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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경기도 양평 팔당두무머리에서 마지막 생명평화 미사가 열렸다. 농민들이 3년 동안 미사터에 세워진 십자가 나무를 옮기고 있다.
 3일 오후 경기도 양평 팔당두무머리에서 마지막 생명평화 미사가 열렸다. 농민들이 3년 동안 미사터에 세워진 십자가 나무를 옮기고 있다.
ⓒ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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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십자가를 옮기려고 땅을 팠다. 버드나무를 잘라 만든 십자가는 지난 930일 동안 뿌리를 내렸다. 계절이 14번이나 바뀌는 사이 새 줄기가 뻗고 푸른 잎이 돋아났다. "뿌리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며 농민들이 십자가의 뿌리 주변 흙까지 조심스럽게 옮기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는 신부들은 성호를 그었고 생명평화 미사를 3년 동안 지켜준 십자가는 그렇게 그 땅을 떠났다.

3일 오후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유기농단지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생명평화 미사가 경기도 양평 팔당두물머리 강변에서 진행됐다. 생명평화미사는 지난 2010년 2월 17일부터 매일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이어졌다. 전국집중미사 때는 신도들과 시민 수천 명이 유기농 단지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몹시 덥거나 추운 날에는 2, 3명뿐이기도 했지만,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팔당유기농단지는 이명박 정부의 최대 숙원인 4대강 사업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져 왔다. 자전거도로와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던 두물머리는 국내 유기농업이 시작된 곳이다. 이곳에 농민들은 2012년 연말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하천점용허가를 가지고 있었고 그때까지 계속 농사를 짓길 원했다. 유기농의 역사를 지키고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정부는 곧바로 농민들을 몰아세웠다. 정부가 공사를 강제로 진행하려 하자 농민들은 몸으로 막아섰고 수차례 연행되기도 했다. 유기농이 하천을 오염시킨다는 정부의 주장은 친환경적 농법으로 자부심을 가졌던 농민들에게는 씻기 어려운 상처가 됐다. 농민들의 농사지을 수 있는 권리와 국가사업에 가치 비중을 놓고 재판도 벌여야 했다. 지쳐갈 때 즈음 종교인들이 그들을 찾아왔다. 천주교 사제들은 강변에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를 시작했다.

"생명평화미사는 계속돼야 한다"

3일 오후 경기도 양평 팔당두물머리에서 마지막 생명평화 미사가 열렸다.
 3일 오후 경기도 양평 팔당두물머리에서 마지막 생명평화 미사가 열렸다.
ⓒ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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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번째 생명평화미사에는 전국에서 모인 신도들과 시민 300여 명이 참석했다. 팔당유기농단지를 지키기 위한 오랜 투쟁을 마무리하는 이날 미사는 잔치분위기였다. 시민들이 가져온 떡과 간식들이 차려졌고, 마지막까지 남은 4개 농가의 농민들도 계속 웃음을 보이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애초 원했던 농사를 계속 할 수는 없지만 4대강 공사를 밀어붙인 정부에 맞서 이곳의 생명의 가치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그들에게 있었다.

이날 미사를 끝으로 '두물머리 십자나무'는 인근 서종면 문호리에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십자가 나무처럼 농민들도 이제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지난달 14일 국토해양부와 천주교 측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두물머리에 예정된 공원 대신 생태학습장 조성에 합의했다. 기존 계획에서 자전거도로 조성은 예정대로 진행되지만 나머지 8만여 평의 부지에는 생태학습장이 만들어진다. "생명의 가치를 보존하자"는 농민들과 천주교 측의 의견을 수렴한 결정이다. 이후 농민들은 비닐하우스 시설물을 자진 철거하고 있으며, 시공사는 유지관리용 도로 개설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생태학습장 세부 조성계획은 국토해양부, 경기도, 양평군 측이 추천한 4인과 천주교와 농민 측이 추천한 4인으로 구성된 민관협의기구에서 마련될 예정이다. 농민들은 생태학습장에 유기농업 부지조성을 기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는 "(생태학습장을 만드는 중재안에 합의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이 좋아야 정말 끝나는 것"이라며 "생태공원을 어떻게 조성할지, 농민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아직 모른다,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민들 어떻게 살아갈지 아직 몰라... 지속적인 관심 필요" 

3일 오후 경기도 양평 팔당유기농단지에서 마지막 생명평화미사가 열렸다. 지난 14일 국토부와 농민들의 합에 따라 농민들은 비닐하우스를 자진 철거하고 있다.
 3일 오후 경기도 양평 팔당유기농단지에서 마지막 생명평화미사가 열렸다. 지난 14일 국토부와 농민들의 합에 따라 농민들은 비닐하우스를 자진 철거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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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천주교연대) 집행위원장 서상진 신부는 "4대강 사업으로 벌어지는 해악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노력도 지속돼야 한다"며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강정마을, 원자력 발전소 문제 등 생명의 가치를 위협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의 생명평화 미사는 계속돼야 하고 기도하고,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생명을 죽이는 현장에서 오늘처럼 다시 만나자"고 당부했다.

천주교 측의 이 같은 노력은 두물머리에 남은 농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농민들 가운데 서규섭씨는 "우리가 제일 힘들 때마다 신부님들께 도움을 요청했다"며 "신부님들뿐 아니라 이 자리에 와주신 신도분들 시민들 모두가 이제는 가족 같다"고 말했다.

유영훈 '팔당유기농단지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팔당공대위) 위원장은 "우리가 정부와 맞서 싸우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직 버티는 것 뿐"이었다며 "처음 이곳에 신부님들이 오셨을 때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하셨다. 신부님들은 우리보다 더 잘 버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비록 여기서 농사지을 땅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일에 앞장섰고 국민들에게도 상당한 공감대를 얻어낸 것만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팔당공대위와 천주교연대는 앞으로 지난 3년 동안의 투쟁을 책으로 정리하고 영상기록을 남기는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태그:#4대강, #두물머리, #천주교, #생명평화,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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