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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분기 할머니 집 앞, 할머니를 소리쳐 부르는 정해창 목사.
 조분기 할머니 집 앞, 할머니를 소리쳐 부르는 정해창 목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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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시 소양동 주택가, 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 안, 한 낡은 대문 앞에서 춘천연탄은행 대표 정해창 목사가 조분기(81) 할머니를 애타게 부른다. 대문을 넘겨다 보며 소리쳐 부르는데도 좀처럼 대답이 없다. 문은 잠겨 있고,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고령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이 혹한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조분기 할머니 집 연탄 창고.
 조분기 할머니 집 연탄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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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할머니는 정 목사가 몇 번을 더 부르고 나서야 겨우 모습을 나타낸다. 청력이 약한 할머니가 방 안에서 방문을 꼭 닫고 있는 바람에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조 할머니는 정 목사를 보자마자 친자식이라도 찾아온 듯 반갑게 맞는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뒤 정 목사는 바로 할머니가 사는 방의 연탄광으로 향한다. 연탄광에는 다행이 연탄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조 할머니는 춘천연탄은행에서 연탄을 지원받는 수급자 중에 한 사람이다. 2004년 춘천연탄은행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연탄을 지원받아 생활하고 있다. 지금 할머니에게 연탄은행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다. 엄동설한에 추위를 견디게 해주고,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 정 목사를 맞이한 할머니 얼굴에서 시종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런 할머니에게 "연탄은행이 어떤 도움을 주고 있냐"고 묻자, 할머니는 대답 대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때 연탄광에 들어간 정 목사가 광 안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지붕이 왜 이렇게 내려앉았냐"고 묻는다. 천정에 덧댄 합판 한쪽이 축 처져 있다. 정 목사는 "다음에 연탄 배달 올 때 천정을 수리해야겠다"고 말한다. 연탄 배달에 창고 수리까지, 이 한겨울에 연탄은행이 떠맡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탄 수요는 느는데, 연탄은행 후원금은 줄어 걱정

정 목사가 춘천연탄은행을 연 것은 지난 2004년이다. 서울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 춘천으로 옮겨올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연탄 지게를 지고 연탄을 배달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양동 달동네를 다녀온 이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를 깨달았다.

춘천연탄은행 대표, 정해창 목사.
 춘천연탄은행 대표, 정해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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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곳에서 한겨울에 연탄 한 장이 없어 추위에 떠는 노인들을 발견했다. 그 노인들을 보고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 노인들에게 연탄은 때로 밥보다도 더 소중한 물건이었다. 밥은 한두 끼 굶을 수 있지만, 연탄이 없으면 하루를 버티기 힘든 게 그들이었다.

춘천연탄은행은 2004년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70만 장의 연탄을 배달했다. 10여 년째 춘천시 내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연탄은행에 후원금이 줄어 걱정이다. 지난 해 말 모금한 후원금이 예년에 비해 1/3로 줄었다. 현재 춘천연탄은행에서 필요로 하는 후원금은 1억5천여만 원이다.

이 돈은 춘천시 내 1천여 세대에 한 해 동안 30만 장의 연탄을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것도 많은 양이 아니다. 그래봐야 한 세대에 평균 300장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춘천연탄은행은 그 30만 장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지역 내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난방을 유지하며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도 후원금이 줄었다.

춘천연탄은행 창고.
 춘천연탄은행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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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금이 줄어든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정 목사는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고 때마침 선거철이어서 후원금이 줄어든 게 아닌가"라고 추측하고 있다. 연탄은행에 후원금이 줄어든 건 춘천시뿐만이 아니다. 올해 전국의 연탄은행들이 대부분 후원금이 줄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지역은 강원도다. 강원도는 연탄은행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후원금은 줄어드는데, 연탄은행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고령화에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난방비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탓이다. 그 바람에 정 목사의 시름도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정 목사는 "연탄은행 개원 초기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연탄은행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그 반대로 오히려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연탄은행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서정파 할머니 집, 텅 비다시피한 연탄 창고.
 서정파 할머니 집, 텅 비다시피한 연탄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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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목사와 함께 찾아간 또 다른 연탄 수급자 가정.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연탄광과 연탄보일러다. 그런데 연탄광을 본 정 목사가 깜짝 놀란다. 연탄광에 연탄이 겨우 다섯 장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하루나 이틀을 견딜 수 있을까 말까한 양이다. 정 목사는 연탄 수급자인 서정파(71) 할머니에게 대뜸 "아니 연탄이 겨우 이것밖에 남아 있지 않는데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서 할머니는 "자꾸 전화하기가 미안해서..."라며 말을 흐린다. 정 목사는 한숨을 내쉰다.

