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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교 조무원이 교내 우사를 치우고 있다.
 한 학교 조무원이 교내 우사를 치우고 있다.
ⓒ 전국지방공무원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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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관리'

시도교육청 채용공고문에 명시된 기능직공무원 조무 직렬(이하 조무원)의 담당 업무다. 시설관리라는 기준 자체가 광범위하다 보니 이들의 실제 업무 역시 가지각색이다. 특히 학교에서 근무하는 조무원의 업무 분장은 교장에게 권한이 있다. 교장이 시설관리에 포함되는 업무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 조무원들은 학교 잡무의 모든 것을 맡는다. 화장실 청소, 운동장 평탄화 작업, 수목 관리, 공문서 수발 등 학교 구석구석 일손이 필요한 곳에는 이들의 노동력이 투입된다. 심지어 교장의 개인 심부름을 하는 조무원도 있다. 학생과 선생들은 이들을 '아저씨' 혹은 '기사님'이라고 부른다. 이미 학교 잡무를 도맡는 사람으로 각인돼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만난 조무원들은 자신들을 '공노비'라고 표현했다. 학교 직원들이 자신들을 종 부리듯 일을 시킨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각자의 사례에 맞게 재구성했다.   

[농부형] 농약 치고 옥수수 베고... 사람들이 농부로 오해해

일터에 도착한다. 장화를 신는다. 등에 농약을 치는 기계를 멘다. 학교 부지 25만 평 안에 있는 논에 약을 친다. 곧이어 논 곳곳에 숨은 잡초를 뽑는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트랙터를 몰고 밭으로 간다. 소들이 먹을 옥수수를 벤다. 어느새 해가 진다. 그의 하루는 이렇게 끝난다.

정준성(가명·34)씨가 일과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농부냐고 묻는단다. 하지만 그의 일터는 경기도 A고등학교. 농업을 주로 가르치는 학교의 특성상 논밭을 일굴 사람이 필요하다. 그 일에 '시설관리' 담당인 조무원인 그가 투입된 것이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원했던 정씨는 '공무원'이란 단어에 끌렸다. 지난 2009년 경기도교육청 기능직 공무원 조무직렬 공개 채용에 응시했다. 시험 과목은 한국사와 상식이었다. 자격증은 필수 조건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산 관련 자격증을 제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학교 행정실에서 시설관리 관련 서류업무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전산 자격증이 있는 그는 서류 작업에 자신 있었다. 지금처럼 농사를 지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정씨는 그래도 농사짓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0년 4월 처음 이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양돈실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말만 실습장이지 사실상 돼지 사육장이다. 매번 약 2500마리의 돼지가 싼 똥을 치웠고, 다시 이들의 배를 채워줬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평균 12시간 일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공무원 업무시간보다 4시간이나 초과근무를 했다. 주말에 나와 일하기도 했다. 별도 수당은 없었다.

같이 일했던 조무원은 수목 관리를 했단다. 정씨가 "몇 그루나 관리하느냐"고 묻자 동료 조무원은 "뒷산 30만 평에 심어진 나무 전부를 내가 관리해야 한다, 개미 세는 것보다 어렵다"고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

교장에게 찾아가 항의도 해봤다. '업무분장 외의 업무를 시켜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교장은 "학교 조무원의 업무분장은 학교장에게 권한이 있다"고 답했다. 결국 그는 교장이 시키는 무슨 일이든 다 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원예사형] 폭염에도 화단 200평 관리... 잠깐 쉬면 교장이 눈치 줘

 한 여성 조무원이 학교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
 한 여성 조무원이 학교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
ⓒ 전국지방공무원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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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 기온 36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졌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B 초등학교 화단에서 이은식(가명·42)씨는 팔을 걷어붙이고 풀을 뽑았다. 학생들이 학교에 심어둔 식물들을 방학동한 관리하는 게 그의 일이다.

"뙤약볕 아래서 화단 200평에 심어진 식물들 사이로 난 잡초를 뽑다보면 현기증이 난다"고 그는 말했다. "한번은 눈앞이 보이지 않기도 했다"고. 교장에게 폭염이 끝난 뒤로 작업을 미루면 안 되냐고 건의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야박했다.

