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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거나 관심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들도 그 인물의 대략이라도 알고 있는 그런 역사인물들이 있다. 그가 남긴 족적이 크면 클수록 후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많다. 책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자주 볼 수 있음도 물론이다.

수양대군도 그들 중 한사람. 수양대군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모습으로 더 많이 알려진 역사인물일 것 같다. 어린 조카를 왕위에서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멀고 먼 강원도 영월로 유배시켜 결국 죽였으며, 권력유지를 위해 피를 나눈 형제들까지 죽여 버린 반인륜적인 그런 인물로 말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명나라 사신으로 오가는 동안 김종서 등이 황표 정치로 국정을 좌지우지함으로써 사실상 단종은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다는 것, 수양대군의 형제인 안평대군 주변으로 새로운 정권을 꿈꾸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것, 수렴청정을 할 상황도 아닌데 계속 나이 어린 단종이 왕좌에 있었다면 국정이 훨씬 혼란스러워졌을지도 모른다는 것, 당시 상황을 볼 때 수양대군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왕좌를 노렸을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과 같은 당시 상황과, 비록 좋지 못한 방법으로 왕이 되었지만 자칫 흐트러질 뻔 했던 왕권을 강화했다는 것, 호패법 등의 실시로 국방 강화와 함께 국가를 안정시켰다는 것 등과 같은 치적들을 예로 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애초 수양대군의 의도와 달리 한명회나 권람과 같은 인물들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이나 일신 때문에 수양을 부채질해 왕위 찬탈은 물론 그토록 많은 피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궤적 쫓은 소설 <수양대군>

저자 이정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저자 이정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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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청년정신 펴냄)은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평가가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당시 궤적을 쫓음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묻는 소설이다. 저자는 이정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그럼 이렇게 완성된 실록은 수정할 수 없었을까? (…)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에 성공한 무리들이 <선조실록>을 수정한 것이 효시다. 그 외에 남인이 집필한 <현종실록>과 서인이 수정한 <현종개수실록>이 있고, 소론이 주관한 <숙종실록>과 노론이 보궐한 <숙종실록보궐정오><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이 있다. 그렇지만 원본을 폐기하지 않았다. 후세사람들에게 원본과 수정본을 비교 평가하라는 것이다. 춘추필법에 대해 조선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양심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집권과정과 치세를 기록한 <세조실록>은 수정본 자체가 없다. 처음부터 왜곡된 것이다. 하여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 현실을 바로 잡고, 수양이 갔던 길을 따라가며 진실을 묻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 - <수양대군> 저자의 말에서

조선시대 임금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사관에 의해 속속 기록되었다. 시종일관 왕의 움직임 따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왕의 일생을 기록했던 사관들은 심지어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침전에까지 잠입해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임금과 신하가 함께하는 경우에 대한 기록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그런데 이처럼 시시콜콜 기록한 사초는 궁에 두지 않고 사관의 집에 보관했다. 그러다가 왕이 승하하면 실록청을 설치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실록 편찬을 했다. 사초를 궁에 두지 않고 사관의 집에 일단 보관했던 이유는 임금의 손길로부터 기록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 그만큼 객관적이며 진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수양대군> 겉표지
 <수양대군> 겉표지
ⓒ 청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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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오래전 사관들이 사초를 목숨처럼 여겼다던가. 그런지라 제아무리 하늘처럼 높은 왕이라 할지라도 사관들의 기록만큼은 함부로 건들지도, 고치지도 못했다던가와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하여 때론 조선시대의 역사기록에 대한 정신과 자세가 감탄스럽기도 했다. 아무리 그렇기로 그래도 사람인데 자신의 실수나 허물을 그대로 적어 후손에게 남기는 것을 어떻게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선대왕들이 그랬다는 것만으로 자신 역시 그럴 수 있음이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는 한편 감탄스러웠던 것이다.

