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화강암틀에 갇힌 가로수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의 외침을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습니다.
▲ 숨이 막혀요. 허리띠 좀 풀어주시면 안될까요? 화강암틀에 갇힌 가로수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의 외침을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습니다.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헉!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요? 도롯가의 가로수들이 "아유, 숨 막혀. 허리띠 좀 풀어주세요!"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배불뚝이가 된 나무들을 바라보는 순간, 제 숨도 탁 막힐 것처럼 답답해졌습니다.

나무들이 화강암 가로수 보호대를 가득 채운 지 이미 오래된 듯합니다. 둥그렇게 자라야 할 나무가 사각형 가로수 보호대 틀에 갇혀 네모 반듯한 나무 기둥이 되었습니다. 사각 틀에 키워 비싼 값에 팔린다는 네모난 수박이나, 작은 발이 미인이라며 버선에 발을 가두던 중국의 전족은 들어보았지만, 네모난 가로수는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갑니다.  나무 기둥이 화강암 틀을 넘쳐흐르지만 가로수들의 고통은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갑니다. 나무 기둥이 화강암 틀을 넘쳐흐르지만 가로수들의 고통은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과식과 비만으로 허리띠를 조인 똥배 나온 사람처럼, 사각형 틀 밖으로 넘친 지도 오래됐는지 나무 뱃살이 역삼각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지어 화강암 가로수 보호대를 덮고 있는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형으로 자란 게 하루 이틀이 아님을 의미하겠지요.

고통을 호소하는 나무들

나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주민들과 공무원들의 무관심이 아쉽습니다. 나무에 전족을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 헐! 한 눈에 보기에도 숨이 콱 막힙니다. 나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주민들과 공무원들의 무관심이 아쉽습니다. 나무에 전족을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인적이 드문 시골 길이 아닙니다. '메타세쿼이아'라 부르는 가로수들이 멋지게 자라는 이곳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입니다. 가로수 양쪽에 아파트가 늘어서 있고, 상가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입니다. 심지어 버스 정거장도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나무가 제공하는 시원한 그늘과 맑은 공기의 혜택을 입는 이 지역 사람들이 나무의 아픔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통스러운 나무들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많은 분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분들은 나무들이 숨 막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몰랐던 것일까요? 나무가 워낙 거대하고 특별한 형태를 띠고 있었기에 몰랐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못 본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던 것이겠지요. 나무가 이렇게 된 지 벌써 몇 해가 되었으니, 이미 보고 알고 있었지만 나무의 고통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멋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있는 의왕시.  의왕시민 여러분 나무에게 조금만 관심 가져주세요.
▲ 보기에는 참 멋진데.... 멋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있는 의왕시. 의왕시민 여러분 나무에게 조금만 관심 가져주세요.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고통받는 나무는 한두 그루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 줄지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나무들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사람들의 무관심에 가로수들의 보복이 시작됐습니다. 화강암 보호대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기도 했고, 보도와 도로 사이의 경계석을 도로 쪽으로 밀어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경계석이 떨어져 나간 곳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파손되기 시작한 인도입니다. 가로수 근처의 인도들이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습니다. 

천하장사 가로수? 인간의 무관심 덕에 사각형 틀이 하늘로 벌떡 들렸고 인도까지 들려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천하장사 가로수? 인간의 무관심 덕에 사각형 틀이 하늘로 벌떡 들렸고 인도까지 들려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경계석이 이미 사라져버렸습니다. 조만간 도로까지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경계석이 이미 사라져버렸습니다. 조만간 도로까지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가로수들이 숨 막히기 전에 진즉 보호대를 풀어주었다면, 나무들도 고통받지 않고 인도와 도로를 보수하는 예산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무관심이 이런 큰 화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선 나무의 고통을 풀어주는 게 시급합니다. 돌로 된 가로수 보호대를 빼 주기만 해도 나무들이 좋아하겠지요. 이는 어렵거나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인도...경계석은 밀려나고

한눈에 보기에도 숨이 막힐 듯 나무들의 고통스러움이 역력한데, 이렇게 오랜 시간 무관심할 수 있었는지 잘 이해되질 않습니다. 돌기둥 하나만 빼주면 되는 간단한 일에 불과했는데 말입니다.

인도는 하늘로 올라가고, 경계석은 밀려나고. 인간의 무관심에 가로수들의 무서운 보복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인도는 하늘로 올라가고, 경계석은 밀려나고. 인간의 무관심에 가로수들의 무서운 보복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배려'란 큰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에 마음 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큰 동정이 아니라 작은 배려를 통해 사람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잔뜩 졸라맨 돌기둥 허리띠로 인해 고통스럽고 숨차하는 나무들이 의왕시 공무원들의 작은 배려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려를 원했더니 소통에 방해된다고 아예 잘라버리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혹시 그런 불상사라도 생길까 괜한 염려가 들기도 합니다. 

이 나무는 왜 잘렸을까요? 이 나무도 도로 경계석을 밀어낼 만큼 자란 상태에서 잘려나갔습니다. 다른 나무들도 이 모양이 되면 안되겠지요. 제발!
▲ 이렇게 잘라버리면 안됩니다. 이 나무는 왜 잘렸을까요? 이 나무도 도로 경계석을 밀어낼 만큼 자란 상태에서 잘려나갔습니다. 다른 나무들도 이 모양이 되면 안되겠지요. 제발!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우리의 무관심으로 고통 받는 나무들이 의왕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국 곳곳에 숨 막혀 고통스러워 하는 나무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무관심이 이들을 방치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가로수들이 이렇게 된 것은 공무원들의 무관심도 있지만, 잘못된 가로수 선택이 근원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가로수를 심을 때 메타세쿼이아 나무 기둥이 종종 기형적으로 굵어진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고, 처음에 나무를 너무 얕게 심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도시 조경에 가로수 수종을 선택할 때, 나무의 특징을 잘 따져보고 좁은 도심과 외곽도로 등 상황에 맞는 가로수를 선정해야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오가는 길에 나무에게 눈길 한 번 주면 어떨까요? 시원한 그늘과 맑은 산소를 제공해주는 고마운 나무들이 혹시나 아파하고 있지는 않은지 여러분의 따스한 눈길로 살펴봐 주시지요. 혹시 그런 나무들이 있다면 관할 관청에 연락해주시면 나무들이 정말 좋아할 것입니다. 가로수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대한민국, 우리네 삶도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이 나무는 왼쪽은 사각틀, 오른쪽은 둥근 반원틀에 꽉차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 우리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 나무는 왼쪽은 사각틀, 오른쪽은 둥근 반원틀에 꽉차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 최병성

관련사진보기



태그:#가로수, #의왕시 , #메타세쿼이아, #배려, #무관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땅에 생명과 평화가 지켜지길 사모하는 한 사람입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길 소망해봅니다. 제 기사를 읽는 모든 님들께 하늘의 평화가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