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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9일 오전 9시 20분]

화암사 가는 길. 나무로 된 이정표가 이채롭다.
 화암사 가는 길. 나무로 된 이정표가 이채롭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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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곱게 늙은 절집>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큰 절집이 아닌 암자나 작은 절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 책에서 첫 번째로 소개한 절집이 불명산 화암사다. 작가는 화암사를 소개하면서 부제목으로 '하늘이 천장이고 천장이 하늘이다'라고 하였다. 대체 어떤 절집이기에 이런 표현을 했을까 궁금했다.

그 절집은 전라북도 완주에 있다. 그날 이후로 화암사는 내 마음 속에서 꼭 가봐야 할 절집이 되었다. 그러나 절집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공간적 거리도 있었지만 마음에 둔 거리도 있었다. 완주를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화암사는 정말 가고 싶을 때 가려고 마음속에 간직하고만 있었다. 사실 그 절집은 혼자 가고 싶었다.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곳에 세운 화암사

완주 화암사를 찾아간다. 완주 나들목을 나와 4차선 도로를 가다 길이 좁아지고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주변 산세로 보아 유명한 절집이 있기에는 조금 아쉬운 산세다. 작은 이정표가 눈에 띄고, 마을 골목 같은 길로 들어가면 시골길을 만난다. 화암사로 가는 시멘트포장도로는 차를 만나면 서로 민망할 정도로 좁다. 불안한 마음으로 한참을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이래야 그냥 터만 넓혀 놓은 곳이다.

주차장에서부터 산길로 이어진다. 입구에는 나무로 된 화암사 안내판이 있다. 화암사 연혁과 전설을 적어 놓았다.

옛날 임금님의 딸 연화공주가 원인모를 병에 걸렸는데, 어느 날 임금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조그마한 꽃잎 하나를 던져주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임금님은 사방을 수소문해서 불명산 깊은 산봉우리에서 그 꽃을 찾았는데 바위에 핀 복수초였다.

신하들을 시켜 이 연꽃을 가져오게 했는데 연못 속에서 용 한 마리가 나타나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다른 신하들은 도망가고 용감한 신하 한 명이 꽃을 꺾어서 돌아왔다. 꽃을 먹게 된 공주는 병이 깨끗이 나았고, 임금님은 부처님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이곳에 절을 지었는데 화암사(花巖寺)라고 불렀다.

계곡을 따라가면 하늘 아래 절집이 있다. 전설에 나온 것처럼 커다란 바위 위에 자리잡았다.
 계곡을 따라가면 하늘 아래 절집이 있다. 전설에 나온 것처럼 커다란 바위 위에 자리잡았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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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1572년, 선조 5년)에 세워진 <화암사중창비문>에는 신라시대 때 원효·의상 스님의 수행처로 알려져 있고, 사찰 동쪽과 남쪽 고개에 원효대와 의상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절터만 남은 이곳에 성달생(成達生)이 세종 7년(1425)에 와서 화암사를 중창하였다. 지금 있는 이 절집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은 것이란다.

화암사 가는 길,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화암사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숲으로 난 길이다. 시원한 물소리를 벗 삼아 터벅터벅 걷는다. 작은 계곡이지만 주변은 깊은 산속이다. 계곡을 따라 걸어가다 다리를 만나면 계곡을 건넌다. 길이라고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길이 없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다가서면 다시 길이 이어진다. 바위벼랑이 협곡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른다. 물이 닿지 않은 곳을 조심히 밟아 가면 길이 된다.

화암사 가는 길. 계곡을 따라 가는 데 길이래야 따로 없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을 밟아가면 길이 된다.
 화암사 가는 길. 계곡을 따라 가는 데 길이래야 따로 없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을 밟아가면 길이 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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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고 협곡을 지나기를 몇 번 하면 커다란 철계단이 나온다. 계곡 위를 관통하는 철계단은 문명의 힘으로 자연을 제압하듯 당당하게 서있다. 잠시 멈춰 생각에 잠긴다. '그래! 좋은 생각만 하자.' 철계단은 최근에 만들었겠지만 예전에는 어디로 올랐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계곡 위로 녹슨 난간이 살짝 보인다. 그렇다고 옛길을 걷고 싶은 생각은 없다.

철계간 중간에는 마음에 담았던 시가 걸려 있다. 안도현 시인이 쓴 <내사랑, 화암사>다. 철계단을 다 오르면 작은 폭포가 나름 웅장한 척하면서 반긴다. 폭포를 지나 고개를 들면 절집이 나타난다. 와! 이곳에 절집이 숨겨져 있다니. 하늘 아래 절집 지붕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근데 정말 수수하다. 절로 들어가는 일주문이 따로 없다. 통나무 몇 개 붙여 놓은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절집 영역으로 들어선다. 처음 만난 누각에는 불명산화암사라는 현판이 붙었다. 단청이 없는 말쑥한 누각. 그 옆으로 돌계단이 있고 문이 있다. 보통 누각이 있으면 그 아래를 통해 들어서는데, 화암사는 우화루 누각 아래를 일부러 막아 버렸다고도 한다.

건축가가 마술을 부린 절집

절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정말 소박하다.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대문에는 시주자 명단을 적었다. 문을 들어서니 한옥 같은 정겨운 느낌이 드는 절집이다. 마당이 있고, 행랑채와 안채가 잘 어우러진 보통 민가와 같은 구조다. ㅁ자 구조로 극락전이 정면에 있고, 맞은편에 우화루, 양 옆으로 적묵당과 요사가 있다.