서 할머니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3, 4년 전부터 연탄은행의 도움을 받고 있다. 몸이 많이 아픈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나오는 정부 지원금으로 극한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비에서 할아버지 약값 같은 걸 빼고 나면 생활비로 남는 게 별로 없다. 이들 노부부에게 연탄은행이 없었다면, 겨울 추위를 견디는 건 물론이고 생계를 잇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연탄은행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정 목사 역시 이들에게 연탄을 배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연탄은행에 연탄이 비는 일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그렇다고 서 할머니의 연탄광처럼, 연탄은행에 늘 연탄이 가득 차 있는 것도 아니다. 후원금이 줄면, 자연히 연탄 공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정 목사는 연탄 배달이 끊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연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후원금이 적게 들어왔다고 해서 연탄 배달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 목사 생각에 연탄 수급자들과 한 약속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그들을 추위에 떨게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돈이 없을 땐,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외상으로 가져온다. 대금은 어떻게든 이후에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메운다는 계획이다. 오랫동안 거래해온 연탄공장 역시 정 목사의 뜻과 취지에 공감해 연탄은행에 계속 연탄을 공급하고 있다. 어쨌든 연탄 수급자들이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더 거둬 연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공급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생명'이나 다름이 없는 연탄 한 장

서정파 할머니 집 연탄보일러, 제 몸을 불사르며 활활 타오르는 연탄.
 서정파 할머니 집 연탄보일러, 제 몸을 불사르며 활활 타오르는 연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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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분기 할머니나 서정파 할머니처럼 춘천연탄은행으로부터 연탄을 지원받는 세대는 독거노인·한부모 가정·장애인 가정·다문화 가정 등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연탄은행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동사무소나 면사무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일단 연탄 수급자로 정해진 세대는 연탄은행으로부터 별다른 조건 없이 연탄을 제공받는다. 연탄이 떨어질 때가 돼서 연탄은행에 전화를 걸면, 바로 연탄이 배달된다.

연탄 공급 기간은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다. 배달은 연탄은행이 직접 한다. 연탄 배달은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화요일과 토요일 사이에 이뤄진다. 주중에는 연탄은행에서 고용한 2명의 직원과 함께 정 목사가 직접 배달을 하고, 주말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일반적인 연탄 판매 업소들이 달동네 등 고지대에 사는 가정에 연탄 배달을 꺼리는 것과는 달리 연탄은행은 연탄 수급자가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연탄 배달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원봉사자들은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해내고 있다.

매일 기록되는 '연탄요청현황'과 연탄수급자카드.
 매일 기록되는 '연탄요청현황'과 연탄수급자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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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춘천연탄은행의 경우 연탄 수급자들에게 공급하는 한 해 연탄 량이 무려 30만 장이다. 하지만 그 양이 결코 많은 게 아니다. 연탄은행은 지난해 날이 급격히 추워져 9월부터 연탄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올 겨울 추위는 비정상적으로 춥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연탄이 필요하다. 정 목사 말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춘천시에서만 한 해 80만 장의 연탄이 필요하다. 연탄은행이 공급하는 30만 장으로는 최소 세대에 최소의 열량을 공급할 뿐이라는 얘기다.

춘천시는 올해 들어 최저 기온이 영하 15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일과 5일 사이 3일 동안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졌고, 3일에는 영하 23도까지 떨어졌다. 서정파 할머니 집에서는 부엌 안에 있는 수도꼭지까지 얼어붙었다. 이런 날씨에 이들에게 연탄 한 장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끔찍하다. 500원짜리 연탄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지키는 소중한 불꽃이 될 수 있다. 그 불꽃은 500원이라는 금액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높은 가치를 가졌다.

정 목사는 "연탄은행은 행복을 저금하고 행복을 이자로 받아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그 은행에 저금액이 줄고 있다. 동시에 행복을 이자로 받아갈 수 있는 기회가 줄고 있다. 그 바람에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도 줄고 있다. 연탄은행에 후원이 절실하다.

춘천연탄은행 연탄창고 안, 연탄 배달에 필요한 다양한 종류의 도구들.
 춘천연탄은행 연탄창고 안, 연탄 배달에 필요한 다양한 종류의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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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춘천연탄은행, #정해창, #연탄은행, #연탄, #소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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