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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묻다>(서현, 2011) 표지 사진.
 <건축을 묻다>(서현, 2011) 표지 사진.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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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건물(建物)'과 '구조물(構造物)'이라는 말이 있다. 각자 그 의미를 따져보기 바란다. 자, 이제 스피드 퀴즈 하나를 풀어 보자. 자연석을 쌓아 만든 경주의 천마총과 돌을 네모나게 깎아 쌓아올린 이집트 가자 지구의 피라미드,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시베리아 유목민의 텐트가 있다. 이들을 건물과 구조물의 두 가지 유형을 기준으로 분류해 보자. 이 책에 따르면, 이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건물: 피라미드
구조물: 천마총, 에펠탑 

텐트는? 텐트는 정착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인지, 이동하기 위해 정착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저자에 따르면, "텐트는 건물을 규정하는 두꺼운 경계 위에 발을 걸치고 있다" 건물인지 구조물인지 알기 힘들다는 말이다.

둘. '건축(建築)'과 '건물(建物)'이 있다. 이 둘의 개념 역시 각자 정리해 보고 그 의미를 구별해 보자. 이때 "건축은 예술인가"라는 뜬금없는 질문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스피트 퀴즈다. 전두환의 차남 전재용씨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중구 서소문동 116번지 일대의 구조물과 서울 명동 성당, 세종문화회관 앞의 자전거 보관대를 건축과 건물로 구별해 보라.

건축: 서울 명동 성당
건물: 전재용씨의 서소문동 구조물, 자전거 보관대

건축과 건물은 용도와 존재의 의미(?)로 구별된다. 어떤 구조물, 곧 건축적 구조물에서 용도가 사라졌을 때, 그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건물이 된다. 용도가 사라져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면 건축이다. 용도가 사라진 자전거 보관소는 철제 덩어리다. 물론 자전거 보관소가 그 용도 외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가령 자전거 보관소 형식으로 된 설치 예술품 같은), 그것은 건축이 된다.

모든 건축적 구조물은 고유의 기능과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 그것들은 한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울 서초동의 타워 팰리스 아파트와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닐하우스 촌을 대비해 보라. 모든 건축적 구조물은 지붕과 벽체 등으로 구성된 공간상의 실재물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서로 다르다.

건축은 한 사회와 시대... 공간으로 구현된 시대정신

건축에서는 용도가 중요하다. 건축의 생산 양식은 용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때 공간이 용도와 결합하여 이루어진 단위 조직체를 가리키는 말이 '방(房, room)'이다. 인간을 담는 방은 건축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이다. 방은 생물의 세포이고, 물질의 원소에 해당한다.

여기서 세 번째 스피드 퀴즈. 이번에는 서술형이다! 방은 영어 단어 '룸'에 대응하는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구별이 될까? 방은 좌식, 룸은 입식 생활을 함축한다. 방은 방이지만 룸은 '실(室)'이다. 방은 포괄적이고 열려 있지만 룸은 특정적이고 닫혀 있다. '실'이, 화장실, 욕실 등과 같이 그 용도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이는 이유다. 화장방이나 욕방(?) 등은 어색하다.

방과 룸은 그것을 규정하는 요소를 통해서도 구별된다. 방은 바닥을 통해, 룸은 벽을 통해 규정된다. 방은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을 수 있는 행위로 규정되지만 룸은 벽이라는 물리적인 구조체를 통해 그 너머와 구분되는 공간적 이동 범위로 규정된다. 방은 정주에 바탕을 둔 동양적 공간이고, 룸은 유목에 기반한 서양적 공간이다.