자연 <조선왕조실록>이 어느 정도는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 믿어온 것 같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이 아예 필요에 따라 수정되었다는 것, 나아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과정 등을 기록한 <세조실록>은 애초부터 아예 왜곡되어 기록되었다는 저자의 말은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역사물들이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쓰여 지고 있기에.

사관이나 실록을 편찬하는 사람들도 사람인만큼 어느 정도의 착오는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아예 승자의 입장에서 왜곡되어 기록된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세조실록>이 애초부터 승자에 의해 왜곡되어 기록된 것이라면 수양대군과 그를 둘러싼 역사가 생각이상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탐구해온 저자가 말하는 '계유정난'

그렇다면 계유정난과 수양대군의 진실은 무엇일까? 수양대군은 과연 역사의 승자일까? 아니면 패자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시대가 요구하는 권력의 희생물에 불과할까? 왕좌를 차지한 후 그가 했다는 말처럼 과연 정말 '사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천명'이었을까? 혹 자신의 권력욕을 포장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수양대군은 정말 조선왕실과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걸까?

소설 <수양대군>은 애초부터 어느 정도 왜곡되어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세조실록>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수양대군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 역사에 오점으로 남아 있는 계유정난, 즉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얽힌 진실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저자는 수양대군 역시 '피비린내 나는 드라마의 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기 직전인 계유년 어느 날부터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된 직후까지, 음모술수가 횡행하고 피비린내 진동했던 그 3년간의 진실을 긴박하게 들려준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수양대군과 권력을 향해 부나비처럼 몰려들었던 인간 군상들의 진실에 가까이 닿게 한다.

<수양대군>을 읽으며 한편으로 생각난 것은 1993년에 읽은 <소설 한명회>(전7권)(신봉승 저, 갑인출판사,1992년)다. 다들 짐작하는 것처럼 <수양대군>과 역사적 배경이 같다. 20년 전에 읽은 책임에도 책의 신변까지 시시콜콜 기억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비록 피로 얼룩진 패륜의 역사지만 인상 깊게 남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올 여름 <수양대군>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계유정난(1453년, 단종1)과 그 전후 3년'이 자꾸 씁쓸하게 맴돌고 있다. 단언하건대, 이유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 쿠데타와 관련해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며 '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는 기사(7.16일자 한겨레)를 접한 후에 읽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기사를 읽기 전까지 수많은 피를 부른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5·16 쿠데타'를 연관시켜 본 적이 없다. 기사 속 발언을 몰랐다면 <수양대군>은 어떻게 읽혔을까. 책을 읽은 지 보름, 그동안 둘은 계속 겹쳐 떠오르고 있다. 애초부터 승자의 입맛에 맞게 왜곡된 <세조실록>과 '5·16 쿠데타'에 대한 변명이 같이 들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1450년대 당시 사람들에게 계유정난의 피비린내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게 '5·16 쿠데타'는 무엇일까. 여전히 생각이 분분하다. 

왕실의 혼례를 다룬 페이지 중 304~305. 소설이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운 역사 상식이 많아 밑줄도 긋고 별도 표시도 하고...
 왕실의 혼례를 다룬 페이지 중 304~305. 소설이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운 역사 상식이 많아 밑줄도 긋고 별도 표시도 하고...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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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주고받는 말 한마디 그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며 줄거리를 따라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읽게 하는 것은 지난 20여 년 동안 오로지 <조선왕조실록>만을 탐구해 오고 있다는 저자가 풍성하게 풀어놓은 이와 같은 역사 지식들이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이방원전><이건 몰랐지 조선역사><소현세자><신들의 정원 조선왕릉>이 있다. 이중 이 소설<수양대군>과 <이방원전><소현세자>는 같은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 특히 <이방원전>은 수많은 독자들의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수양대군>-길에서 길을 묻다ㅣ저자:이정근 ㅣ출판사:청년정신ㅣ펴낸날:2012-7-25ㅣ정가:19000원



수양대군 - 길에서 길을 묻다

이정근 지음, 청년정신(2012)


태그:#수양대군, #단종(노산군), #계유정난, #역사소설, #5·16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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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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