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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개'라는 음절이 붙으면 욕이다. 꼭 욕 정도는 아니어도 그 품격이 매우 낮다. '가수'에 '개'가 붙었으니 '개'가 수식하는 '가수'에 대한 욕이나 비아냥거림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은 매체에서 다뤘듯 '개가수'는 욕이나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당당한 트렌드의 아이콘이 되었다. 개가수는 개그맨과 가수의 합성어다. 가수같이 노래하는 개그맨이라는 뜻이다. 올바른 조어는 '가개그맨' 혹은 '가수 개그맨'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가수 개그맨'이 아니라 '개가수'라는 단어가 어필했을까.

일단 개가수는 클릭하고 싶게 만든다. 초기에 개가수를 클릭한 이들은 모두 낚인 셈이었다. 인터넷 포털에서는 독특한, 자극적인 단어에 낚이기 쉽다. '개교사'나 '개회사원'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유는 가수가 스타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개가수 하면 어떤 가수를 개 같다고 욕하고 비아냥거릴 법했기 때문이다.

그 가수가 누구일까 궁금해하는 순간 이미 낚인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낚였다고 할 수는 없었다. 실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개그맨 가운데 노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부각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전문적으로 노래를 한다는 의미는 음반이나 음원 같은 뮤직 콘텐츠로 자신들의 노래를 판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래하는 개그맨 가수들은 예전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개그맨이 노래하는 현상이 어제오늘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노래는 대부분 크리스마스 시즌에 들을 수 있었다. 노래 장르도 캐럴에 한정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른바 캐럴형 가수였다. 최양락·김정식·홍기훈·강성범은 물론 최근의 박경림·박수홍도 이러한 유형에 속했다.

이를 거부한 가수도 있었다. 하지만 2005년 개그맨 박명수처럼 <바다의 왕자> 같은 댄스 발라드를 부르면 대번 망했다. 그것은 마치 이경규가 영화 <복수혈전>을 만들어 실패한 것과 같은 대형 사고이다.

그런데 박명수는 이제 개가수의 선두 주자로 불린다. 그가 개그나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노래를 통해 인기를 끈 것은 2010년 '냉면'과 2011년 '바람났어'였다. 이런 노래들은 일상의 소소한 내용이거나 직설적인 내용을 코믹 어법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박명수는 이전과 달랐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바로 제시카·G드래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듯 유재석은 이적과 '처진 달팽이'를 결성했다. '압구정 날라리' '말하는 대로'를 발표하는가 싶더니 이제 '방구석 날라리'를 통해 '날라리 시리즈'를 만들어내려 한다.

그들만이 아니라 정형돈과 래퍼 데프콘은 '형돈이와 대준이'를 결성했고 <껭스터랩 볼륨 1>을 냈다. 유세윤은 뮤지와 'UV'를 결성해 활발히 활동했다. 뮤지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랫동안 실력을 연마한 가수였다. 대부분의 노래를 뮤지가 만들었고, '이태원 프리덤' '후엠아이'에는 박진영·유희열 등이 피처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전문 가수와 손을 잡았다는 것. 이는 개그맨 가수라는 이유로 그 실력을 불신하는 걸 막으려는 조치였다. 가볍게 여겨져 충성도 높은 팬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기 가수나 언더그라운드 가수는 그 가벼움을 진중하게 보완해주었다. 거꾸로 대중적이지 않거나 진중한 뮤지션들은 개그맨들을 통해 대중성과 친화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음악의 내용이나 질은 개가수의 노래라고 할 수 없기에 큰 인기를 끈다. 단순히 개그맨의 인지도에만 의존해서 취입하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캐럴형 가수와는 완전한 차별화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개가수는 완전하지 않다. 유명 혹은 전문 가수의 도움에 매우 의존하는 터라 그들은 얼굴마담 역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부른 노래들은 전문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비해 <개콘>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박성광·신보라·양선일은 완전한 개가수이다. 그들은 개그맨으로만 구성되었다. 멤버의 활동을 담보하는 창구 구실을 하는 '용감한 녀석들'이 매주 지속적으로 그들의 활동을 뒷받침해준다.

무엇보다 그들의 노래가 인기를 끄는 것은 '개그맨(우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웃음은 남들이 꺼리는 행위나 말도 마다하지 않아야 가능했다. 때로는 불편한 내용들, 사소하거나 하찮은 것도 많았다. 개그맨은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유쾌함을 주지만 부차적인 존재로 취급받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의 장점이 개가수에서 빛을 발했다. 개가수들은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다루면서도 소소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낸다. 남녀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풍속이나 모순에 대한 풍자나 해학, 패러디를 가감 없이 시도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야말로 나는 '개 같은' 가수가 된다. 특히 'UV'야말로 그 경계를 아우른다.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뻔뻔하니 품격이나 고고함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대차게 노래를 부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노래는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그들의 음악은 음반보다는 음원을 통하여 매개되는데 음원 콘텐츠는 음악의 찰나적 성향을 강화한다. 이 때문에 자칫 패스트 패션처럼 순식간에 소모되고, 곧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한국 대중가요는 여전히 근엄하고 위선적이다. 그렇기에 개가수의 노래들은 지속될 토양이 풍부하다. 진정한 개가수들의 노래는 가볍지만 페이소스(파토스)의 노래를 지향하면서 우리 시대의 여러 사회 풍속을 보여준다. 더구나 '용감한 녀석들'의 '아이 돈 케어'와 같은 노래들이 개가수에게서 지속적으로 나올 상황이다. 승자독식, 양극화, 실업의 공포가 구조화될수록 주류 음악에서 할 수 없는 말을 담아내는 개가수의 역할이 필요하다. 요컨대, 개같이 짖는 가수가 개가수다. 삶과 사회적 모순과 어젠다를 끊임없이 짖어대며 경계하도록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 와중에 재미와 유쾌함도 같이 선사하니 금상첨화다. 개가수여 영원하라~~!

덧붙이는 글 | 시사in 실린 글입니다.



태그:#개가수, #개그맨가수, #용감한 녀석들, # UV,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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