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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 초기인 1915년 2월 14일자 <매일신보>에 '배다리의 시장풍경'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비록 당시를 보여주는 사진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인천의 제일 볼 만한' 시장인 배다리시장은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매우 곤란할 뿐 아니라 (중략) 각 촌의 어른, 아이들은 물론하고 행인이 연락부절'일 정도로 번성했으며 수로와 육로를 통해 온갖 문물이 넘쳐나던 매우 크고 번창한 시장이었다.

"빈 손으로 가는 자는 하나도 볼 수 없고, 모두 손에 주렁주렁 이것저것 들고 가는 자도 있고, 짐을 진 자도 있으며, 소에 잔뜩 실은 자도 있어, 방긋방긋 웃으며 불이 나게 나가는 모양'으로 흐뭇했던 이곳 배다리시장에서는 1919년 3월 6일 장날을 맞아 인천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옛 배다리(현 동구 금곡동과 창영동 일대)시장 풍경을 상세히 담은 이 글은 <배다리갈래> 책자에 실린 이희환씨의 글 중 일부이다.

작년 12월 25일, 배다리 곳곳을 소개하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한 책자 <배다리갈래>가 배다리 역사문화마을을 소개한 지도와 함께 발행됐다. 배다리를 찾는 이들이 쉽고 편하게 이 지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책과 지도이다.

책 편찬을 위해 동구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를 중심으로 이새롬·이성진·이종복·이희환씨가 '배다리 안내책자 편집위원회'를 꾸렸다. 지난 9일, 민운기 대표를 만나 책과 배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답사코스 네 개와 역사적 배경 소개

<배다리갈래> 책자 표지.
 <배다리갈래> 책자 표지.
ⓒ 스페이스 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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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마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그 분들에게 이 마을을 소개하고 정보를 제공하지 못해 안타까웠어요. 인터넷 글이나 각종 기사와 칼럼 등 배다리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정리가 안 돼 있었죠. 그걸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 책이에요."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에는 배다리가 탄생한 배경과 당시 주변 상황, 배다리가 겪은 역사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글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준다.

조봉암·이경성·배우 황정순·작곡가 최영섭 등 배다리가 배출한 각 분야의 걸출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활동한 모습을 담은 글에서는 배다리 지역이 인천의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배다리 답사코스를 네 부분으로 나눠 소개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배다리철교~책방삼거리' 코스에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배다리시장·여인숙골목·헌책방 거리와 사진공간 배다리·생활문화공간 달이네·'시가 있는 작은 책길' 아벨전시관 등이 포함돼 있다. 두 번째 '책방삼거리~금곡로' 코스는 옛 성냥공장 조선인천주식회사와 옛 간장공장 노다장유주식회사가 자리했던 곳과 동구청 동물넋 위로비·옛 종두연구소·동명학교 등을 잇는다.

세 번째 코스는 '책방삼거리~우각로' 코스로 옛 인천양조장 자리에 들어선 대안 미술활동 공간 '스페이스 빔'·배다리 마을 생태공원(지하 산업도로 예정부지)과 한점갤러리·뫼비우스-띠 갤러리·마을사진관 다행, 그리고 창영동 벽화골목과 주택과 골목길, 옛 꿀꿀이죽 골목을 두루 돌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우각로~책방삼거리' 코스는 옛 알렌별장 터&전도관 건물·옛 우각역 자리·한국철도 최초 기공지비가 세워진 곳을 연결한다.

배다리갈래에는 코스마다 장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담겨 있어, 이 책자를 들고 코스를 돌아보는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한때 사라질 뻔한 배다리

배다리 지도
 배다리 지도
ⓒ 스페이스 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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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다보면 배다리가 굴착기로 파헤쳐져 사라질 뻔한 사연도 만나게 된다. 2006년 무렵, 낙후한 구도심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이 지역에 대한 강제수용과 전면철거가 시작된 것이다. 인천시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내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배다리를 관통해 청라와 송도 신도시를 연결하는 산업도로 공사가 강행되면서, 오히려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 활동가, 시민사회는 한 데 뭉쳤다. 몇몇 주민들이 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탄원서를 제출해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던 차에, 구월동에서 미술공간 '스페이스 빔'을 운영하던 민 대표가 우연히 이곳 사연을 접했다.

"건설현장을 보니 지도에 자를 대고 청라와 송도를 직선으로 쭉 그은 모습이더군요. 아무리 도로와 속도, 도시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들이 멀쩡히 살고 있는 마을을 아무런 고려 없이 망가뜨릴 수 있는지… 납득이 안 됐어요."

문제의식을 느낀 민 대표는 '스페이스 빔'을 아예 현 위치로 옮겼다. 이후 산업도로 무효화 운동이 탄력을 받았고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등 새로운 차원의 운동이 전개됐다.

그 결과, 산업도로 공사는 중단됐다. 배다리도 당분간 존치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큰 위기를 넘겼지만 배다리의 미래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개인과 가족을 넘어 '동네'로 관심의 확장을

'배다리갈래'는 단순하게 보면 배다리를 소개하는 책자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론 '배다리 투쟁사'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 대표는 "이 책 한 권이 갖는 의미는 사실 특별할 게 없어요. 이곳을 관광지 둘러보듯 스치고 지나가기보다, 각 장소에 깃든 사연과 마을이 지향하는 가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죠. 배다리를 지키고 가꾸는 활동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텐데, 이 책도 그 활동 중 하나에요"라며 "다만, 관광지를 소개하는 정도로 활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지금 다른 지역에서도 마을 만들기 같은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해요. 주민들의 관심이 자신과 가족을 넘어 동네와 도시로 확장될 때 진정한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겠죠. 우리에게도 남은 과제에요"라고 말했다.

'배다리갈래' 책자에 소개된 내용은 배다리갈래 인터넷 카페(cafe.naver.com/welcometobaedari)에 모두 공개돼있다. 책자에 실리지 못한 많은 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다. 책자와 지도를 원한다면 '스페이스 빔'을 방문해 구입할 수 있다. 책 판매 수익은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활동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문의ㆍ032-422-8630)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배다리갈래, #배다리 소개 책자, #스페이스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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