건축은 한 사회와 시대이기도 하다. 건축이 공간으로 구현된 시대정신(Zeitgeist)인 까닭이다. 시와 소설에서 그 작가의 역사관을 추리하듯이 우리는 건축을 통해 그 건축가의 역사관과 사회관을 짐작한다. 건축은 동시대의 가치관과 문화가 어우러진 시대 정신의 총화다.
학교를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의 학교 공간은 네모나게 규격화한 성냥갑처럼 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학교의 원형은 일제 군국주의에 의한 식민 지배 시기에 배태된 것들이다. 그만큼 병영적인 요소가 강하다. 학교 안의 공간은, 군대 막사나 양계장처럼 극대화한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다.

25평의 사각형 교실과, 유사시에 피난 통로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 복도 등이 그 예들이다. 운동장은 당연히 연병장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학교 교실은 교사가 쓰는 교탁을 중심으로 오와 열이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는 획일적인 공간으로 운용된다. 운동장이 놀이가 아니라 훈육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근대적인 학교 교육의 목적은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줄 아는 원만한 사회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운동장이 없는 유럽의 많은 학교를 떠올려 보라. 혹여 운동장이 있더라도 그곳은 아이들이 마당처럼 뛰어놀 정도의 규모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통제에 따른 체련 활동보다는 마음껏 즐기는 놀이 활동을 한다. 마당 같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2열 횡대, 4열 종대 식으로 서서 열병을 하듯 훈육을 하는 모습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학교는 군대가 아니다. 학교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지 군인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학교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군인이나 군대를 비하한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 누구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감성을 존중하고 의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학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교사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기계처럼 정형화한 동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책걸상에 앉아 획일적인 동작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사가 판서하면 펜을 들어 따라 써야 한다. 교사가 설명하면 꼿꼿한 자세로 귀 기울여 들으면서 메모 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만하거나 공부 안 하는 아이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먼저 교탁을 옆으로 치워 보자. 교탁을 치우기기 힘들다면 아이들의 책상과 걸상을 흐트려 보자. 아이들이 앞쪽에 있는 칠판만을 보고 수업을 해 왔다면, 걸상을 살짝 옆이나 뒤로 돌려 이들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자. 책걸상을 움직이는 게 번거롭다면 아이들이 자유롭게 몸만이라도 돌릴 수 있도록 해도 좋다. 그렇게 해서 학교에 사람이 살 수 있게 하자.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집 또한 마찬가지다. 가령 집안의 부엌과 같은 공간을 떠올려 보라. 부엌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을 단순한 서식처가 아니라 집으로 만들어주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가족들이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동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함께 나누어 먹음'이 없다면 가족은 가족이 아니고 식구 또한 식구가 아니다. 그들은 남남이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이 아파트에서 밥을 함께 먹지 않거나, 못한다. 식사는 끼니가 되고 그 안에서의 생활은 기숙(寄宿)이 된다. 실상 규격화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한국 사람은 그 집을 기숙사나 모텔과 같은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아파트 거실의 주인이 텔레비전이 아니라 큰 식탁이나 테이블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 식탁과 테이블에서 가족들이 말 그대로의 '식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집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우리 집에는 거실에 텔레비전이 없다. 한 대 있는 구닥다리 텔레비전은 안방 한쪽에 찌그러져 있다. 대신 거실에는 2미터가 넘는 기다린 상판을 단 책상이 있다. 이 책상에서 나와 세 아이는 딱지를 만들고 종이 접기를 한다.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구운 고구마를 나눠 먹기도 한다. 거실의 주인이 텔레비전이면 하기 힘든 일들이다.

건축적 구조물은 인간이 오고가는 공간과 그 안에서 하는 동선(행위, 행동)을 규정한다. 그것은 의미와 가치와 용도로써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고, 사회와 시대정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건축과 건물에서 자신의 인문적인 삶을 성찰하고 그 의식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현 교수의 <건축을 묻다>가 그 훌륭한 지침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서현, <건축을 묻다>, 효형출판, 2011, 1만5000원, 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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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묻다 - 예술, 건축을 의심하고 건축, 예술을 의심하다

서현 지음, 효형출판(2009)


태그:#건축, #건물, #구조물, #인문적 건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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