저도 지난 2008년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오른 것. 화재진압수당은 8만 원, 구조구급수당은 10만 원이 전부다. 출동 횟수와 관계없이 한 달에 받는 규모다. 소방 인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소방관 1명이 담당하는 주민 수는 1208명에 달한다. 미국(1075명)·일본(820명)에 비해 훨씬 많은 수다. 소방관들이 격무에 시달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방관 순직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소방관의 처우개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그 때 뿐이었다. 관심을 기울이던, 정부·국회·언론도 이내 그들을 외면했다. '의자 닦기' 동원 사건은 소방관들의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게 박 소방관의 생각이다. 그는 "(순직 사고 때 쏟아지는) 여론의 반짝 관심은 소방관에게 헛된 희망만을 안겨주게 된다"고 자조했다.

현재 소방관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력 증원이다. 사고 현장 충돌 시 운전자를 제외하고 최소 2명이 나가야 하지만 부족한 인원 탓에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 소방관은 "전국적으로 약 2만여 명의 소방관이 부족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충분한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며 "최첨단 장비 도입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장비를 사용하는 건 소방관이니만큼 인력 증원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정부 5년을 이끌어 갈 박 당선인에게 박 소방관이 당부하고자 하는 바도 '인력 충원'이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을 향해 "대선 기간 동안 박 당선인이 광주 소방서를 방문해 소방관 증원을 약속했다고 들었다, 또 소방재청이 대통령직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향후 5년간 2만 명 증원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걸로 알고 있다"며 "박 당선인이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시 했던 만큼, 소방방재청의 증원 계획에 많은 힘을 실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소방관은 대통령 취임식전에 의자 닦는 허드레 역할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는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정식 초청받아 대통령 취임식 날에 레드카페트를 밟으며 당당히 입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멘션을 남겼다. 이 같은 의견을 전하자 박 소방관은 "말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감사하다"며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저런 날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헌영 소방관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했던 박 당선인, 소방관 증원 계획에 힘 실어주길"

박헌영 소방관
 박헌영 소방관
ⓒ 박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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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식장 의자닦기에 소방관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소방관 본연의 업무가 아닌 의자에 쌓인 눈을 치운다는 것, 그리고 공문까지 보내 도로 청소 요청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게 당황했다. '아니 왜?'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소방관 동원 관련 기사가 나가고 주변 동료들과도 얘기를 나눴다. 전날 근무 후 퇴근하는 비번자까지 동원해야 하는 일인지, 눈을 치우는 데 왜 소방관이 가는 지에 대해 대개 같은 생각이었다. 평소, 취임식 등의 행사에 소방력을 근접 배치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의자 닦기 등처럼 전혀 관련 없는 일에 동원된 것은 처음 들어본 일이다."

- 비번자 70여 명도 동원됐던데, 다음 날 근무 차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야간 근무 중에는 출동 대기를 하며 긴장감을 배로 느낀다. 그런 상태로 근무를 장시간 한 후 퇴근을 하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피로가 몰려온다. 그런데 퇴근하지 않고 다시 다른 곳에 동원된다면, 다음 근무 진입까지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피로가 쌓일 수 있다."

- 소방관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현장을 뛰는 소방관으로서,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견이지만, 무엇보다 충분한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볼 때도 아직 약 2만 여명의 소방관이 부족하다고 한다. 소방관의 신체를 지켜주는 최첨단 장비 도입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런 장비를 사용하는 건 소방관이니만큼 충분한 인력 증원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현재 지방자치단체에 속해 있는 소방공무원을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자체에 있는 소방조직은 충분한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이는 노후 된 소방관의 개인 장비와 각종 소방 장비의 교체 시기를 늦출 수 있다. 노후 된 장비를 사용하는 건 사고 발생을 증가시킬 수 있는 문제다."

- 소방관 순직이 이어지자, 소방관이 받는 위험수당과 화재진압수당도 한 때 화제가 됐다. 지나치게 적은 거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근 순직 사고가 잦아지며 안부 전화가 늘었다. 순직 사고 소식을 들으면... 서로 얼굴은 몰라도 소방이라는 이름의 한 가족이라, 참 슬프고... 트위터 등을 통해 심경을 토해내고 있다. 소방관 순직 사고가 발생하면 매번 각종 언론은 소방관의 처우에 대해 뜨겁게 논의하고 토론하지만 실제 화재진압 수당 등의 인상은 없었다. 지난 참여정부에서 위험수당을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증액한 것이 다다. 이 같은 언론과 여론의 반짝 관심은 소방관에게 헛된 희망만을 안겨주게 된다. 그리고 현재 OECD 가입국인 우리나라의 재난관리분야에 대해 국비 지원액은 소방 전체 예산의 1.8%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OECD가입국의 재난관리 분야 평균 국가부담률은 약 67%대다. 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지원과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소방관의 하루 상황을 그려보자면, 어떻게 진행되나.
"내가 근무하는 인천 지역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주간 근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야간근무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한다. 겨울철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최근 화재 출동이 많이 늘었다. 화재진압대원은 출동 현장에서 화재 진압과 인명 검색·구조 업무를 하고 구조·구급 대원은 현장에서 요구조자 구조 및 현장 응급처리를 시행한 후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한다. 현재 소방관은 출동 업무 외에도 출동 대기 중 각종 행정업무를 각각 맡아 하고 있다.

- 그동안 소방관으로서 근무하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언제인가. 또 가장 보람됐던 건 언제인가.
"현재 구급 업무를 맡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정말 어렵게 구조한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처치를 해 이송, 병원에 인계했지만 끝내 사망했을 때 매우 힘들었다. 현장에서 구조해 맥박이 회복된 후 병원 응급실로 인계했는데 무사히 잘 퇴원하셨다는 소식을 접할 때 보람된다. 처음 내 손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했을 때 당시에는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철수하는 구급차 안에서 점점 손이 떨리며 벅찬 감동이 밀려오더라. 그 날 근무하는 내내 그랬다. 첫 출동을 나갔을 때의 기억도 생생하다. 싸이렌이 울리고 출동 나갈 때 다른 자동차가 멈추며 우리를 바라볼 때, 무언의 감사의 인사를 느꼈다."

- 처음 소방관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지나.
"처음에는 그저 막연히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공부를 하며, 구급대원이 있음을 알게 됐고 현장 응급처치에 전문적인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지금의 직업에 아주 만족하고 행복해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방관 전체로 봤을 땐 시민의식과 복지, 처우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 박근혜 당선인의 향후 5년,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일단, 제18대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대선 기간에 보여주신 것처럼 국민대통합의 대한민국을 위해 많은 힘을 써주셨으면 좋겠다."

-한 트위터 이용자(kimd***)는 "소방관은 대통령 취임식전에 의자닦는 허드레 역할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는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정식 초청받아 대통령 취임식 날에 레드카페트를 밟으며 당당히 입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멘션을 남겼다. 공감하는 바가 많을 거 같다.
"말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감사하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저런 날이 있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박근혜 당선인에게 한 마디를 남기자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
"대선 기간 동안 박 당선인이 광주 소방서를 방문했다고 알고 있다. 그곳에서 소방관 증원을 약속했다고 들었다. 또, 소방재청이 대통령직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향후 5년 간 2만 명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걸로 알고 있다. 박 당선인이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시 했던 만큼, 소방방재청의 증원 계획에 많은 힘을 실어주시길 바란다. '소방관의 안전이 대한민국의 안전이다.'"


태그:#박근혜, #취임식,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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