"할 일은 해야 한다."

업무 초반에 비하면 지금은 화단 작업에 익숙해진 편이란다. 2008년 7월 시험 합격 후 C 초등학교에 처음 발령받은 날, 교장은 그에게 학교에 심어진 나무의 잎들을 다듬을 것을 지시했다.

이씨는 팔 길이만 한 전기톱을 오른쪽 옆구리에 들었다. 학교 화단 150m를 따라 걸으며 삐져나온 나뭇잎들을 잘라냈다. 안 쓰던 근육들이 놀랐다. 잠시 톱을 내려놓고 쉬었다. 지나가던 교장이 "뭐하냐"고 물으며 눈을 흘겼다. 그는 다시 톱을 들고 마저 작업을 끝냈다.

학교 조무원이 되기 전, 그는 경기도 화성시청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기능직 업무였는데, 특별한 업무 차별 없이 똑같이 주어진 사무 업무를 봤다. 마침 경기도교육청 기능직 조무원 채용공고가 떴다. 그는 시청 기능직 공무원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라 생각해 응시했다. 하지만 현실은 판이하게 달랐다. 서류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한 채, 이씨의 손에는 풀과 나무 물만 배고 있다.

[집사형] 운동장 모래 깔고 교장 승용차 세차... 담당 업무는 '시키는 것 모두'

 한 학교 주무원 2명이 운동장 평탄화 작업 중이다.
 한 학교 주무원 2명이 운동장 평탄화 작업 중이다.
ⓒ 전국지방공무원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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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자마자 교장과 교감이 채영임(가명·44)씨를 불렀다. 화장실 변기가 막혔단다. 변기용 압축기를 들고 가 막힌 변기를 뚫었다.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선생들은 변기가 막힐 때마다 그를 찾는다. 단순히 압축기로 배수구를 누르면 되는 쉬운 일이지만, 선생들은 굳이 그를 부른다.

불러서 시키는 일. 그게 그의 업무다. 전라남도 광주의 D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그는 업무가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6년 전에도 그랬다.

채씨는 2005년 광주교육청 기능직 조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E 초등학교에 발령받았다. 출근 첫날, 교장이 그를 불렀다. 가보니 덤프트럭 두 대가 운동장에 세워져 있었다. 안에는 황토색 모래가 가득했다. 교장은 "전부 운동장에 깔아야 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교장과 채씨, 두 명뿐이었다. 채씨 혼자서 운동장 모래 평탄화 작업을 하라는 뜻이었다. 결국 그는 일주일 동안 삽으로 모래를 퍼서 운동장에 고루 폈다.

교장은 그에게 종종 개인 업무를 시키기도 했다. 세차는 기본이요, 점심시간이면 근처 은행에 가서 교장 소유의 통장들을 정리했다. 동료 조무원은 교장이 이사할 때 이삿짐 나르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그에게 사무실은 따로 없었다. 숙직실 안에서 홀로 책상에 앉아 무슨 일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책상 앞에는 먼지가 쌓인 컴퓨터 한 채가 있었다. 그의 손으로 컴퓨터를 켜본 적도, 문서 작업을 해본 적도 없다.

원래 그는 컴퓨터를 잘 다뤘다.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석사 졸업 후 일자리가 필요해 교육청 기능직 공무원 조무직렬 시험을 봤다. '시설관리'가 주 업무라고 하기에 학교 행정실에서 관리자로서 일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채용공고문에 있던 업무내용은 단순히 예산을 집행하고 시설 현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무 업무가 아니었다. 직접 단순 노무에 투입되는 공무원, 그것이 채씨의 역할이었다.

채씨는 고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아이 두 명을 키운다. 아이들은 그가 학교 조무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교장이 학교 학생들과 함께 지나가며 일하고 있는 내게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말한 적 있다"고 말했다. 혹시 자신의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끄러워할까봐 조무원으로 일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무슨 일 하느냐"고 곧잘 묻는단다. 그는 '이것저것'이라고 답한다. 아직도 그는 자신의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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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