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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안도현의 시 화암사 내 사랑이 절 입구 계단에 걸려있다
▲ 안도현 화암사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안도현의 시 화암사 내 사랑이 절 입구 계단에 걸려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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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도현이 그랬다.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그곳이 대단한 곳도 아니고 금은보화가 있는 보물섬도 아니다. 안도현의 표현을 빌리면 '잘 늙은 절집'이다.

그 절집에 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17번 국도로 갈아타고 대둔산 못 미쳐 경천면으로 가는 장장 3시간 반 코스다. 그 절집에 무슨 보물이라도 있기에 이 무더위에 간다는 것인가. 하긴 그 곳엔 국보가 있다. 하지만 그걸 보기 위해 서울에서 그 먼 곳까지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도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달리는데 안내판이 없다. 아차 하는 순간 진입로를 놓쳤다. 차를 돌려 진입로에 들어서니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협소하다. 초보운전자는 바퀴가 빠질까봐 간이 콩알만 해지는 좁은 도로다,

10분 정도 달리니 주차장이 나왔다. 차 20여 대 댈 정도의 아담한 주차장이다. 이렇게 깊은 산골에 주차장이 있다니 의외다. 안도현이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 절집이라고 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많이들 왔나보다. 손을 많이 타지 않았을까 노파심이 든다.

절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 소박하다.
▲ 화암사 절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 소박하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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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렸다. '화암사'라는 팻말이 시야에 들어온다. 진입로로 접어들었다. 숲 우거진 오솔길이 참으로 절집 가는 기분이다. 20분 정도 걸었을까. 계단이 나타났다. 백사십칠 계단이란다. 계단을 바라보니 숨이 턱 막힌다. 암자가 아닌 대한민국 절집은 대부분 자동차 길이 닦여있다. 그게 주지 스님의 능력으로 평가받았다. '잘 늙은 절집'이라는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새마을 노래 부르며 시멘트길 내고 슬레이트 지붕 얹으며 농촌의 원형을 잃어버렸듯이 대한민국의 사찰도 한때 공사열풍이 불었다. 아니 현재 진행형이다. 공사를 끝냈거나 공사 중이다. 이러한 시류를 벗어나 별 볼거리도 없는 주제에 교통까지 나쁘니 곱게 늙을 수밖에.

철제 계단에 걸려있는 작은 소품
▲ 화암사 철제 계단에 걸려있는 작은 소품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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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계단이 아쉽다. 돌이나 목재 계단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았지만 아쉬움만  남는다. 계단에는 아기자기한 소품과 추상화가 걸려있다. 그중에 안도현의 시가 자리 잡고 있다. 계단 끝 무렵에 작은 폭포도 있다. 갈수기여서 수량이 적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폭포는 폭포다.

통나무 다리
▲ 화암사 통나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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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는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가르는 돌다리가 있다. 속세에서 묻은 때를 금천교 아래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불국정토에 들어오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절집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다리를 가지고 있는 곳은 순천 선암사다. 승선교는 보물 제400호로 지정 될 만큼 빼어난 다리다. 헌데, 화암사 금천교는 석재가 아닌 통나무 다리다. 정겹다.

우화루
▲ 불명산 우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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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산 우화루라는 현판을 이마에 붙인 절집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그 흔한  일주문이나 사천왕문도 없이 대뜸 절집이 나온다. 당혹스럽다. 비림(碑林)이나 부도탑도 없다. 파격이다.

우화루 기둥
▲ 화암사 우화루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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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올렸다. 수더분한 시골 촌부의 모습과도 같은 절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박가분'은커녕 평생 분이라곤 발라보지 않은 여인의 모습이다. 시선을 내렸다. 생긴 그대로의 기둥이 우직스럽게 절집을 받치고 있다. 병든 시부모 모시고 밭 갈고 모심으며 농사일을 도맡아 하던 아낙의 종아리 같다.

돌계단을 올랐다. 다듬지 않은 막돌이다. 못생긴 대문에는 대문을 시주한 사람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있다. 다른 절집들 같으면 귀부 받침돌 위에 대리석을 세우고 음각했을텐데...

화암사 대문을 다는데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을 문짝에 써놨다
▲ 화암사 화암사 대문을 다는데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을 문짝에 써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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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면 이층, 안에서 보면 1층 구조의 우화루는 안과 밖의 느낌이 다르다. 밖에서 보는 모습은 수수한 촌부 같았는데 안에서 보면 우람한 남정네의 체취가 풍긴다.

우화루에 걸려 있는 목어. 기둥에 걸려있는 것이 목탁이다
▲ 화암사 우화루에 걸려 있는 목어. 기둥에 걸려있는 것이 목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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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널찍하다. 기둥에는 반야심경이 매직펜으로 써 있다. 부조화의 조화다. 기둥에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목탁이지 않을까 하는 커다란 목탁이 걸려 있다. 정말 크다. 우화루는 보물 제662호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다.

극락전
▲ 화암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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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자세에서 뒤돌아보았다. 극락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주보고 있는 우화루가 근육질의 남정네라면 극락전은 조신한 여인네 같다.

국보 제316호 극락전의 백미는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하앙(下昻)식 구조다. 하앙이라는 말은 문외한에겐 꽤 낯설지만 고건축 설명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낱말이다.

아주 오래전. 궁궐이나 사찰 등 거대 한옥을 짓는 도편수들의 최대 고민은 지붕과 기둥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지붕의 하중을 기둥에 여하히 분산시켜야 거대 한옥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가에서는 기둥 위에 도리를 얹고 서까래를 받쳤다. 허나, 대형 건축물에서는 그러한 구조가 낮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등장한 것이 하앙식 구조다.

극락전. 국내 유일의 하앙식 구조다
▲ 화암사 극락전. 국내 유일의 하앙식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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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 금 시대에 나타난 하앙식 구조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 나라시대 후기까지 풍미했지만 현재 남아있는 하앙식 구조는 화암사 극락전이 유일하다.

화암사는 신라시대 세운 고찰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 절에서 수행했고 학자 설총도 이 절에서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태그:#화암사, #우화루, #극락전, #하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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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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