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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에서 목포로 가는 기차를 타는 여행자들.
 용산역에서 목포로 가는 기차를 타는 여행자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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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용산역 9시 20분, 아내와 나는 목포로 가는 KTX에 올랐습니다. 먼길을 여행할 때 나는 자동차보다는 기차를 선호합니다. 특히 요즈음처럼 눈이 내려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안전하고 여행의 묘미를 더해줍니다.

인터넷으로 표를 예약하고, 좌석을 배정 받고, 열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검표원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 기계화되어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 옛날 호남선 완행열차를 탔던 추억과는 영 느낌이 다릅니다.

KTX좌석
 KTX좌석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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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터넷으로 지정한 9호차 3D, 3C석에 앉았습니다. 기차가 용산역을 미끄러져 나가더니 한강을 지나 총알처럼 달려갑니다. 서울을 벗어나자 온 천지가 눈으로 덮인 설원이 나타납니다. 기차는 은색의 설원을 총알처럼 달려갑니다.

나는 잠시 여행을 떠나는 나그네가 되어 차창을 바라봅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 생각이 저절로 열립니다. 눈 덮인 논밭, 강, 벌판, 나무들, 가로수들이 번개처럼 지나갑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문득 어느 가수가 불렀던 노래 한 소절이 떠오릅니다.

차창에 비추이는 은빛 설경
 차창에 비추이는 은빛 설경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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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길'이란 표현이 참으로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은 끊임없는 항로를 따라 여행을 하게 되지요. 여행을 멈추는 순간 우리의 삶도 막을 내리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생은 마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용산역에서 기차를 탔지만 곧 목적지인 목포역에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기차는 타는 시점이 있으면 내리는 시점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기차여행과 인생길 여행에는 다른 점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기차는 왕복 차표를 발행합니다. 허지만 우리 인생은 왕복 차표가 없습니다. 원 웨이 티켓 밖에 없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물론 불교에서는 윤회를 통해서, 기독교에서는  부활을 통해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하지만, 그것을 눈으로 보지 못한 우리는 실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행의 종착지인 목포역에 내린 승객들
 여행의 종착지인 목포역에 내린 승객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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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야 합니다.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삶은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무덤 속처럼 말입니다. 또한 낯선 것을 두려워하고, 한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늙고 퇴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정착과 휴식의 가치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느 낯선 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의 연속입니다.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달 할 때가지의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이미 왕복 기차표가 발행되지 않는 인생길에 올라 와 있습니다. 좋은 싫든 우리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첫 여정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웁니다. 그리고 스승, 친구를 통해서 배우며 동행을 하기도 합니다.

은색의 벌판을 달려가는 기차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은색의 벌판을 달려가는 기차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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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항로를 결정하고, 짐을 싸고,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준비를 한 만큼 여행은 편해지며,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지나치게 너무 많이 준비를 하는 것도 짐을 무겁게 하고 여행을 더디게 할 경우도 있습니다.

지나치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더란 말이 있듯이, 낯선 곳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너무 많이 준비하고 계산하다보면 그만큼 새로운 모험, 설렘을 맛볼 기회를 잃게 되고 맙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이 정설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돌다리를 뛰어넘는 모험심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항로를 항해하면서 짐이 자꾸만 늘어납니다. 배우자, 자식, 부양가족, 재산, 번뇌, 병…. 끝없이 늘어나는 짐을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우리는 인생항로를 여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머리 속에 너무 많은 정보와 생각으로 가득 채우다 보면 머리가 몸과 다리보다 무거워져 나중에는 그만 주저앉게 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눈썹까지도 떼고 가는 여행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즉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목적지에 가볍게 도달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눈 덮인 만경평야에 쌓여 있는 곤포사일리지와 지평선
 눈 덮인 만경평야에 쌓여 있는 곤포사일리지와 지평선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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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달한 우리는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여행을 할 것인가? 관광을 할 것인가? 여행을 즐길 것인가? 쇼핑을 즐길 것인가? 관광을 선택하게 되면 그들은 배경을 등지게 됩니다. '남는 것은 사진이다!'란 생각만을 하고 배경을 등지고 사진을 찍기에 바쁩니다. 말하자면 허례허식으로 인생을 장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진정한 여행자는 여행지의 무대 속으로 정직하게 뛰어 들어가 함께 춤을 추고, 뒹굴며, 여행지의 문화와 삶을 만끽합니다. 여행이 곧 삶이 되는 것이지요. 반면에 쇼핑을 즐기는 자는 돌아올 때 무거워진 짐과 쇼핑으로 지불한 카드대금으로 큰 부담을 느끼게 되겠지요. 여행은 깃털처럼 가볍게 보고, 즐기고, 느끼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여행자는 여행을 준비하고,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목적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 속에 뛰어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보는 체험을 소중히 합니다. 여행 중에 만난 모든 찰나의 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담아오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참 묘미가 아닐까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을 길게, 그리고 보람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 되겠지요. 

KTX는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여행의 종착역인 목포역에 데려다 주는군요. 그 옛날 한때 완행열차로 12시간을 넘게 걸려 다녀야 했던 길인데, 불과 3시간대로 단축되어버렸군요. 문명의 이기는 이처럼 여행시간을 단축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시간 단축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완행열차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했던 추억은 이미 없습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저절로 생각이 열린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저절로 생각이 열린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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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리는 어디론가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은 삶을 떠나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삶의 현장에 뛰어들기 위하여 또 다른 삶 속으로 체험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땐 여행을 우리 여행을 떠나요. 여행을 떠나면 안 되는 일도 풀릴 때가 있습니다. 서양의 금언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We travel not to escape life, but for life not to escape us"
(우리는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서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서양 금언-)

다시 돌아올 기차표를 살 수 없는 인생길. 불안하지만 우리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삶이 우리에게서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여정을 소중히 여기며 여행을 떠나 보세요. 그러면 어떤 해결점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호남선종착역인 목포역에 표시한 이정표
 호남선종착역인 목포역에 표시한 이정표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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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종착역"

목포역에 도착하니 이런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우리의 여정은 목포역에서 끝이 나고 있습니다. 만약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차표를 살 수 없다면, 여러분은 그 한정된 여행시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격언이 있듯이, 어차피 우리네 여정이 피할 수 없는 여행이라면 최대한 그 찰나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 과정을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네 인생길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기차여행, #호남선, #목포역, #호남선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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