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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PD수첩> 작가 6명을 전원 해고 했다. 사진은 12년간 MBC <PD수첩>에서 활동한 정재홍 작가.
 최근 MBC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PD수첩> 작가 6명을 전원 해고 했다. 사진은 12년간 MBC <PD수첩>에서 활동한 정재홍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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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피디수첩>은 1990년 5월에 방영을 시작했다. 올해로 22년째다. 정재홍 작가도 12년차로 <피디수첩>의 역사를 다져온 제작진 중 한 명이다. 그는 굵직한 프로그램의 구성도 맡아왔다. 지금은 해고된 최승호 PD와 함께 2010년 '검사와 스폰서' 3부작을 기획했다. '4대강 수심 6m의 비밀', '공정사회와 낙하산'의 대본도 그가 썼다. 그 방송들 모두 평균 시청률 10%를 넘었다.

2011년 김재철 사장이 시사교양국의 국장과 부장을 교체했다. 그 후 간부들에게 작가와 피디가 낸 아이템을 가져가면 전부 거절 당했다. 한진중공업 사태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에도 관련 아이템을 잘라냈다고 한다.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 최근 현안 역시 전부 가로막혀 추진하지 못했다. 점점 시청률이 떨어졌다. 국장이 불러서 시청률이 하락하는 이유를 따져 물었다. 정 작가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국장이 그렇게 만들었다. 손발 다 묶어 놓고 어쩌라는 건가. 자유롭게 아이템 취재하도록 놔둬라. 시청률 올릴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그의 손발은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 1월 30일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갔다. 정 작가를 비롯한 <피디수첩> 작가들은 내일 혹은 다음 주에 파업이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묵묵히 기다렸다. 복귀해서 방영할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었다. 170일 동안의 파업이 끝나면서, 이제는 방송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지난 25일 그 기대를 송두리째 깨는 소식을 들었다. <피디수첩> 내 3명의 시용PD(계약 체결 후 일정 기간을 두고 근로 여부를 최종결정하는 PD)들이 작가 교체를 위해 다른 방송 작가들과 만났다는 이야기였다. 정 작가는 작가 교체에 대한 언질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기존 제작PD들이 배연규 <피디수첩> 팀장에게 물어봤다. '메인작가 6명 전원 교체 사실이 맞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 작가는 배 팀장과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을 찾아갔다. 김 국장은 "시사제작국 분위기 쇄신을 위해 <피디수첩> 작가들을 교체한다, 국장의 결심이자 권한이다"라고 말했다. 프리랜서인 작가들에게 프로그램에서 교체된다는 것은 곧 해고된다는 뜻이다. 결국 12년째 프로그램을 맡아온 정 작가를 비롯해 임효주, 이김보라, 장형운, 이화정, 이소영 작가 총 6명이 순식간에 해고됐다.

정 작가는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기자와 만나 "방송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든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는 "MBC가 <피디수첩> PD에 이어 작가까지 자르는 이유는 곧 방송의 기반을 송두리째 없애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작가 하나 마음에 안 들어 자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이번 사태는 '<피디수첩> 죽이기'의 일환이라 수용할 수 없다"며 "작가 6명 전원 복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정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군사작전 하듯 작가 쓸어버린 건 누군가의 지시 있기 때문"

- 방송에서 통보 없이 메인작가 전원을 해고한 게 처음인가.
"처음이다. 12년 동안 작가로 일하면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통보 없이 내쫓는 건 예의가 아니다. 동료 작가를 갑자기 똥개 내치듯 쫓으면 남아 있는 작가들은 일할 맛이 날까. 작가들은 프리랜서, 즉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한없이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계약 해지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해지하는 작가가 다음 직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예의다."

정재홍 작가  "MBC가 <피디수첩> PD에 이어 작가까지 자르는 이유는 곧 방송의 기반을 송두리째 없애려는 것이다"
 정재홍 작가 "MBC가 <피디수첩> PD에 이어 작가까지 자르는 이유는 곧 방송의 기반을 송두리째 없애려는 것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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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작가 전원을 해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은 장비가 만드는 게 아니다. 사람이 만든다. 피디와 작가들은 축적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준다. 그것들이 쌓여 방송의 역량이 된다. <피디수첩>이 대한민국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우뚝 설 수 있던 것도 축적된 노하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공들여 키운 인프라를 한꺼번에 없애려는 것이다.

누군가 미워서 자를 수는 있다. 그런데 12년차인 나부터 4년차 작가까지 싹 다 자르는 건 노하우를 뿌리째 긁어내려는 의도라고 본다. 비판정신, 제작, 취재, 섭외, 구성, 대본 등의 노하우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엔터테인먼트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것이다."

- 전원해고 사태가 일어나기 전 MBC의 압박은 없었나.
"이미 2년 전 윤길용 당시 시사교양국장 체제 때부터 압박을 느껴왔다. 검찰 스폰서, 4대강 등의 아이템을 다루면서 미움을 받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런 적도 있다. 시사교양국이 개편돼 <피디수첩>이 시사제작국 안으로 들어간 이후, 당시 'BBK 가짜편지' 관련 아이템을 준비 중이었다. 제작PD가 당시 팀장에게 보고했는데 재미없다며 거절했다. 그리고는 내게 와서 '이 아이템 당신이 냈지'라며 눈을 흘겼다. 당황했다. 예전 부장들은 특종성 아이템을 내면 예뻐했다."

