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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展_Cleaning the Window of Our Soul
 이태경 展_Cleaning the Window of Our Soul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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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속에서 발견한 나

때로는 우리의 정체성이 낯선 땅에서 확연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나의 모습이 우연히 마주친 상대에게서 또렷하게 발견될 때 화들짝 놀라기 한다. 도대체 나로써 나를 찾지 못하는 모순이 타자를 통해 풀릴 때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를 불면케 했던 그 지긋지긋한 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 다시 일어서는 용기가 된다.

타자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이런 노력은 부질없어보일지라도 사실 돌파구가 될 수 있고 효율적이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태경 작가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아, 이 안도감이여!

그도 화실의 한 벽면에 300호 거대한 캔버스를 걸고 얼마나 오랫동안 절망했을지, 얼마나 초조해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때로는 사하라의 모래벌판 같았고 때로는 북극의 그 빙원 같았을 캔버스에 서서히 모래바람이 일고 눈보라가  휩쓸고 가면 마침내 모래알에 스크래치가 난, 작은 얼음조각에 무수히 실금이 간 나의 모습이 드러나고 마침내 나를 감쌌던 비웃음의 굴절에서 해방되는 쾌락을 맛보게 된다.

나를 탐색하면서 내 속에 큼직한 담석 같은 남이 있었고, 내가 아니었음이 다행스러운 그 타자 속에 내가 있음을 확인하고 두려워진다.

작가를 매료시킨 화가

이태경의 작품에 매료된 사람은 갤러리써니의 도예가 한희선 작가였다. 이태경의 초기 프랑스에서의 작업들에서 묘한 끌림을 느꼈다.

"그것은 정의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었어요. 그의 작품을 보자마자 내가 겪고 있는 비슷한 번민들을 이 작가가 껴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내가 흙작업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그 혼란들을 성공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작가에게 써니갤러리에서 전시를 종용했지요. 하지만 그는 너무 오랜 시간 프랑스에서 서양 사람들이 그의 캔버스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인으로 대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수시로 작업을 중단되고……. 아무튼 시간이 걸렸지만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2가지를 제의했었어요. 그 작품의 성격상 큰 작품이면 좋겠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300호짜리가 3작품이나 되었어요. 다른 하나는 드로잉이었습니다. 그는 유화로만 작업하지만 드로잉만으로도 충분한 임팩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초대전에서 우리는 유화가 아닌 것을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태경의 드로잉
 이태경의 드로잉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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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참 행복한 화가가 아닌가 싶다. 이렇듯 다른 장르의 작가가 동질감을 느끼고 그 작가 혼을 이렇듯 몰아주니 말이다.

나를 찾아가는 미로

그는 파리 국립 고등 미술 학교(ENSB-A ; 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재학 중에 예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에 집착하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동양인 유학생이 겪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방황에 돌파구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바로 그의 스승이었다.

"사람을 그려보면 어때?"

이태경의 방황을 지켜본 스승의 이 한 마디는 그가 캔버스를 마주하는 자세와 방식에 대한 카타르시스로 작용했다.

그리는 행위가 자기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반대로 그 문제를 재료로 이용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동안 그가 앓고 있던 문제에 대한 올바른 처방이 나오니 상태가 호전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런 깨달음은 그의 초상화에서 타자에서 자아를, 자아에서 또 다른 자아를 끊임없이 발견해내는 미로를 탐사하는 여정이 되었다.

그의 초상화는 타자에서 자아를 발견코자하는 미로여행이다.
 그의 초상화는 타자에서 자아를 발견코자하는 미로여행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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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의 초상화 앞에 서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결국 스스로를 정의하고 싶은 그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동서양의 현자들이 그것을 말했지만 그것은 오직 코끼리의 발등을 더듬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다시 그 정의에 시도하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용기를 그의 그림속 모호한 형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써니갤러리'의 '이태경 展_Cleaning the Window of Our Soul'에서 자신의 등신(等身)보다 큰 300호의 자신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위압이 나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리고 있던 장막을 찢고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의 '실존'를 외칠 수 있는 용기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의 스푸마토(sfumato)는 세상과의 유리(遊離)가 아니라 일체(一體)이다.

이태경 초대展_Cleaning the Window of Our Soul

-장소 | 헤이리 써니갤러리
-기간 | 2012. 10. 27 _ 11. 25.
-문의 | 031-949-9632 www.sunnygalle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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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이태경, #써니갤러리, #헤이리, #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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