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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재보강 : 1일 오후 4시 30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자료사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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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대법정. 서창원 부장판사(민사합의 32부)는 담담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법정 안은 200여 명에 달하는 방청객으로 꽉 들어찼다.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가(家) 형제끼리의 상속분쟁인 만큼 소송액수만 4조 원이 넘는다. 소송을 제기한쪽이 법원에 낸 인지대만 127억 원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상속분쟁이다. 단순히 삼성가 형제간의 재산 다툼으로 끝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 등 그룹 지배구조까지 영향을 끼칠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소송은 국내외 언론의 큰 관심을 모았다.

서 판사가 이번 소송을 제기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등이 낸 주식인도 청구에 대해 기각한다고 말하자, 법정 안 일부에서 "아~" 라며 조용한 탄식도 흘러나왔다. 맹희씨 쪽 원고 변호인단의 표정은 순간 굳었다. 피고쪽인 이건희 회장쪽 변호인단도 상기돼 있었다.

4조 원대의 유산다툼, 재판부의 뼈있는 충고 "화목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서 판사는 판결에 앞서 "이번 변론과정을 보면서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지 중에 일가가 화합해 화목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뜻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 결과를 떠나 원고와 피고 일가 모두 화합해서 살아가시길 바란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삼성생명과 전자 주식이 아버지였던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 재산이냐는 것이다. 만약 상속재산이 아닐 경우, 이른바 세기의 소송은 싱겁게 막을 내릴 수도 있었다.

맹희씨 쪽에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차명으로 주식을 물려줬는데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차지했다"고 주장해왔다. 대상 주식으로 삼성생명 주식 824만주와 전자 주식 20주, 배당금 1억 원 등을 청구했고, 이어 청구취지를 확장해 소송액수가 4조849억 원까지 늘었다. 이건희 회장 쪽에선 상속재산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이 회장이 따로 차명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논리였다.

이에 재판부는 맹희씨 쪽에서 주장하는 상속재산이거나 그에 비롯된 재산이라고 인정할만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1334만476주와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주식 1353만6955주, 삼성전자 보통주 79만8191주와 우선주 4403주, 이 회장의 이익배당금과 주식매도 대금 3051억여 원 등에 대한 맹희씨 쪽의 주식인도 청구는 기각됐다.

1심서 싱겁게 끝나버린 세기의 소송? "상속 재산 아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상속재산을 돌려줄 수 있는 권리가 남아있느냐였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미 상속재산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마당에 이 역시 맹희씨 쪽 청구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상속 재산으로 인정 받아야 재산분할을 주장할 권리가 남았는지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 용어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이라고 부른다. 이 기간이 끝났는지, 아니면 남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현행 민법에는 상속회복청구권은 그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경과되면 소멸된다고 돼 있다.

이맹희씨 쪽에선 차명주식 존재를 지난 2011년 6월에야 알았다는 입장인 반면, 이건희 회장쪽에선 지난 2008년 4월 삼성특검 때 이미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피고 쪽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3년이 지나게 된다. 또 상속 시점 역시 이병철 회장이 사망하고, 이건희 회장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1987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맹희씨 쪽에서 재산을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상속재산으로 인정한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17만7732주, 삼성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주식 21만5054주도 권리행사 기간인 10년이 지나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 판결은 원고(이맹희씨 등)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될 때 내린다.

맹희씨쪽 변호인단, "항소 검토할 것" 장기화 가능성도

이날 판결로 삼성가 형제간의 낯뜨거운 재산다툼은 일단락됐다. 사실상 이건희 회장 쪽의 완승으로 끝났다. 삼성 쪽 소송 대리를 맡은 윤재윤 변호사는 "사실관계와 법리 등을 비춰볼때 합당한 판결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원고 패소한 이맹희씨 쪽 변호인 쪽은 "법원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의뢰인측과 상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주변에선 상속재산과 제척기간을 둘러싼 논쟁이 여전한 만큼 항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삼성가 상속재판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태그:#이건희, #이맹희, #삼성 상속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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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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