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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교수가 22일 광주 충장로 우체국을 찾아 프리허그를 진행했다. 사진은 프리허그 전, 현장을 찾은 시민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는 표 교수.
 표창원 교수가 22일 광주 충장로 우체국을 찾아 프리허그를 진행했다. 사진은 프리허그 전, 현장을 찾은 시민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는 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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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교수의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표 교수가 제시한 '사인 조건'인 <한겨레> 22일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표창원 교수의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표 교수가 제시한 '사인 조건'인 <한겨레> 22일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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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출신의 한 반공주의자가 '80년 5월'의 현장인 광주 충장로를 찾았다. 경찰 출신에 아직까진 경찰대 교수인 그가 광주 충장로 한복판에서 시위 때나 쓰던 확성기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5년 동안 불리지 못한, 나아가 앞으로 5년간 또 불리지 못할 수도 있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이 반공주의자를 보기 위해 광주 시민은 충장로 바닥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노래를 합창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가 대선 후 '프리허그'를 위해 22일 광주를 찾았다. 지난 20일 서울에서의 프리허그 이후 첫 나들이 지역으로 광주를 택한 것이다. 그는 지난 19일 트위터를 통해 "22일 투표율 1위 광주 갑니다. 민주화 성지 광주,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표 교수는 이날 광주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전국 최고의 투표율을 보인 광주, 이번 선거의 유일한 승자라고 생각한다"며 "광주와 광주 시민들을 존경하고 거기에 감사를 표하러 오늘 이 자리에 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노래 하나 부르죠. 님을 위한 행진곡 아시나요"라며 "목이 터져라, 가슴이 찢어져라, 모든 한과 슬픔, 실패에 대한 절망감 이런 거 모두 한꺼번에 날려 버릴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불러보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시민들의 합창을 유도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3000여 명의 시민은 표 교수를 따라 님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했다.

표 교수는 대선 정국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논란이 일자 경찰 수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며 경찰대 교수직 사직서를 낸 바 있다. 또한 국정원 논란과 관련해 권영진 당시 박근혜 캠프 전략조정단장과의 TV 토론을 벌여 지금껏 이슈가 되고 있다.

확성기를 들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표창원 교수. 표 교수는 22일 광주 충장로 우체국을 찾아 프리허그를 진행했다.
 확성기를 들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표창원 교수. 표 교수는 22일 광주 충장로 우체국을 찾아 프리허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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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게 아니라 이기고 있는 중...절망하지 말자"

"우리는 48%의 국민입니다. 결과로만 보면 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기고 있는 중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최초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게 1971년입니다. 당선된 해가 1997년이고요. 몇 년 걸렸죠? 26년 걸렸습니다. 지금 우리 5년 남았습니다. 5년 기다려야 한다고 한탄할 겁니까. 5년 길다고 주저앉을 겁니까. 5년 너무 길다고 절망할 겁니까."

표 교수는 이날 프리허그 전 발언을 통해 "절망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부터 여러분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딴 마음 먹지 않도록, 자기 혼자 잘 살겠다고 분열하고 서로 책임공방하고 권력투쟁하지 않도록 응원과 격려와 따끔한 질책을 보내십시오"라며 "이 백수 경상도 문딩이도 이렇게 여러분과 손을 잡고 나아갑니다. 우리 시민들은 절대 좌절하지 말고 절망하지 맙시다"고 외쳤다.

또한 "제가 안아드리려고 온 게 아니라 제가 안기려고 왔습니다"라며 "저도 마음이 아프고 상실감이 크고, 기댈 데가 필요했는데 광주의 시민들이 경상도 사람인 저를 반겨 주셔서 많이 치유가 됐습니다"라고 전했다.

표창원 교수가 한 시민과 포옹을 하고 있다.
 표창원 교수가 한 시민과 포옹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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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표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향해서도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단 (당선을) 축하드리고, 통합과 화합을 말했으니 무엇보다 해직 언론인들 복귀하는 데 힘을 쏟았으면 합니다"라며 "나는 감옥에 들어가도 좋으니 나꼼수·뉴스타파·고발뉴스 사람들, 밉겠지만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으며 합니다"라고 말했다.

