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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기성 정치의 괴리를 다시 느꼈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것인가? 국회의원 위에 군림하는 중앙당을 그대로 두자는 건가. 공천헌금 비리구조를 양산하는 상황을 유지하자는 건가?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도 국회도 정당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상화 하자."

24일 나온 무소속 대선후보 안철수 캠프 유민영 대변인의 브리핑 일부다. 전날 안 후보가 발표한 3대 정치쇄신안(국회의원 수와 정당보조금 축소·중앙당 폐지)에 대해 정치권과 학계가 거세게 반발한 데 대해 유 대변인은 강하게 반박했다. 반발은 예상했고, 앞으로도 잘못된 관습에는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득권의 반발은 예상했던 일"이라며 "기득권과 잘못된 관습에 맞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 대변인은 "이 상황은 기성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정한 평가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며 "쇄신과 혁신으로 국민의 기대에, 분노에 응답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유 대변인은 또 "지금 이때가 모두 기득권, 특권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해야 될 시기"라며 "안 후보는 여러 번에 걸쳐 제왕적 대통령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했고, 국회의 정상적인 권한을 존중하겠다고 밝혀왔다, 앞으로도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어떤 모색과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맞서 나가겠다"고 주장했다.

전날 발표된 안 후보의 정치쇄신안에 반정치적인 요소가 많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캠프 내부의 방어 논리가 작동한 탓일까. 유 대변인의 발언만 놓고 보면 정치권과 학계에서 그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감수하고 추진하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맹폭에도 "의연하게 맞서 나가겠다"는 안철수 후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안철수 캠프에서 정책 비전 발표회를 열고 정치혁신을 비롯한 7개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안철수 캠프에서 정책 비전 발표회를 열고 정치혁신을 비롯한 7개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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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철수 캠프의 이 같은 태도와 달리 정치학자들은 현실정치를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인식에 기반한 태도라는 비판이 거세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내건 정치쇄신안보다 더 진일보한 내용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일부 정치학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듣기엔 시원한 소리지만 잘했다는 말은 도무지 안 나온다. 정치학자 다수가 비슷한 생각일 텐데, 안철수의 혁신안은 현실정치를 고려하지 않은 안이다. 한국 정치발전과 제도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현실정치에 대한 책임성이 결여된 태도라서 더욱 우려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의 말이다. 강 교수는 24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전날 안철수 후보가 던진 3대 정치쇄신안(국회의원 수와 정당보조금 축소·중앙당 폐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안철수 캠프에 진보 성향의 정치학자들이 꽤 포진돼 있어 내심 민주당 문재인 후보보다는 더 진일보한 정치쇄신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상반되는 현실성 없는 안이 나와 매우 당황했다"고 말했다.

평소 지역구 의석보다는 정책 활동을 주로 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 의석의 전면 개편을 주장했던 학자들의 안도 전혀 눈에 안 들어와 놀랐다는 거다. 무엇보다 중앙당 폐지 같은 공약을 걸면,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정당과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사실 통치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안철수표 정치쇄신안은) 한 마디로 아마추어구나라는 느낌밖에 안 든다"며 "예상보다 너무 형편없어 집권 이후 오히려 더 걱정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아무래도 안철수 캠프 내부의 소통구조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현실정치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포퓰리즘적인 접근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강 교수와 마찬가지로 진보성향의 정치학자들과 민주당에 결합한 학자들은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안 후보에 대해 대놓고 공격할 수는 없지만, 속으로는 말도 안 되는 안을 혁신안이랍시고 내놓았다면서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전하고 있다.

박상훈 대표 "3대 쇄신안 고수? 일부 그룹 이탈할텐데..."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너무나 많이 합리적인 정치이성에서 벗어났다"며 "빨리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잘못됐던 것 같다면서 수정안을 내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박 대표는 이어 "만약 안철수 캠프가 자신들이 내건 정치쇄신안이 옳은 길이라고 강조한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 닥칠 것"이라며 "본인과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정치인들마저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안철수 후보가 내건 정치쇄신안은 진보는커녕 평범한 정치학자들도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일 것"이라면서 "본인의 말과 행동에서 뭐가 민주주의이고 뭐가 개혁인지 헷갈리고 뒤죽박죽이 돼서는 곤란하지 않나"라고 충고했다.