- 왜 하필 MBC는 파업이 끝난 지금 메인작가 전원 교체를 단행했을까.
"타이밍상 누군가의 기분을 맞춰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김재철 사장이 재임용을 앞두고 <피디수첩>만은 죽여주겠다는 걸 권력층에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한다. 배연규 팀장은 시청률이 안 나와서 작가들을 잘랐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템 통제 속에서도 시청률이 잘 나온 작가가 있다. 그렇다면 그 작가는 자르면 안 된다. 왜 비밀작전 하듯이 전원을 자르나. 군사작전 하듯이 한꺼번에 쓸어버린 건 누군가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 <피디수첩> 작가들은 MBC 노조 파업을 지지했는지 궁금하다. 김재철 사장 재임 이후 공정방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나.
"그렇다. 김 사장 재임 이후 최승호·오행운 PD 등 기라성 같은 제작진들이 다 잘렸다. 아이템 통제도 늘었다. 간부들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그램은 절대 방송 못했다. 이 때문에 PD들이 간부들과 엄청나게 싸웠다. 징계도 많이 당하지 않았나. <피디수첩>의 경우 파업 이후에도 PD들이 징계를 대거 받았다. 10명 중 6명이 사무실에 못 나왔다. '가택 대기발령'을 받기도 했다.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징계다. 여기가 미얀마인가.

이후 시용PD들이 고용됐다. 5명 중 3명이 <피디수첩>으로 왔다. 이건 우리 방송 보고 죽으라는 거다. <피디수첩>은 사회문제의 핵심을 다루기 때문에 그만한 역량과 철학을 지닌 사람들이 와야 한다. 그런데 VJ 하던 사람들을 집어넣은 것이다."

"방송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든다... 전원 복귀가 목표"

- 작가들도 프로그램 때문에 간부들과 마찰을 겪었나.
"엄청 싸웠다. 한미동맹, 남북문제, 노동문제 등 정부에 부담을 주는 아이템은 다 거절했다. 재미없다는 게 이유였다. 간부들은 '시청자가 외면한다, 내용이 진부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런 아이템을 방송해서 여태 시청자들에게 지지받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작가들은 아이템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 사태 관련 아이템을 냈는데 간부들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다시 냈다. 다음 주에 내용만 살짝 바꿔 가지고 갔다. 그렇게 몇 주를 반복하면 '나한테 대드나'라고 말하더라."

사측의 부당한 인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도중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는 정재홍 작가.
 사측의 부당한 인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도중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는 정재홍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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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피디수첩> 메인작가 자리는 공석이다. 다른 작가들이 고용된 상태인가.
"모르겠다. 다른 작가를 고용할 수도 있다. 그 자체를 우리가 막을 수 없다. 단, <피디수첩> PD들의 뜻이 중요하다. 이번 사태가 터진 이후 기존 제작PD(시용PD 제외) 7명의 뜻을 물어봤다. '우리는 당신들이 해고되는 것을 반대한다, 대체작가와 일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물론 걱정이 된다. 그렇게 하면 피디들이 또 징계받을 수 있다.

핵심은, 이번 해고가 PD들의 의사와 전혀 무관했다는 점이다. 오로지 간부들만이 해고 사실을 알았다. 방송작가 채용의 1차 권한은 제작PD에게 있다. 그런데 PD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장급 이상에서 분위기 쇄신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한꺼번에 메인작가 전원을 해고했다. 간부들이 프로그램에 개입한 것이다."

- 해고된 작가 전원 복귀를 원하는 건가.
"전원 복귀가 목표다. 물론 우리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계속 일하겠다는 건 아니다. 담당 PD가 싫다고 하면 당연히 나가야 한다. 나는 항상 이번 프로그램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일을 해왔다. 그게 쌓여 12년이 됐다. 욕심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피디수첩> 무력화를 위해 저질러진 학살이라고 본다. 우리는 <피디수첩>을 지키기 위해 원상복귀돼야 한다. <피디수첩>만은 죽이지 말았으면 한다, 제발. 이런 프로그램 하나 대한민국에 있어도 된다."

- 다른 방송작가들도 이번 사태를 규탄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왜일까.
"MBC는 이렇게 작가를 한꺼번에 개 쫓듯 쫓아내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와서 일할 거라는 비루한 생각을 했다. 작가는 PD와 다르게 비정규직이라 쉽게 자르고 고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언론답지도 않은 짓을 MBC가 했다. 방송작가를 우습게 봤다. 작가들은 그것에 분노했다."

-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예정인가.
"메인작가 6명의 계약 건 관련 법적 대응을 알아보고 있다. 김재철 사장 이전까지 작가들은 사측과 계약서를 써왔다. 변호사 말로는 이후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 이전 계약이 유효하다고 한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돕겠다고 했다.

또한 다른 방송작가들에게 계속 서명을 받고 있다. 이 문제는 <피디수첩> 문제만 아니고 방송작가 전체의 문제다. MBC 구성작가 협의회에서 가장 먼저 보이콧을 결의한 이유다. 5시간 만에 70명이 <피디수첩>에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600명 넘는 작가들이 서명했다. 시사교양 작가가 800여 명 정도 되는데 거의 모두에게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태그:#정재홍, #피디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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