힐링 필요한 광주...외부인 애정에 '환호'

표창원 교수가 아이를 안고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시민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표창원 교수가 아이를 안고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시민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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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 선거 직후, 대한민국은 국민 절반의 가슴이 뚫렸겠지만, 광주는 시민 대부분의 가슴이 뚫렸다. 92%의 표를 한 후보에게 던진 광주는 '지역감정'이란 개념어에 갇혀 외부로부터 각종 '면박'을 들어야 했다.

광주는 80년 5월 현장에서 피를 흘린 이는 물론, 그 주변에서 "어째야 쓰까"를 외쳐 본, 하다못해 '어째야 쓰까'란 생각이라도 해 본 이들이 사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사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지역감정이란 엉성하게 정제된 표준어로 표현될 리 없다.

그래서인지 이날 '외부인' 표창원이 광주를 찾자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라지만 광주 시민들은 서로가 그 슬픔을 나눌 내적 공간이 없었기에 무엇보다 외부인의 광주를 향한 따뜻한 시선에 감동했다. 프리허그 1시간 전인 3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 사람들은 약 300m의 줄을 만들었다. 곳곳에 '진짜 남자 표창원. 사랑합니다', '님이 있어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표창스타일', '한국의 CSI 표창원' 등의 피켓이 보이기도 했다.

표 교수가 등장하기 전부터 '표창원'을 연호하던 시민들은 그가 등장하자 더 큰 열기를 뿜었다. 표 교수는 경찰의 호위를 받고서야 겨우 충장로 우체국 앞에 올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중년 남성이 "표창원 교수는 광주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자 환호성이 터지기도 했다. 이날 약 3000명의 시민들이 표 교수를 보고 갔다.

표창원 교수가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한 학생과 '셀카 촬영'을 하고 있다.
 표창원 교수가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한 학생과 '셀카 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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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맨 앞에 줄을 선 박세영씨(40, 광주 광산구)는 "자리 못 잡을까봐 2시부터 (충장로에) 왔다"며 "토론에서 보여준 소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 오늘 이곳에 오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오늘자 <한겨레> 신문 구하려고 가판대 6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없더라"며 "포기하고 꽃이나 선물로 드리려고 꽃집에 갔는데 <한겨레> 한 부가 있어서 얻어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표 교수는 21일 트위터에 "22일 표창원 광주 프리허그 조건, 사인 원하시는 분은 제 인터뷰 기사 나온 <한겨레> 토요일자 사 가지고 오세요"라고 쓴 바 있다.

웃기도, 울기도...광주 뿐 아니라 전국 각지서 모여

표창원 교수의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님이 있어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진짜 남자 표창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표창원 교수의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님이 있어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진짜 남자 표창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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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많은 인파 때문에 프리허그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표 교수도 프리허그 하기 전에 "너무 많이 찾아주셔서 사진이나 사인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0.5초씩 포옹해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기네스 기록 세워봅시다"라고 말했다.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긴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가 표 교수와 1초도 안 되는 짧은 포옹을 할 수 있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모였던 터라 중간에 표 교수는 목을 축이며 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 약속을 '어겨가며' 사인을 해주고, 사진 촬영에도 적극 임했다.

프리허그 후 시민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띠는 시민들도, 포옹을 하자마자 눈물을 쏟은 시민들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인 강산해양은 "선거 끝나고 아빠가 너무 암담해 하셔서 슬펐다"며 "오늘 포옹을 하고 나니, 그냥 감동이 몰려온다"며 눈물을 흘렸다.

광주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날 충장로 우체국을 찾았다. 순천에서 온 정주환씨(51)는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는데 트위터를 보고 부랴부랴 광주에 올라왔다"며 "나는 지금까지 방관자로 살아왔는데 (표 교수가)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저런 마음을 먹는 것을 보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프리허그 소감을 말했다. 행사가 종료된 후 표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제주, 부산, 대구, 창원, 부천, 수원, 안양, 화성, 서울, 대전, 전주, 순천 일부러 와 주신 분들 너무 감사해요"라며 이날 열기를 전했다.

표창원 교수의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티셔츠에 사인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표창원 교수의 프리허그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티셔츠에 사인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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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교수의 프리허그는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더 진행돼 오후 6시 30분까지 진행됐다. 자리를 뜨며 그는 "10년 만에 광주에 왔는데 너무 감격스럽다"라며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 느껴져 찌릿찌릿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소중한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표창원, #광주, #프리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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