박 대표는 "공기업이 방만하다고 해서 당장 민영화 할 수 없는 것처럼 실효성이 없는 예산이라고 당장 감세를 단행할 수 없는 것처럼 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따라야 한다"며 "정치가 문제라고 정치를 없애거나 줄이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좋든 나쁘든 정치는 인민주권 위에 서 있는 것인데 국민들로부터 아무런 권한도 위임 받지 못한 사람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로 정치를 계도하려 들고 명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상도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 대표는 "만약 안철수 캠프 사람들이 이 잘못된 안을 계속 밀고가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사건"이라며 "현실적이지 못하고 합리성도 부족한 졸속의 결과를 갖고 자꾸 여론에 편승해 반정치를 극대화하려는 태도는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만약 이 안을 계속 추진하면 우리부터 그 캠프에 들어간 정치학자들을 향해 지금 안철수가 하려는 정치가 신자유주의냐고 비판을 할 것이고 그런 공격이 가해지면 일부 그룹이 이탈하고 그것은 타격이 굉장히 클 텐데 과연 안철수 캠프가 그것까지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정해구 교수 "안철수의 3대 쇄신안은 반정치적인 인기영합"

문재인캠프 새정치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정해구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 역시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 교수는 안 후보가 내건 3대 쇄신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첫째 국회의원 숫자 문제다. 그는 "국회의원 숫자를 200명 정도로 해서 100명 정도 줄이는 안을 내면서 미국과 일본의 예를 들었는데 OECD 국가 중 두 나라가 인구가 많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1인당 인구비례 숫자가 가장 많다"면서 "유럽 다수 국가들은 인구대비 국회의원 숫자가 적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 교수는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면서 "국회의 합의를 거쳐 처리가 돼야 하는데 무려 100명을 축소하는 안이 쉽게 결정이 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특히 정 교수는 "국회의원 300명으로도 거대한 행정부 감시와 견제가 쉽지 않아서 사실 국정감사 등에서도 국회의원들이 잘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많을 텐데 그마저 100명이 축소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공적 통제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치를 죽이면 시장 등 사회의 다른 기득권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국민의 이름으로 선출된 정치가 권한을 갖고 공적으로 행정부와 기득권을 통제해야 하는데 안 후보의 안은 지나치게 반정치적인 인기영합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그는 국회의원 숫자를 줄여 복지에 돈을 쓰자고 한 주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국회의원 1명이 제대로 된 감시만 잘 해도 예산 500억~1천억원을 절약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국회의원 100명 줄여 1천억원으로 복지에 쓰자는 발상은 정말 정치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총론에 있어 정당보조금 축소 문제는 일리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유럽은 당비와 국고보조금 기부금 형태로 당이 운영되는데 전반적인 추세는 역시 당비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한국은 당비가 거의 없고 국가가 지원하는 시스템인데 만약 이 시스템이 없어지면 정치인이 재벌이나 기업에 손을 벌리게 된다, 차라리 국고보조를 해주고 철저하게 감시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정치인들이 돈을 재벌로부터 받게 된다면 정경유착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중앙당 폐지 문제는 전형적인 미국식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중앙당을 없애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민사회에 뿌리 받은 풀뿌리 시민조직을 통해 정당의 팔 다리를 잘 만드는 게 정당개혁의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아마도 국회의원 축소 등의 쇄신안은 정치학자 99%가 반대할 것"이라며 "안 후보가 이 점을 책임져야 할텐데 어떻게 하려고 할지 매우 곤혹스럽다"고 우려했다. 이어서 그는 "정상적인 정치학자들이 내릴 수 있는 결정 같지는 않다"며 "국민이 정치를 싫어하니국회를 없애라는 식이면 그것은 상당한 포퓰리즘이 아니고 무엇이겠나"라고 개탄했다.

이 같은 반박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자 안철수 캠프에서는 "다 결정된 것은 아니고 큰 맥락 속의 얘기가 체계적으로 전달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지속적인 토론의 과정을 통해 보다 성숙한 안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호기 안철수캠프 정치혁신포럼 대표는 24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싸우지 말라, 나눠먹지 말라, 기득권을 포기하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맥락에서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에 대해 충분히 토론할 수 있다"며 "국민과 전문가가가 만나 정치쇄신안을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여야 하는 것이지 정답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안철수, #정해구, #박상훈, #강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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