화암사로 들어가는 문. 우화루 옆에 돌계단 위로 작은 문이 있는데, 보통 집으로 들어가는 정도의 문이다.
 화암사로 들어가는 문. 우화루 옆에 돌계단 위로 작은 문이 있는데, 보통 집으로 들어가는 정도의 문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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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으로 들어서면 절집에 하늘이 있다. <곱게 늙은 절집>을 쓴 심인보는 "하늘이 천장이고 천장이 하늘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문으로 들어서면 절집에 하늘이 있다. <곱게 늙은 절집>을 쓴 심인보는 "하늘이 천장이고 천장이 하늘이다"라고 표현하였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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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묵당과 극락전. 적묵당 마루는 앉아있기에 편안하다. 극락전과 우화루 사이로 하늘이 열려 있다.
 적묵당과 극락전. 적묵당 마루는 앉아있기에 편안하다. 극락전과 우화루 사이로 하늘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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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묵당 마루가 앉았다 가라고 반긴다. 낮은 마루에 앉아서 올라오느라 힘든 몸을 쉰다. 불명산 자락과 하늘이 어울려 여유롭다. 잘 늙은 절집 기둥에 기댄 채 마음을 놓는다. 아늑하다. 좁은 공간에 절집을 지으면서 답답함을 줄이려고 극락전, 적묵당, 우화루는 처마를 붙여서 지으면서 요사인 불명당은 규모가 작은 건물로 양 옆을 터놓았다.

우화루로 향한다. 광해군 3년(1611)에 세워진 우화루(보물 제662호)는 작은 절집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큰 누각이다. 누각에는 많은 글씨가 있다. 건물의 내력이나 필요에 의해 적은 글씨라기보다는 낙서에 가깝다. 한글로 된 글씨도 눈에 띈다. 누군가 시를 적어 놓았는데 잘 읽을 수가 없어 감동은 오지 않는다. 네 귀퉁이에 벽화가 잘 그려졌는데 오랜 세월 버티느라 많이 훼손이 되었다. 그래도 생생한 표정이 그대로 살아있다.

우화루에서 본 극락전. 적묵당 처마가 극락전 처마 밑으로 파고 들었다.
 우화루에서 본 극락전. 적묵당 처마가 극락전 처마 밑으로 파고 들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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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루와 맞닫은 적묵당 처마. 별개의 처마를 가졌다.
 우화루와 맞닫은 적묵당 처마. 별개의 처마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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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면 적묵당과 우화루 지붕이 붙었다. 별개의 건물을 하나로 만들었다.
 위에서 보면 적묵당과 우화루 지붕이 붙었다. 별개의 건물을 하나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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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루 지붕과 적묵당 지붕이 붙었다. 분명 아래서 봤을 때는 별도의 처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건너편에서 보면 한 건물로 되어 있다. 좁은 절집에 사이좋게 처마를 대고 요령껏 지은 절집이다. 건축한 사람이 마술을 부린 것만 같다.

국내 유일한 건축구조, 누군가와 다시 오고 싶은 절집

극락전 현판도 하나가 아니라 글자마다 하나씩 써서 세 개로 나눠 놨다. 마치 나무가 부족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면 크게 보이려고 일부러 나누어 놨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조선 선조 38년(1605)에 지은 극락전(국보 제316호) 처마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그 유명한 하앙식 구조라고 한다.

'하앙(下昻)'은 일종의 겹서까래로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목재인데,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놓여 있다. 이것은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고르게 받친다. 극락전 앞쪽 하앙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나, 건물 뒤쪽 하앙은 꾸밈없이 뾰족하게 다듬었다. 하앙식 구조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많이 볼 수 있지만 한국에는 이 건물뿐이므로 목조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극락전 하앙. 겹서까래 구조로 우리나라 유일한 건축양식이다.
 극락전 하앙. 겹서까래 구조로 우리나라 유일한 건축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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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현판과 주악상. 하앙 사이로 나무판을 대고 주악상을 그려 놓았다.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극락전 현판과 주악상. 하앙 사이로 나무판을 대고 주악상을 그려 놓았다.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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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하앙 사이에는 판으로 덮고 주악상을 그려 놓았다. 그림은 탈락이 많이 되었지만 아직도 생동감이 넘친다. 표정이 살아 있다. 내부로 들어서니 아미타삼존불이 있고 닫집이 웅장하다. 용 두 마리가 힘차게 꿈틀거리고, 비천상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극락세계가 이곳이 아닌가 싶다.

다시 적묵당 마루에 앉았다.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방이 갇힌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화암사를 노래한 안도현 시인은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라고 표현을 했다. 나는 누군가와 다시 오고 싶은 절이다. 누구랑 올까?

花巖寺, 내사랑
                                            - 안도현 -
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나오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였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덧붙이는 글 | 화암사 가는 길

승용차 이용 : 남쪽에서 올라올 때는 완주IC로 나와서 17번 국도 타고 가다가 도로표지판을 보고 찾아가면 됨(큰 도로에서 빠져나가는 길 이정표가 아주 작음)/북쪽에서 내려올 때는 서대전IC로 나와서 찾아가야 하는데 화암사 이정표가 따로 없음(내비게이션 필수)

시내버스 이용(갈아타야 함) : 전주에서 완주 고산가는 시내버스이용/고산터미널에서 화암사 가는 버스 06:10, 08:50, 13:20, 17:30, 19:10, 화암사에서 고산터미널 가는 버스 06:35, 09:10, 10:35, 17:50, 19:30



태그:#화암사, #극락전, #잘 늙은 절, #안도현,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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