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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A)에서 등록을 한 후 보르네오 섬(B)으로 이사한 여성환씨는 투표를 하기 위해 다시 가족과 함께 자카르타(C)로 왕복 2400km를 여행했다.
▲ 산 넘고 물 건너고 바다 건너서 아프리카(A)에서 등록을 한 후 보르네오 섬(B)으로 이사한 여성환씨는 투표를 하기 위해 다시 가족과 함께 자카르타(C)로 왕복 2400km를 여행했다.
ⓒ 김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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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2389명이 등록하고 15만8235명이 투표했다. 무려 71.2%, 지난 총선의 투표자 수였던 5만6456명의 세 배에 육박하는 숫자다.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 빼앗겼던 재외국민의 참정권이 부활되고 치르는 첫 대통령 선거. 40년 만에 투표장으로 몰려드는 민심들의 숫자는 엄청났다.

대륙별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유럽. 2만4134명이 등록한 가운데 77.2%가 투표에 참여했다. 미주 역시 72.9%를 기록했다. 뉴욕은 1만1105명의 선거인 중 68%가 투표에 참여했고, 워싱턴DC의 미국대사관에는 5061명 중 71%가 투표에 참여했다.

특히 해외 한인 최대 거주 지역인 로스앤젤레스는 투표율이 79.64%를 기록했다. 1만196명이 등록한 가운데 무려8156명이 참가한 것이다. 지리상으로 1600km 이상 떨어진 뉴멕시코, 아리조나 등지의 한인들도 로스앤젤레스에서 투표를 해야 했던 점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산 넘고 물 건너고 바다 건너서

여성환 씨가 4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인증샷을 찍었다.
▲ 1200km를 날아 여승환 씨가 4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인증샷을 찍었다.
ⓒ 여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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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1200km 바다를 건너 자카르타로 투표하러 5살 된 딸과 3살, 4개월 된 아들 둘, 그리고 아내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여성환씨는 "이번만큼은 내가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은 후보가 있어서 투표를 꼭 해야겠다 생각했다. 보르네오 섬에는 10월에 이사왔는데, 유권자 등록은 전에 살던 나이지리아의 대사관에 가서 했다"고 말했다.

1987년 대선 당시 19살이었던 여성환씨는 1992년 유학으로 고국을 떠나 타향살이 20년 만에 난생 처음 대선에 한 표를 행사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단 두 표를 위해 다섯 식구를 이끌고 3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경비로 들여가며 여행을 해야 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외각 소재 스와스모어대학에 재학중인 박소라씨(21세)는 "차가 없어 기차를 타고 필라델피아까지 나가야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 걸려서 뉴욕에 도착해 투표를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지금 시험 기간이라 바빴지만 정말 설렜다"고 했다.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있으니 할 수 있는 게 투표밖에 없어서 정말 온 마음을 다해 도장을 찍었다. 투표가 전부는 아니지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돌아가고 싶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박소라씨)

토론회가 움직인 사람들

"투표하세요"라는 수화 동작으로 인증샷을 찍은 박소라씨
▲ 첫번 째 대통령 선거 "투표하세요"라는 수화 동작으로 인증샷을 찍은 박소라씨
ⓒ 박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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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투표장으로 향했다. 미국 뉴욕에서 부동산 회사에 다닌다는 알렉스씨는 "아침에 투표하고 회사 출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실은 TV토론 있기 전까지만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1차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토론을 보고 '아, 이거 되겠다 싶었다'며 마음을 바꿔 투표를 하러 나섰다고 했다.

첫 번째 방송 토론이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했다. 노인아파트에서 살지만 (여러 가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투표할 날만 손꼽았다는 배영국씨(은퇴)는 "지난 밤 토론을 보니 그냥 뒀다가는 종북 세력이 더 기승을 부리겠더라. 그런 공적인 자리에서 무례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며 "이번 선거 좌파가 되는 것도 싫고, 박정희 딸이 되는 것도 별로여서 기권할 생각이었는데, 토론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선진 한국이 보고 싶다"

과테말라에 살고 있는 정효나씨(화가)는 "과테말라는 정치적으로 아직 민주화가 완성되지 않은 나라다. 아직도 종업원을 부르면 '무엇을 명령하시겠습니까?'라고 대답하는 곳이다. 그런 나라에 살다보니 내 조국은 언제나 깨어있는 국민들이 사는 곳이라 것을 보여주고 싶어 투표에 참여했다"고 했다.

과테말라의 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정효나씨와 모친
▲ 엄마와 함께 과테말라의 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정효나씨와 모친
ⓒ 정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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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나씨는 "그런데 이곳의 <쁘렌사 리브레>라는 최대 규모의 일간지에서 '한국 독재자의 딸, 대통령 선거에 출마'라는 기사를 봤을 때 기분이 참담했다. 자랑스럽기만 했으면 좋을 우리 나라지만 경제, 기술 같은 것 말고 정치가 선진국이 나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며 자신은 이기적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미국 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피터 민씨(가명) 부부는 아들 둘과 투표를 위해 애틀란타 주까지 머나먼 여정에 나섰다. 중간에 다른 주에 사는 친구 집에 들러 그 친구들까지 차에 태우고 여정을 이어갔다. 선거가 축제인 것을 넘어서 재외국민들에겐 투표가 하나의 여행으로 자리잡는 것도 이제는 허황된 꿈이 아닌 셈이다.

"재외국민선거는 이제 젊은이들에게는 축제의 개념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우리 가족도 으스대며 인증샷을 찍고, 멀리서도 여행을 하면서 투표하러 왔다. 무겁지 않고 즐겁고 재밌고 결과가 기대되는 축제 같았다."(피터 민)

인구 3억 명이 살고 있는 미국 대륙에 한국인이 투표를 할 수 있는 곳은 단 여섯 군데. 지난 번과 달리 이메일 등록이 막판에 허용돼 등록은 하지만 투표를 안 할 사람들이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투표율은 70%를 거뜬히 넘었다. 각자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지출했을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예상 외의 선전이다. 71.2%라는 기록적인 투표율이 나온 이번 재외국민 선거가 한국 대선의 투표율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더보이스>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태그:#재외국민, #70%, #투표율,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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