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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사퇴했다. 누구도 예상치못한 결과였다. 그는 기자회견문에서 "더이상 단일화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새 정치에 어긋나고 국민에게 더많은 상처를 드릴 뿐"이기에 자신이 양보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국민에게 한 단일화의 약속을 지키고자 사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고심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실제 안 후보는 기자회견문을 읽으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사퇴가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후보 단일화,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배반할 수 없는 속에서, 고심 끝에 나온 용단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분명 그것은 진심이라 믿는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의 '일방적 사퇴'로 인해 야권의 단일화는 결국 '이기는 단일화'가 아닌 '뺄셈의 단일화'가 되고만 점 역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진보진영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이 사태가 진보진영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단일화는 기본적으로 '역량'을 모으기 위한 정치행위이다. 특히 한국정치처럼 분단구조 아래 수구세력의 일방적 독주가 지속되고 그 역량이 진보진영을 훨씬 능가하는 속에서 '약체'인 진보진영이 대응할 수 있는 길은 단일화와 같은 '역량 모으기'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현대사 속에서 야권이 단일화를 추구한 것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이후 1987년 대통령 선거,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 단일화가 추구되었다. 1998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이루어진 이른바 DJP연합은 후보 단일화라 부르기는 어색하지만, 크게 보아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러한 '역량 모으기'는 절실히 요청되었다.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결코 박근혜 후보를 능가할 수 없는 속에서 후보 단일화는 필연적 요구였고, 경로였다. 하지만 야권의 단일화 논의는 기대와 달리 공전을 거듭했다. 어제는 사실상 단일화 논의의 '데드라인'으로 불리는 시점이었다. 무언가 잘 될 것 같으면서도 불안한 속에서, 결국 단일화는 양 후보의 '협상'의 결과물이 아닌 한 쪽의 일방적 사퇴로 종결되었다.

두 후보는 줄곧 '이기는 단일화'를 외쳐왔다. 그렇다. 아무리 후보 단일화를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 두 후보 '지지세력의 단일화'를 의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기는 단일화가 아니다. 그리고 지지세력의 단일화를 일구어내려면 반드시 두 후보 간 '협의'를 통한 결과 도출이 중요했다. 설혹 협의 과정에서 충돌을 빚고 공전사태를 거듭하더라도 그것을 인내할 필요가 있었다. 만일 양보를 할 것 같으면, 협상과정에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 될 일이었다. 실제 두 후보의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협의 과정에서 터져나온 불협화음은 제3자적 시각에서 볼 때 '메울 수 없는 괴리'의 정도로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안 후보는 협상을 포기한채 용단을 내려 본인이 사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어찌보면 '통 큰 양보'라 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의 결정은 문재인 후보측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실제 기자회견문에서도 그는 "비록 새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고 했다. 이는 문 후보 측에 대한 안 후보의 불만으로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물론 기자회견문에서 안 후보는 문 후보에 대한 국민적 성원 역시 당부했다. 하지만 단일화 협상 과정에 대한 '실망감'과 그로 인한 일방적 사퇴가 과연 안 후보를 지지하던 유권자들을 얼마만큼 문 후보로 향하게끔 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기본적으로 안 후보는 무소속 후보였고, 문 후보는 정당 후보였다. 그래서 안 후보는 '약자'이자 기성 정치에 대한 도전자로 비쳐지는 면이 있었다. 특히 안 후보를 지지하던 유권자들은 대체로 정당 정치에 회의를 품은 이들로 인식되는바, 정당 후보와 정치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품은 이들을 문 후보 지지로 이동시키려면 매우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양보를 위한 사퇴' 방식을 택했고, 이는 자칫 '힘을 더하는 단일화'가 아니라 '힘을 빼는 단일화'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지 우려스러운 것이다.

실제 안 후보의 사퇴 직후 문 후보 측의 반응은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한 번 생각해볼 점은, 과연 이번에 '이기는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단일후보가 된 측에서 '미안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라는 점이다. 오히려 "진심으로 감사하다", "우리 두 사람이 열심히 힘을 모아 박근혜에 맞서자"는 식의 용기를 북돋우는 언사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안 후보의 일방적 사퇴로 인한 단일화는 결과적으로 '미안한 단일화'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문 후보 측은 커다란 짐과 무거운 부채의식을 떠안게 된 셈이다. 문 후보가 '미안'해 하는 단일화를 안 후보 지지 입장을 지닌 유권자들이 납득하기에는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좀 더 시야를 넓게 보고 판단을 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우리는 이 책임을 안 후보나 혹은 문 후보에게만 물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진보진영 전체의 전략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간 진보진영에선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당위'를 둘러싼 논의는 많았지만 이를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 같다. 단일화 방식을 두고 양 후보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나 단체가 서로 협의해 단일화 방식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그것을 두 후보에게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었을텐데 그러한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단지 진보진영의 일부 분들이 단일화 방식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의견을 피력하는 수준이었다. 즉 단일화 과정을 그저 두 후보의 품성에만 맡겨둔 꼴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두 후보는 역사의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품의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분들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단일화 논의는 후보 뿐만이 아니라 후보의 진영(캠프)에 속한 사람들도 진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기는 단일화'를 도출해내기 위한 진보진영 전체의 통일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은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자기 성찰의 바탕 위에서 앞으로 두 후보와 진보진영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단 비록 단일화 자체는 '미안한 단일화'가 되고 말았을지라도, 앞으로 두 후보 간에 적극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고 서로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런 측면은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두 후보 진영이 적극적으로 상대를 보듬어 안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 나아가선 보다 체계적이고 시스템적으로 두 후보의 '화학적 결합'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진정한 '이기는 단일화'가 될 수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아직도 단일화 과정은 '진행 중'이라 말할 수 있다. 즉 야권의 단일화가 안 후보의 사퇴로 종결된 것은 결코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두 후보 진영 모두 이러한 인식과 자세를 가지고 남은 대선 국면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희망과 기대가 어느 순간 우리 곁에 현실로 나타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태그:#안철수 후보, #문재인 후보, #진보진영, #단일화,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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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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