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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족여행 숙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필리핀 가족여행 숙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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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부모님을 가끔 보면, 아직도 여행 중인 듯하다. 오늘처럼 눈이 쌓여서 녹지도 않을 정도로 추워서 온몸이 떨려올 때쯤이면 따뜻한 나라에 다녀온 기억이 더욱 생생한가 보다. 출근 준비로 바쁜 오늘 아침에도, 엄마는 밥상을 차려놓고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놓는다. 잔소리 끝에 "거기 온천 참 좋았는데…"라며 조용히 읊조리신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엄마와 공유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것만으로 내심 흐뭇한 미소가 배어 나온다. 여기서 엄마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온천은 필리핀 푸닝온천이다.

"안 그래도 더운데, 무슨 온천을 해?"

남편이 온천을 가자고 할 때만 해도 실없는 농담으로 들었다. 필리핀에 밤 비행기로 와서 하루를 자고, 첫 여행 코스로 잡은 곳이 푸닝온천이다. 수빅에 골프를 치러 왔던 남편은 가보지 않았지만 함께 왔던 지인들이 골프 대신 관광으로 택한 푸닝온천에 대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강추'를 외쳤다고 한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김이 펄펄 나는 온천물에 몸을 담글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화산재와 모래를 섞은 모래찜질도 한단다. 그야말로 이열치열. 온몸으로 이열치열을 체험하게 생겼다. 부모님은 '온천'이라는 말에 솔깃한 표정을 지으며, 눈이 반달모양으로 변했다.

10월 말인 필리핀은 겨울이지만, 약간 흐릴 뿐 기온은 한여름 장마가 올 것 같이 습하고 덥다. 아이들이 입고 왔던 겨울옷을 접어서 옷장에 넣고, 반바지와 민소매 옷을 챙겨 입혔다. 그냥, 밋밋하게 넘어가면 엄마가 아니지. 잔소리 양념이 뿌려진다.

"햇빛이 강하다. 긴소매 옷으로 입혀라."

낯선 기온과 환경이지만 낯익은 사람들과 함께 있기에 약간 안도감이 생긴다. 잔소리마저 안도로 느껴지니, 이것이 여행의 묘미인가? 늘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지만 오늘만큼은 기쁘게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 여행지가 아닌가.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엄마의 말씀은 언제나 실보다는 득이 많았다. 그것을 알지만 듣기 싫은 것은 듣기 싫은 것. 아직 오전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숙소 밖으로 나오니 피부가 탈 정도로 뜨겁다. '긴소매 입히기를 잘 한 듯하다'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푸닝온천,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한 이후 생겨난 노천 온천

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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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가는 푸닝온천은 1991년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한 이후 생겨난 노천 온천이다. 이 더운 나라에서 노천 온천을 하라니,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곳에서 온천을 하라고 해도 할까 말까 할 텐데….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마닐라 북쪽에 있는 푸닝은 우리 숙소가 있는 엥겔시티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간다. 전날, 한밤중에 도착하여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상상만 했던 필리핀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잘 포장된 도로를 지나 비포장 길로 들어서니, 현지인 마을이 보인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은 낯선 여행자의 차가 궁금한 듯, 연신 들여다보려고 애를 쓴다. 우리 뒤를 따라오는 차들도 제법 있는 것을 보니, 지나다니는 여행자도 많을 것 같은데…. 아이들은 지나갈 적마다 모여드나 보다.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보다. 그 모습이 참 천진하다.

아이들을 보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은가 보다. 부모님도 필리핀에는 아이들이 참 많다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손을 흔드는 부모님을 발견한 아이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열심히 손을 흔드는 아이를 보니, 나도 따라 손이 올라간다. 하지만 왠지 어색해서 차만 타면 잠을 자는 둘째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만다. 관광객이 되어, 에어컨이 잘 나오는 차 안에 앉자 손을 흔드는 내 모습이 왠지 낯설고 불편하다. 여행을 가면 관광객이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럴 때는 영락없는 관광객이 되는 것 같다.

