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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는 '지구 종말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여자친구는 '지구 종말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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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 한 주는 정말 길게만 느껴졌는데, 기대가 큰 만큼 아쉬움도 크기 마련이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기에 미련도 많이 남은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 대선과 더불어 지난주 내내 마음을 두었던 것은 12월 21일 종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일상을 포기할 정도의 두려움은 아니었지만, 식료품 등 생존 필수품들을 사놔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만약 지진이라도 일어난다면 집 근처의 편의점을 털어야 할까 하는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가벼운 걱정들로 관심을 두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전의 여러 종말론들과 달리 이번 종말론이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소한 일에도 겁이 많은 순진한 제 여자 친구 때문입니다.

제 여자 친구는 제법 심각하게 종말론을 받아들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일지 모르니 부모님과 꼭 함께 보내야 한다며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려 했고, 마지막 만찬을 하려는지 피자를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삶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두려움도 컸던 모양입니다. 지난 20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여느 연인들처럼 카톡을 나누었습니다.

"내일 정말 종말이 오면 어떡하지?"
"그런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말고 주무셔요."
"그래도... 자기야 내일 꼭 살아서 만나자~."

21일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다행스럽게도 눈이 하얗게 쌓여있을 뿐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별일 있었냐는 듯 하루의 일상도 너무나 평범하게 흘러갔고, 그날 밤에도 카톡으로 굿나잇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자기야. 잘자고 내일도 힘내."
"어. 덤으로 얻은 삶인데 열심히 살아야지!"

'종말론' 덕분에 깨달은 '삶'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책 겉표지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책 겉표지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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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얻은 삶이라... 최근에 우연히 접한 책 한권이 있습니다. 책 제목은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 생일날을 작은 원룸에서 혼자 외롭게 보내는 여자가 있습니다. 파견 직에 뚱뚱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한 마디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이라 스스로 단정 지어 버리는, 자살을 시도하려다 그럴 용기마저 없음에 좌절하고 마는 여인입니다. 그때 TV에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모습들이 나옵니다. 나는 이렇게 우울한데 세상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다 불연 듯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 딱 1년만 살자.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돈을 모아서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인생의 화려한 며칠을 보내고 후회 없이 삶을 마감하자.

그 후 1년간의 모습들이 책에 묘사됩니다. 목표가 생기니 그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일들을 도전하게 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삶이 변하기 시작하고 결국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그토록 꿈꾸던 환상적인 며칠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의 계획대로 삶을 마감하지는 않습니다. 1년간의 많은 변화들로 인해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을 봤기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킬 어떤 계기가 찾아오길 기대합니다. 로또 당첨으로 경제적 여유가 찾아오길 기대하기도 하고, 투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의가 구현되길 기대하기도 합니다. 여러 현자들의 책을 읽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계기를 만들려는 노력은 그리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막상 결심의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조금은 주춤거리며 수동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다렸다 하면서도 그 기회를 잡기가, 스스로 변화되기가 두렵기 때문인가 봅니다.

위에 언급한 책을 기분 좋게 읽었던 이유는 스스로 계기를 만들고 실행에 옮기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멋지고 부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 인생의 데드라인을 정해 놓았기에 오히려 더 큰 변화와 희망을 경험하게 되고, 자살까지 고민했으니 덤으로 얻은 1년이라 생각하면서 못할 것이 없다, 라는 생각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1년 후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서 또 다른 시작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 쉽게 흘려보내버리는 나의 하루와는 달리 말입니다.

2012년 12월 21일.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왔었다고 생각할까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매 하루가 덤으로 얻은 삶이라 생각하며 어제보다는 조금 더 평안하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루를 보내려 합니다.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설정한 그 주인공처럼 독하게 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스스로 계기를 만들고 오늘 하루도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려 애쓰는 여자 친구가 대견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살아남아줘서 고맙다고, 덤으로 얻은 삶 정말 열심히 재미나게 살아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태그:#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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