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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삼성노조총회가 열린 후 조합원들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가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이다.
 지난해 7월 1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삼성노조총회가 열린 후 조합원들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가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이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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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살아남으셨네요."
"저희가 살아남은 게 아니죠. 삼성이 잘 버틴 겁니다."

박원우 삼성 노동조합 위원장은 단호했다. 삼성노조의 지난 1년을 '살아남은 것'으로 평가하는 말에 "그 반대"라고 잘라 말했다. 삼성의 탄압에 노조가 살아남은 게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노동자들의 결집을 삼성이 잘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박 위원장은 최근 월급이 깎이는 징계까지 받았지만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지난해 7월 14일 노동부 인가를 받아 설립된 삼성노조가 출범 1년을 맞았다. 에버랜드 노동자들로 구성됐지만 삼성의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노조다. 설립 당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깨진다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사실 삼성에는 몇 개 노조가 존재했지만 대부분 실체가 없었다. 일부 활동하는 노조도 삼성이 다른 회사와 통합과정에서 이전 회사의 노조가 남은 형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노조가 삼성에 생긴 첫 '진짜노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년의 삼성노조의 활동은 조합원 교육이나 사측을 상대로 협상하는 다른 노조들의 평범한 활동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 가입을 꺼렸고 가입한 사람들도 쉽게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노조간부 4명 가운데 박 위원장을 포함해 3명이 징계받은 상황은 이를 대변한다. 조장희 부위원장은 노조 설립 때 징계를 받아 현재까지 해고된 상태고, 김영태 회계감사는 2개월 정직을 받았다. 박 위원장은 최근 감급(감봉) 징계를 받았다.

박 위원장의 징계 이유는 지난 2월 삼성에버랜드 비정규직 사육사 고 김주경(25)씨 사망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에서 '회사의 명예를 오손했다'는 거다. 또 회사에서 노조를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한 것과 언론과 인터뷰에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경영세습을 비판한 것도 문제 삼았다. 박 위원장의 징계는 삼성이 노동조합의 활동을 탄압했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판결이 나온 직후 이뤄졌다. (관련기사 : 삼성, '옐로 카드' 받고도 노조 목조르기 계속)

이 부당노동행위 판결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삼성노조가 제도적으로 완벽히 노동조합을 인정받은 것이고, 삼성의 노골적인 노조탄압을 확인시켜준 사례다. 이제 삼성은 노조를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부드러워졌다"

18일 오전 삼성노조가 출범 1년 맞아 서울 강남역 삼성사옥 앞에서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18일 오전 삼성노조가 출범 1년 맞아 서울 강남역 삼성사옥 앞에서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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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위원장과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노조 전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일상 업무를 해야 했고 저녁 일정은 꽉 차 있었다. 그는 18일로 예정된 삼성노조 출범 1년 기념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삼성노조뿐 아니라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유가족, 과천 재개발 지역 철거민과 삼성에서 해고된 노동자 등 삼성과 맞서는 모든 사람이 모이는 자리다. 어렵게 17일 오후 늦게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노조에 대한 사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일에 주력해 왔다"며 "지금 에버랜드에는 10여 명, 전 계열사로 따지면 100여 명이 조합에 가입한 상태"라고 밝혔다. 아직 그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사측의 탄압이 예상돼 내년으로 예정된 단체교섭 때까지 공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시간 내에 확산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삼성의 전 계열사에 노동조합의 깃발이 펄럭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1년이 지났다.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소감이 어떤가?
"나는 '살아남았다'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노조 경영 삼성 자본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아무리 탄압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노조가 '살아남았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지난 1년 동안 삼성이라는 재벌 기업이 '잘 버텼다'고 해야 한다."

-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나? 성과가 있었다면?
"노조를 알리고 조합원 가입을 받는 활동을 해왔다. 지금 간부 4명은 모두 에버랜드 소속이지만 삼성노조는 전 계열사가 다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다른 사업장에도 노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지난해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되기 전 이미 단체교섭이 체결돼 있었고 사측에서 내세운 노조 때문에 교섭권을 갖지는 못했다.