아직 푸닝온천에 도착한 것 같지 않은데, 가이드가 차에서 내리라고 한다. 도착한 곳은 마치 잘 꾸며놓은 정원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이것도 푸닝온천 관광 코스 중 하나라고. 차창을 통해 봐온 현지 마을과 다르게 이질적인 이곳은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흰 테이블보가 덮힌 몇몇 테이블이 놓여 있다. 양꼬치와 필리핀식 소시지, 잡채처럼 생긴 필리핀식 면 등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 몇 가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필리핀 원주민 아이따이족, 관광지에서는 프로 사진 모델

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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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이 원주민 나름 프로다. 큰 아이가 사진을 찍자 기꺼이 배경이 되어 준다.
 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이 원주민 나름 프로다. 큰 아이가 사진을 찍자 기꺼이 배경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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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여유롭게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거의 반라 차림으로 화살을 쏘고 있는 키 작은 남자가 식당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필리핀 원주민 아이따이족이란다. 대개 사냥과 수렵으로 먹고 살지만, 관광지에서는 프로 사진 모델이다. 관광객과 사진을 찍고, 관광객이 주는 적은 팁으로 생계를 잇는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그 원주민이 맘에 드는지 졸졸 따라다니고, 큰아이는 조금 컸다고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다가가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는 원주민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는 신호를 보내자, 흔쾌히 포즈를 취해준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문짝도 없는 사륜구동 짚차로 갈아타고 가야 한단다. 지프니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니 모래사원처럼 보이는 곳에 차가 멈췄다. 밝은 회갈색 강물이 흐르는 곳, 낮은 강물이 흐르지만 화산재와 유황 냄새가 나는 듯하다. 모래사원처럼 보이는 곳에서 모래찜질을 하고 다시 짚차를 타고 화산지형으로 보이는 강물을 가로질러 30분 정도 더 내달렸다.

오지탐험대들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우리도 화산재와 회백색 화산 강물이 흐르는 곳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빠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말을 연신하시고, 엄마는 아이들이 다칠세라 꼼꼼히 챙겼다. 차 문짝도 없는 사륜구동 짚차에 매달려서 화산재를 가르며 달려가는 것은 그야말로 스릴이 넘쳤다. 큰아이도 낯선 풍경에 입을 벌리고 감상 중이다. 그렇게 30여 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곳은 푸닝온천. 계단식 노천 온천으로 자연 그대로 흐르는 온천 물을 막아서 탕을 만들어 놓았다.

부모님은 이곳을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꼽았다

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모래찜질하고 있는 모습
 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모래찜질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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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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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본 엄마는 천국이 따로 없다며 대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더운 날씨였지만, 뜨거운 온천에 들어갔다 나오니 날씨 더운 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탕을 찾아다니느라 푸닝온천 여기저기 다니니, 여기가 한국인가 필리핀인가 헷갈린다. 그러고보니 이곳을 찾아온 손님도 모두 한국인이다. 옆 탕에서 들려오는 말도 한국말이고, 우리끼리 하는 말도 한국말이다.

우리가 있는 장소만 필리핀이지, 모여 있는 사람들도 모두 한국 사람들만 있어서 오히려 실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부모님은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드시는지, 여기서만 며칠 묵어가면 안 되겠냐며 넌지시 물어보신다. 남편이 한 말에 한 번 더 놀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푸닝온천을 운영하는 사장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역시, 한국인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며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또 필리핀 직원들도 가끔 한국말을 쓴다.

어쨌든 부모님은 이곳을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꼽을 만큼 무척 만족하셨고, 아이들은 하루종일 물놀이를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짚차를 탈 수 있어서 좋아했다. 푸닝온천은 필리핀 돈 3000페소(각 8만5000원) 정도다.

필리핀 가족여행 푸닝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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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가족여행은 10월 30일(화)부터 11월 4일(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수빅, #푸닝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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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유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과 듬직한 큰아들, 귀요미 막내 아들... 남자 셋과 사는 줌마. 늘,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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