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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30여 일 앞두고, 모든 후보가 입을 모아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를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에게 서민과 영세 상인들을 위한 '진정성'이 있다면, 어떤 전문가보다도 이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월드컵시장의 '건어물 상인 아저씨' 이성진(45·남)씨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서해성 작가가 공동 진행하는 오마이TV '2012 대선 올레!'는 지난 15일 정오 서울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앞에서 열린 홈플러스 입점 저지 집회를 생중계했다.

이날 집회에는 300여 명의 망원·월드컵시장 상인들이 모여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를 외쳤다. 홈플러스는 망원·월드컵시장 반경 2.3km 안에 이미 '홈플러스 월드컵점'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SSM·기업형 슈퍼마켓) 망원역점'이 있는데도, 시장에서 불과 670m 떨어진 곳에 '합정동 홈플러스'를 입점 시켜 상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시장 상인들은 지난 8월부터 입점 예정지 앞에서 24시간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11월 17일은 농성 100일째가 되는 날이다. 홈플러스는 지역 여론이 악화되자 개점을 잠정 연기한 상태다.

아내와 함께 망원동 월드컵시장에서 건어물과 각종 공산품을 파는 이성진씨는 세 자녀의 아버지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역점이 들어선 뒤 매출은 이미 약 20~30% 정도 감소했다고. 여기다 합정동에 홈플러스 대형 점포가 영업을 시작하면 직원 셋에 다섯 식구 모두 "무너질 것"이라는 긴박함 때문에 이성진씨의 싸움은 시작됐다.

온종일 오마이TV를 쫓아다녔던 나는 그의 사연을 '대선 올레!'가 포착한 '오늘의 민심'으로 선정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문답 중 일부를 정리한 것.

"아빠 힘내세요" 한마디에 홈플러스 입점 저지 확신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서해성 작가와 인터뷰 하고 있는 월드컵시장 상인 이성진씨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서해성 작가와 인터뷰 하고 있는 월드컵시장 상인 이성진씨
ⓒ 신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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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장사를 시작했나?
"원래는 체육관을 운영했는데, 자녀가 셋이다 보니 도저히 (생활비가) 답이 안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 내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장사를 하게 됐다. 한 4년 정도 됐다."

- 영업시간이 어떻게 되나?
"기상 시각은 오전 4시고,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사 와서 오전 6시에 (가게를) 오픈한다. 오후 11시에 (가게를) 닫고 집에 들어가면 보통 자정이나 오전 1시 이렇다."

- 보통 일이 아니다. 월급으로 치면 두 배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법정)근로시간이 보통 8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상인들은 노동 시간이 기본이 12시간·14시간이다. 저 같은 경우는 17~18시간이나 된다. 그렇게 우리 상인들이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데, (이런 곳에) 우리 생존권을 뺏기 위해서 대형마트가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억울하고 분통 터질 따름이다."

홈플러스 반대운동이 시작된 뒤 4시간 남짓이었던 이성진씨의 수면시간은 더욱 줄었다. 이성진씨는 "대책위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하면 홈플러스 입점을 저지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다가 오전 2시까지 회의가 계속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성진씨와 상인들은 '생존의 어려움에다가 정치적 무게까지 함께 짊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 자녀분들이 아빠가 이렇게 머리띠를 두르고 나서는 걸 아는지?
"아직 모를 겁니다. 가게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도,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버텼다. 우리 큰놈이 올해 대학 입학을 했는데 "아빠 힘내세요" 그런 말을 하더라. (덕분에) 저는 자신감을 가지고 끝까지 홈플러스를 저지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여기(집회)에 참가했다."

- 큰 따님이 대학에 가셨군요. 요즘은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다던데?
"저는 솔직히 사교육비는 별로... (보태지 못했고요) 스스로 그냥..."

사교육비 이야기가 나오자 이성진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대선 올레' 공동 진행자인 서해성 작가는 그의 '말줄임표'를 "체육관을 하다가, 자녀를 키울 수가 없으니까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과외는 못 시키겠더라'는 이야기"라고 정리했다. 이성진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선후보들, 지킬 수 있는 말만 하라"

지난 15일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집회현장
 지난 15일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집회현장
ⓒ 이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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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투가 서울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설이나 추석 때에는 고향에 가는지?
"지금은 거의 못 간다. 제수용품도 팔아야 하고... 전통시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명절에 고향에) 가시는 분들이 몇 안 되실 거다."

- 좀 더 잘 살아보자고 서울에 오셨을 테니, 명절엔 고향에 가서 자랑도 하고 싶으실 텐데.
"(그런 마음이) 간절하다. 너무나도... 얼마 전 추석에도 시골서 어머니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셔서 '우리 둘째 올해도 못 내려오냐'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머니 말씀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나더라."

부모님을 떠올리자 이성진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지켜보던 오연호 대표기자까지 눈물을 흘렸다. 전라북도 군산 출신이라는 이성진씨가 눈물 끝에 부모님께 전한 말은 "서울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벌어서 꼭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라는 씩씩한 다짐이었다.

그의 다짐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간 농성장을 다녀간 서울시장도, 마포구청 관계자도 뾰족한 수를 내지는 못했다. 전화를 통한 추가 인터뷰 당시 그는 "희망은 이번 대선 후보들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성진씨는 누구보다 '대선 이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표만 보고 하는 약속이 아니라 정말 서민들과 영세 상인들을 위한 것이라면, 대선에서 승리하든 아니든 자신이 한 번 내뱉은 약속은 꼭 지켜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대선후보들이 선거 이후에도 국민들 앞에 떳떳한 정치인으로 남고자 한다면, 부디 '오늘의 민심' 이성진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길 바란다.

"저는 밑바닥 생활을 하다 보니까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만 약속, 약속 하나만큼은 꼭 지켜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한테도 제가 항상 하는 얘기가,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약속을 했으면 죽는 한이 있어도 그걸 꼭 지키라'입니다. 그러니까 대선 후보들도 자기가 책임을 질 수 있는 말을 하고, 그렇지 않은 말은 아예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태그:#오마이TV대선스페셜, #대선올레, #망원월드컵시장, #합정동홈플러스,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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