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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도 어판장은 물 위에 떠있다. 커다란 돛배 모양에 눈길을 빼앗긴 사람들은 가까이 와보고서야 그게 횟집들이 모여 있는 어판장이란 걸 깨닫는다. 칸칸이 나누어져 있는 점포들마다 이마에 가게 이름을 달고 있다. 배 이름을 딴 듯 가게 이름의 끝 글자가 '호'로 끝난다.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잡아온 고기를 아내가 회를 떠서 파는 게 바로 황산도 횟집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러고 보니 그곳 횟집들은 모두 저마다 배 한 척인 셈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 걸까 횟집촌이 한산하다. 이제 막 열한 시를 지난 시간이니 그럴 만도 하다. 돛단배 모양을 한 횟집들은 항해 준비로 부산스레 움직인다. 손님이라는 바다를 향해 나서는 그들에게 오늘은 순풍만이 불어서 하루 장사가 잘 되기를 빌어본다.

강화 초지진 근처에 있는 황산도 어판장입니다.
 강화 초지진 근처에 있는 황산도 어판장입니다.
ⓒ 이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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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한 길을 걷는다. 한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시동생 내외와 함께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 줄기 비라도 뿌리려는 지 하늘은 편한 상이 아니었지만 동생과 나란히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육지에 떠있는 배

얼마 전에 시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평소 자주 전화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는지라 무슨 일일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더구나 업무 중일 시간대에 걸려온 전화였는지라 더더욱 궁금했다. 그러나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형수님" 하는 소리만 듣고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일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 아니라 정(情)으로 한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시동생은 "형수님,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요. 제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 서운해 하지 말아주세요." 하였다. 아침 여섯 시에 나가서 밤 열 시에 퇴근을 하는 게 다반사인 사람이, 더구나 다른 것에는 눈 돌릴 틈도 없이 바쁠 시동생이 일부러 전화를 걸어서 자기 심경을 토로하는 데, 전화선 너머로 시동생의 마음이 보이는 듯 했다. 나는 시동생이 마저 다 하지 못한 말까지도 다 읽을 수 있었다. 시동생 역시 우리와 다름없이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형제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시동생은 앞만 보고 돌진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명절이나 시어른들 생신 때 온 식구가 모이면 때로 감정을 상할 때도 있었다. 분명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시동생의 성격 때문이었다. 적당히 넘어갈 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려다 보니 생기는 갈등이었다. 

시동생은 굴지의 회사에 다닌다.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을 그 회사에서 시동생은 지방대 출신으로 임원이 된 사람이다. 그러니 그 속에서 얼마나 고군분투를 하며 노력을 했을 것인가. 그런 시동생을 남편은 흐뭇해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짠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물이 빠진 갯벌에도 길이 있습니다.
 물이 빠진 갯벌에도 길이 있습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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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을 따라 길게 나있는 데크에 들어섰다. 둥근 기둥을 실하게 박고 그 위에 나무판자를 깔아서 바다 위에 길을 만들어 놓았다. 물이 밀려들어올 때는 데크 밑에까지 물이 들어차지만 지금은 물이 다 빠져나간 간조 때라서 방부 처리를 한 기둥들이 그대로 다 드러나 있다. 기둥의 뿌리 부분은 녹이 슨 청동그릇처럼 푸르스름했다.

돌진하는 동생, 바라보는 형님

두 형제가 앞서고 동서와 내가 뒤를 따랐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자주 만날 수도 없었다. 또 시댁 일로 모여도 일하고 식구들 챙기느라 잔잔하게 속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다. 그래서 형제간이라고 해도 속으로 짐작만 할 뿐 각별하게 서로를 챙겨주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이 길은 다르다. 이 길 위에는 지금 우리 밖에 없다. 앞선 두 사람도 또 뒤따르는 우리 동서간도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을 한다. 바닷바람이 사정없이 불었지만 형제의 정담은 계속 오갔다.

남편은 시동생의 처사를 못마땅해 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중한 병으로 수술을 받았는데도 시동생에게서는 안부 전화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 시동생은 외국의 지사에 나가 근무하고 있었던지라 한국에 들어오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그래도 전화로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또 병구완을 하는 형수에게 치사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일 텐데 시동생은 그리 하지 않았다. 남편은 동생의 그 무정함에 내내 속으로 서운해 했다.

갯벌은 늘 한결 같으면서도 또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갯벌은 늘 한결 같으면서도 또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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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형제간에 그런 기운이 감돌면 안에서 감싸면서 다독여줘야 하는데도 맏며느리인 나는 그렇게 할 줄을 몰랐다. 동서와 내가 마음을 모으면 형제간에 서운한 마음은 금방 풀릴 텐데도 나는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나 역시 서운한 마음이 없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간이면서도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화해와 이해의 길

그러나 형제의 정은 얕은 듯 하면서도 깊었다. 동생에게 서운해 하는 남편의 그 마음은 다시 말하면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다. 남편은 늘 동생을 걱정했다. 전투적이고 저돌적인 그 성격 때문에 적을 만들까 봐 염려를 하며 주변에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일만 하는 동생의 건강을 염려했고, 취미생활을 적절히 하면서 긴장을 풀며 사는지도 궁금해 했다.

시동생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자식 둘을 대학 공부 시키느라 변변한 옷 한 벌 없는 것 같은 형님이 안 됐을 것이고 늘 양보만 하는 형님의 성격을 아는지라 경쟁에서 남에게 밀릴까봐 염려도 되었으리라. 문득 생각해보니 형님이 눈에 어른거렸을 테고, 그래서 시동생은 우리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앞서 걸어가는 두 형제는 내내 이야기를 나눈다. 널찍한 어깨며 걷는 걸음걸이까지도 두 사람은 닮았다. 남편의 어깨가 시동생 쪽으로 슬몃 기울어 있다. 시동생의 어깨 역시 그러하다. 갯바람이 그 사이를 말없이 지나갔다.


태그:#강화나들길, #나들길, #갯벌, #황산도 어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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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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