성과가 있다면 실제로 노조 인원이 늘었다는 점이다. 지금 지역노동위원회에 공식적으로는 에버랜드에 10여 명 가량이 있는 걸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 계열사를 합치면 100여 명이 된다. 또 삼성이 예전부터 무노조 경영을 하면서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사원들에게 꾸준히 교육해왔다. 세뇌 아닌 세뇌를 당할 수밖에 없다. 사원들의 그런 인식을 바꾸는데 주력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사람들이 '삼성에도 노동조합이 있어도 되는구나'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 그렇게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이 있는데 공개는 하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인가?
"노조 간부 4명 가운데 3명이 징계를 받았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해 말하면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간부들도 최대한 징계를 받지 않게 하려고 했다. 두려워서가 아니고, 우리가 징계받는 모습을 보면 다른 노동자들의 접근이 더 어려워 질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내년에 2년마다 한 번 있는 단체교섭을 하게 된다. 그때까지는 조합원을 철저하게 비공개로 할 방침이다. 회사가 조합원들을 파악하게 되면 단체교섭 전에 어떤 작업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계열사에서 조합에 가입했는지도 말하기 어렵다. 각 사업장마다 노조에 가입할만한 성향의 사원은 집중관리를 한다. 단체교섭권을 가진 다수 노조가 될 때까지는 조합원들을 보호해야 한다."

- 현재 공개적으로 활동 중인 조합원은 에버랜드에 4명뿐이다. 조합원 가입 방식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해고된 조장희 부위원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휴무일만 가지고 전 사업장을 돌며 일일이 조직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각 계열사마다 노동조합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고, 조직을 세우려 한다. 그분들과 주로 연계해서 조합원을 조직하고 있다."

"징계하면 끝까지 갈 생각, 움츠러들지 않는다"

삼성노조를 설립한 4인. 좌로부터 김영태 회계감사, 조장희 부위원장, 박원우 위원장, 백승진 사무국장.
 삼성노조를 설립한 4인. 좌로부터 김영태 회계감사, 조장희 부위원장, 박원우 위원장, 백승진 사무국장.
ⓒ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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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원장도 최근에 징계를 받았다. 사측의 탄압이라고 주장하는데, 간부들의 징계 상황은 어떤가?
"얼마 전 감급(감봉) 징계를 받았다. 김영태 회계감사는 2개월 정직이고 조장희 부위원장은 해고상태다. 조 부위원장이 6년 동안 노사협의회에 사원대표로 있었는데 노조가 세워지기 전에는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성희롱이나 부정, 업무과실 같은 게 적발되면 대부분 그 사안으로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노조에는 징계위원회를 남발한다. 계속 압박을 하려는 것 같다.

징계수위가 어떻게 됐건 우리는 법적 대응을 포함해 끝까지 갈 생각이다. 김형태 회계감사 정직 처분이 지역노동위원회에서 기각됐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 다시 접수했다. 최근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했는데 일부 사안은 제외됐다. 그 제외된 부분도 6월 말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힘들고 지치게 하려는 수법 같지만 순순히 넘어가지는 않는다."

- 사측의 탄압이라고 생각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징계가 있다. 그밖에 근무에서 휴무변경이나 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연차 같은 경우는 회사에 막대한 지장을 주지 않는 한 노동자가 원하는 날에 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연차를 쓰겠다고 하면 그 사유가 되는 사생활 부분을 다 물어본다. 병원에 간다고 하면, 어느 병원에 가고, 몇 시에 가고, 왜 가는지를 묻는다."

- 감시가 일상화돼 있다는 것인가?
"지난 5월 퇴근할 때 일이다. 출입증카드를 찍고 나왔다. 나랑 같이 일하는 사원이 나보다 20미터 정도 떨어져서 뒤이어 나왔는데 다음날 이런 말을 해줬다. 자기가 나가려는데 경비가 어딘가로 전화해서 '박원우 몇시 몇분에 퇴장했습니다'라고 보고를 하더란다. 어디에 보고했는지 모르지만 노조에 대응하는 인사팀일 거다. 화장실을 간다든지 근무 지점을 떠날 때면 항상 누군가가 우리를 찾는다. 사무실에 들어가 일하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면 동료가 '누가 찾더라'고 말해 줄 때가 많다."

- 회유도 있었을 거 같다.
"사측 임원이 조장희 부위원장에게 노조 설립 전부터 '업무가 편한 부서로 보내주겠다', '사업에 소질 있어 보이는데 도와주겠다' 같은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최근 내가 받은 징계 건이 처음 나오기도 전, 인사팀 사람이 찾아와 '지금 박 위원장 징계가 논의 중인데 협조적으로 나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징계를 걸고 회유를 해보려 한 것 같다. '너희들도 조장희(징계해고)처럼 만들어주겠다'고 협박하는 사측 임원도 있었다."

- 그런 상황이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가정이나 다른 곳에서 어려운 점은 없나?
"일상에서 크게 어려움은 없다. 대부분의 문제를 집에도 다 이야기하고 부인도 공감하고 응원해준다. 일부러 위축되지 않으려는 것도 있다. 주변에는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크게 지치지는 않는다."

"단체교섭권 획득이 목표, 민주노조 깃발 꼽는다"

박원우 삼성노동조합 위원장.
 박원우 삼성노동조합 위원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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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초기에 했던 인터뷰에서 "진짜 노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 목표는 변함이 없나?
"삼성에도 기존에 노조가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사측이 만든 유명무실한 노조였다. 그 사람들은 노동자를 위해 노조를 만든 게 아니다. 실제로 노동자들을 위한 노조를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진짜 노조'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목표가 시행되려면 단체교섭권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성과를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게 목표다."

- 지금 삼성에는 세 부류의 사원이 있는 듯하다. 노조에 가입한 사람, 가입을 망설이는 사람, 노조를 싫어하는 사람. 현장의 노동자들은 삼성노조의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그렇게 나눈다면 비중은 망설이는 쪽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예전에는 나와 대화를 하다가도 사측 간부가 지나가면 고개를 숙이거나 등을 돌렸다. 지금은 사람들이 어떤 간부가 와도 나랑 이야기 나누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지난 3월 노사협의회의 사원대표를 뽑는 선거가 있었는데 후보 등록하려면 10명 이상의 추천 서명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사원들을 찾아가면 '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니까 뽑아 줄 수 있는데 공개적으로 나가기는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걸 보면 분위기는 많이 바뀌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 삼성에서 '노조'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삼성을 변화시킬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생각하나?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자신은 있다. 진정성에서 오는 자신감이다. 누가 알아달라고 하는 노조가 아니다. 삼성이건 어디건 더 큰 자본이 있다 해도 노동조합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삼성이라고 해서 크게 의미부여 할 게 아니다. 하지만 이병철 전 회장부터 몇십 년 동안 무노조경영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는 '삼성을 상대로 노조를 하다니'라고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다. 지금 단시간 내에 확산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삼성의 전 계열사에 노동조합의 깃발이 펄럭이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은 분명히 온다. 지금은 우리가 약하고 힘들게 투쟁하고 있지만 이것도 역사적인 기록이 될 거라 생각한다."

-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위원장도 몇 차례 만나봤을 텐데 어떤 심정인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성노조가 출범했음에도 아직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약하지만 이 방향으로 계속 적극적으로 나갈 것이다. 방황할 수 없다. 삼성에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을 향해 나아갈 거다."

- 임기가 1년 남은 상황이다. 위원장 개인의 임기 후반기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가?
"처음과 같다. 목표는 삼성 무노조 신화를 깨는 거다. 이제는 단순히 깬 것에 연연하지 않고 계열사마다 삼성노조의 깃발을 꽂아야 한다. 단 한 사업장이라도 반드시 민주노조를 뿌리내리게 하고 싶다."


태그:#삼성, #삼성노조, #이건희, #박원우, #백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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